글쓰기의 즐거움 - 이미란 전남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소설가
2025년 03월 10일(월) 22:00
100일 글쓰기 시즌 16이 시작됐다. 이번 참여자는 14명이다.

‘100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글을 쓴다’는 콘셉트에 매료되어 시작한 이 글쓰기 모임은 5명으로 출발했지만 꾸준히 참여자가 늘어나 지금은 대체로 열서너 명 정도의 인원이 시즌에 참여한다.

100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글을 쓰는 게 가능한가? 가능했다. 우리는 첫 시즌의 흥분과 도취를 잊지 못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글쓰기 카페를 들락거리며 게시 글을 확인하고 댓글을 달았다. 외국에서도 병원에서도 글쓰기는 계속되었다. 시즌이 끝났음에도 카페를 어슬렁거리며 글을 올리는 글쓰기 유령이 된 이도 있었다.

그런데 시즌이 거듭될수록 100일 동안 계속 글을 써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즌을 포기하는 동료들이 생기고, 참여는 했지만 글쓰기를 거르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났다. 사실 생활인으로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물리적으로 도저히 글을 쓸 짬이 나지 않는 날들이 있기는 하다. 그럴 때 글쓰기는 즐거움이 아니라 짐이다. 그래서 우리는 100일 동안 자기 나름의 글쓰기 규칙을 세워 실행하기로 했다. 날마다 쓰기든, 월·수·금 쓰기든, 주말 쓰기든.

지난 시즌부터는 릴레이 글쓰기를 도입했다. 시즌 글쓰기방에서는 예전처럼 자유롭게 글을 올리고, 릴레이 글쓰기방에서는 그날의 주자가 글을 올리는 것이다. 글쓰기방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매년 3월과 9월에 시즌이 열리니 우리는 지금 8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글쓰기에 잡아 두는가. 그것은 뭐니 뭐니 해도 글쓰기의 즐거움일 것이다.

‘글쓰기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진정한 감상’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대상에 대해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우리는 모든 감각을 열고 인지를 동원하여 글로써 형상화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야말로 내가 ‘아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존재를 알아가는 즐거움’, 이것이 글쓰기의 첫 번째 즐거움이 아닐까 한다.

글쓰기의 또 다른 즐거움은 ‘주도적 삶의 즐거움’이다. 글쓰기는 나의 삶을 이루는 모든 것들 가족, 친구, 직업, 자연, 예술, 취미 들에 대해서 깨닫고, 생각하며, 판단하고, 즐기는 행위이다. 그냥 흘러가 버리는 삶이 아니라 내가 통제하고 주도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자신감, 이 또한 글쓰기의 즐거움이다.

‘창조적 행위의 즐거움’도 있다. 세상의 모든 일처럼, 글쓰기라고 하는 것도 계속하고 있으면 흐름이 흐름을 연다. 생각을 하면 생각이 나는 것이다. 적절하고 참신한 단어나 문장이 떠올랐을 때의 기쁨. 생각과 느낌을 한 줄기로 엮어내는 유쾌함. 하나의 의미로 완결된 글을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 이 또한 글을 쓰면서 누리는 즐거움들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글쓰기의 즐거움이 이런 개인적 호사에만 그쳤다면 100일 글쓰기가 이렇게 오래 계속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모임이 지속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함께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시즌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100일 동안 글쓰기 공동체가 된다. 나는 내 삶에 대해 글을 쓰는 작가이면서 동료의 삶을 읽어 주는 독자가 되는 것이다. 나의 내면과 나의 감수성과 인식의 지평이 오롯이 드러나는 글은 나의 문자화된 인격이다. 우리가 서로의 글을 읽는 것은 한 인간으로서의 서로를 읽어주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구체적인 일상과 생각과 감정들을 공유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서로에게 정서적 지지자가 된다. 그러다 보니 자기 검열이 덜한 글, 마음을 털어놓는 글을 쓸 수 있는 것 같다. 글쓰기의 치유적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글을 잠재적으로 공개된 문서로 인식하기 때문에 좀더 책임감 있는 글을 쓰게 된다. 더 적확한 의미, 더 올바른 표현을 고르기 위해 애쓰는 사이 우리의 글쓰기 근육은 탄탄해지는 것이다.

고령화, 1인가구, 고용 불안, 디지털 소외, 사회적 안전망의 부족…. 현대 사회에서 고립감을 느끼게 하는 요인은 점점 많아진다. 개개인이 느끼는 이러한 고립감을 해소하고, 공감적 공동체로서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글쓰기 모임이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쓴다. 나아가 이러한 글쓰기 공동체의 활동이 오늘날의 오염된 언어를 제자리로 돌려 놓으면서, 아름다운 언어 풍경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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