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누정 원림-전남 <1> 담양 독수정] 고려 망국의 설움 안고 독야청청 … 선비의 지조 오롯이
2024년 04월 14일(일) 19:00
세상일이 막막해 생각은 많고
어느 깊은 산에 늙은 이 몸 의탁할까
천리 먼 강호에서 백발이 되고
이 세상 한 생 슬프고 처량하구나
왕손 기다리는 풀들은 봄이 저무는 것을 한탄하고
제자 찾는 꽃의 가지는 달빛에 젖어 눈물 짓는구나
이곳 여기 청산에 뼈를 묻어

담양군 가사문학면에 자리한 독수정은 고려말 병부상서를 지낸 전신민이 조선왕조에 나아가지 않고 은거를 위해 지은 정자다.

◇새롭게 시작하는 전남의 누정 원림

산하에는 유독 누정이 많다. 언덕을 등진 정취가 삽상한 곳에는 어김없이 누정이 자리한다. 수려한 산수에 아름다이 앉은 누정은 남도 풍류문화를 대변한다. 유순하고 넉넉한 산야에 맞춤하듯 앉아 있다. 역사의 변곡점과 맞물린 비화부터 시인묵객들의 시정이 깃든 시담, 학문을 배우고 논하는 강론의 흔적까지 다채롭다.

그뿐인가. 누정에는 ‘사랑’이 있다. 오해하지 마시라. 남녀의 정분이나 사사로운 정은 아니니. 향촌 고유의 질서와 미풍을 지키려 애쓰던 선비들의 마을 사랑은 오늘날 치적에 매몰된 관료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풍전등화 난세에서 구국의 깃발을 든 유생들의 나라사랑 단심은 또 어떤가. 자신의 안일을 돌보지 않고 구국심정으로 깃발을 든 이들의 충의는 세월이 흐를수록 빛난다.

남도 누정에는 은거와 은일의 미학도 깃들어 있다. 당쟁, 당화가 끊이지 않는 중앙 정치 무대에서 비켜나 ‘바름’과 ‘정도’를 추구하고자 했던 선비들의 의기는 곱씹을 만하다.

이번 ‘호남 누정 원림’ 전남편 시리즈는 한국학호남진흥원(호남진흥원)과 광주일보가 공동으로 기획했다. 지난해 광주편에 이어 ‘전남의 누정 원림’을 기획한 것은 공간에 깃든 함의를 다복이 새기고 누구나 누정문화를 즐길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다.

홍영기 한국학호남진흥원장은 “호남 공동체 정신문화를 대표하는 남도의 문화유산으로 향약, 누정과 원림 등이 있다”며 “특히 누정과 원림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남도가 보유한 문화적 자산”이라고 밝혔다.

이어 “누정 원림을 비롯해 의병 학술연구 등은 정신문화 재조명을 넘어 호남의 정체성 제고, 콘텐츠화 기초 작업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며 “향후 유관기관과 협력해 세계유산 및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한다면 긍정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호남진흥원은 호남 누정원림 조사 연구사업을 2022년부터 문체부 예산을 받아 추진 중이다. 2022년에는 광주, 전주 등 70개소 누정에 대한 기초조사를 추진했다. 2023년부터는 나주, 고창 60개소 누정에 대한 기초조사를 진행 중에 있으며 올해는 예산 삭감으로 50개소 조사를 펼칠 계획이다.

◇ 고려 선비의 지조가 깃든 누정 ‘독수정’

봄이 왔다. 봄이 온 것은 진즉이다. 외관상 봄은 산하의 구석구석에까지 당도해 기지개를 켠 지 오래다. 사방에서 꽃망울이 터지고 연두색 잎들은 물이 차오른다. 그러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봄은 봄이되 봄이 아니다’라는 말은 더이상 생소하지 않다.

해마다 이맘때면 아픈 역사와 대면하게 된다. 제주 4·3, 세월호 참사 4·16 등이 그렇다. 봄에 죽어가던 이들, 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진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생각난다. 어쩌면 4월은 그렇게 ‘잔인한 계절’이라는 가장 맞춤한 수사를 안고 다가오는지 모른다. 봄은 상실과 슬픔의 시간이자 시련과 고통의 시간인 것이다.

행장을 꾸렸다. 남도 산하를 누비며 누정을 찾아간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가늠해보는 시간인 것이다. 오늘은 과거가 쌓인 것이며, 미래는 오늘이 중첩돼 현현되는 ‘오래된 미래’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시간을 헛되이 흘려 보내서는 안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오늘 행선지는 독수정(獨守亭). 담양군 가사문학면(옛 남면) 연천리 산음동에 있다. 정자의 이름에서 환기되는 아우라가 간단치 않다. 절경 못지않게 이곳을 지은 주인장의 내면이 궁금해진다. 독심(毒心)을 품지 않고서야 누정에 ‘독’(獨)이라는 글자를 썼을까 싶다.

더욱이 이번 길은 얼마 전 선거가 끝난 터라 많은 생각거리를 준다. 옛 선비들의 지조와 기품이 깃든 누정에 오르면, 누가 당선이 되고 누가 낙선이 됐는지는 별반 중요치 않다. 그보다 주권자인 주인에 대해 성심과 성의를 다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그럴 인물인지만 생각될 뿐이다.

