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정취 가득 전남의 골목여행] 골목길 사이사이 추억이 ‘소곤소곤’
2024년 03월 18일(월) 19:15
‘진짜 골목’에서 만나는 옛 풍경…추억으로 떠나는 여정
목포 시화골목, 1980년대 모습 그대로…영화 촬영하기도
나주읍성 고샅길, 사대문·관아·향교 등 수백년전 역사속으로
담양 창평 돌담길, 100년 세월 품은 전통 가옥 시간이 멈춘 듯

담양 삼지내마을 돌담길

골목여행에는 재미가 있다. 추억이 있고 사연이 있고 오랜 세월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많아 북적여도 재미나고 거니는 이 없이 한가해도 좋다. 새봄을 맞아 영화 속에 등장하는 구불구불 산자락 골목길과 추억의 돌담길, 역사가 살아있는 이야기 고샅길까지 전남의 재미난 골목길로 안내한다.

◇목포 서산동 시화골목= 서산동 시화골목은 영화 ‘1987’ 촬영지로 더 알려져 있다. ‘1987’은 1987년 6월 항쟁을 그린 영화다. 작품 속 87학번 대학 신입생 ‘연희(김태리)’가 살던 달동네 구멍가게 ‘연희네슈퍼’는 목포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명소가 되고 있다.

시화골목은 ‘보리마당’으로도 불린다. 보리마당은 서산동 가장 윗자락 너른 공터를 말하는데 과거 이 일대가 보리밭이었고 예로부터 햇빛이 잘 들어 ‘보리 말리기 좋은 곳’이라고 해서 보리마당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보리마당 위에서 내려다보는 항구와 바다, 마을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골목 투어에 정답은 없지만 ‘연희네슈퍼’를 시작점으로 삼아도 좋다. 연희네 슈퍼는 198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자그마한 동네슈퍼다. 영화 속 연희가 어머니, 외삼촌과 함께 살던 집으로 ‘옛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곳’을 찾던 차에 이곳을 발견해 주요 촬영장소가 됐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영화 촬영 소품으로 꾸며져 있으며 물건을 판매하지는 않는다.

연희네 슈퍼를 기점으로 첫째골목, 둘째골목, 셋째골목으로 길이 나뉜다. 산자락을 따라 다닥다닥 집이 붙어 있고 사이사이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오랜 세월 속 주민들의 애환과 향수가 깃든 골목이 알록달록 시와 그림으로 채워지면서 ‘시화(詩畵) 골목’이 되었다.

시화골목은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이 목포 어촌의 상징인 서산·온금동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15년부터 3년에 걸쳐 지역 시인과 화가, 주민들과 뜻을 모아 조성했다. 예술가들은 널빤지에 시와 그림을 새겨 골목 곳곳에 걸고 집 주인의 사연을 시로 담아 그림과 함께 새겨넣었다.

‘다라로 쥐고기 가득이고 댕기믄서 자식들 키웠네. 아들 둘, 딸 셋 대학교, 대학원까지 보냈제. 아들들이 용돈 보내줘 딸들은 명절 때 제사때 돈도 보내고 두유도 보내준께 좋제. 자식들이 다 잘해준께 제일 행복하제’(김O심(88세) ‘자식자랑’)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게 힘이 들만도 하지만 시와 그림을 감상하며 걷느라 힘든지도 모르겠다. ‘씨레기는 모타서 깨깟이 갖고가씨요’(쓰레기는 모아 되가져가세요), ‘아따, 여그다 낙서를 하지 마랑께’(시화는 눈으로 감상하세요) 곳곳에 보이는 전라도 사투리도 정겹다.

싸목싸목 골목을 오르다보니 언덕이다. 뒤돌아보니 멀리 바다 위에 배 한척이 지나간다. TV에서나 보던 바닷가 마을 골목길. 운치있는 풍경이다. 언덕 위에는 드라마 ‘도도솔솔라라솔’ 촬영지로 사용됐던 진헤어와 행복꽃집이 나온다. 드라마 속 구라라(고아라)가 피아노 학원 라라랜드를 차렸던 곳이다.

◇나주 나주읍성 고샅길= 천년의 이야기가 있는 나주에는 나주읍성 고샅길이 있다. ‘고샅길’은 시골 마을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우리나라 옛 