남도의 산허리를 하얗게 물들였던 벚꽃이 상기도 지고 있다. 간당간당 가지에 붙은 몇 잎만 하늘거린다. 잔향이 밀려온다. 꽃바람이려니 싶어 숨을 몰아 내쉰다. 봄이 주는 은전일 테다. 정자를 찾아 가는 길, 오르막길이 보인다. 가파르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수말스럽지만도 않다. 양편으로 오래된 나무와 대나무가 버성기듯 서 있는 풍경이 고답해 보인다. 누정을 지은 이의 성정이 그와 같으려니 어리짐작해 볼 뿐이다.

독수정은 고려말 북도안무사 겸 병마원수를 거쳐 병부상서를 역임한 전신민이 1398년(태조 2년) 지었다. 조선이 건국한 지 얼마 안 된 즈음이었다. 그러나 후손 전홍혁의 ‘독수정중수기’에 따르면 전신민 아들 전인덕이 건립한 것으로 돼 있어, 주인이 누구인지 명확히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호남창평지’에 게재된 ‘독수정술회병서’와 ‘독수정원운’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에서 전신민의 지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차마 죽지 못하고 은일한 신하 전신민’이라는 부분이 타당한 근거가 될 수도 있겠다.

독수정 가는 오르막길에 있는 청청한 대나무밭.
누정 주위으로 세월을 머금은 늙은 나무들이 보인다. 느티나무, 소나무, 회화나무, 참나무 등 친근하면서도 담담한 분위기를 피워내는 수종들은 언제 봐도 좋다. 배롱나무, 산수유나무는 살가운 미소로 정취를 발한다.

전신민의 호는 서은(瑞隱). 독수정(獨守亭)이라는 누정 이름과 절묘하게 상친한다. 서석산에 은거한다는 뜻인데 고려시대 무등산은 서석산으로도 불렸다.

‘지난 비바람에 가족을 이끌고 남으로 와, 서석산 북쪽 십여 리에 거처를 마련했다. 나라를 잃은 서글픔을 달래지 못한 신하는 죽지 못한 것이 한이 될 뿐이다.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기탁할 방도가 없어 마을 동쪽 언덕 높은 계곡이 에둘러 가는 정상에 작은 정자를 하나 지어 독수정이라 붙였다.’(‘독수정에서 회포를 서문과 함께 쓰다’ 중에서)

외로운 선비의 응어리는 무엇이었을까. 고려의 망국과 설움, 그리고 새로운 조선 왕조에 대한 순응의 갈림길에서 그는 비감했을 것이다. 올곧은 선비가 세상의 풍조를 따르기는 쉽지 않았을 터다. 방법은 두 가지, 죽음으로 충을 증명하거나, 세상과 동떨어진 은거 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절의가 깊었던 선비 전신민은 새 왕조를 섬기는 대신 은둔을 감행한다. “홀로 지킨다”는 의미의 ‘독수정’(獨守亭)을 짓고 신하의 길을 독야청청 걸어가리라 다짐했다.

세상 이치가 ‘하락’의 시간이 도래하면 인간들의 본성도 함께 드러나기 마련이다. 충신과 간신은 절체절명의 위기 때 갈린다. 어떤 이는 재빨리 신발을 바꿔 신고 ‘부름’ 받을 준비를 한다. 새로운 체제에 올라타 또 다른 영화를 도모한다. 그 같은 불편한 장면을 숱하게 봐왔고, 오늘도 보고 있다. 겉으론 대의와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 드리워진 일신의 안위와 출세 욕망까지는 온전히 가릴 수 없다.

고려가 기운이 쇠하고 망국으로 치닫지만, 전신민은 신하의 도리를 지켰다. 병부상서였던 그는 포은 정몽주와 함께 의를 지켰다. 포은이 선죽교에서 죽임을 당하고 고려가 망하자, 그는 고려에 지조를 지킨 두문동 72인과 은일을 선택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매일 예복을 입고 북쪽 성상을 향해 곡배를 드렸다 한다. 이곳이 다른 누정과 달리 북쪽을 향하고 있는 이유다.

정내에는 중수 내력을 담은 글, 전신민의 ‘독수정원운’에 차운한 시들, ‘독수정십사경’ 등의 시가 걸려 있다.

이곳은 누정이면서 원림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누정과 다르게 숲의 경관을 살려 최소한의 조경을 했다. 아름답고 소담한 숲의 동산에 살포시 정자를 앉힌 격이다. 자연을 들여왔다는 표현이 맞을 게다. 이곳에 정자를 지은 주인의 깊은 사유가 읽힌다.

마루에 걸터 앉아 잠시 고려 선비의 절의를 생각한다. 멀리서 맑은 새소리가 귓가를 적셔온다. 헌신짝 버리듯 신의를 저버리고 정치판을 옮겨 다니는 ‘철새’들이 많은 세상에서 전신민의 정신은 빛이 난다. 선비다운 선비가 그리운 시절이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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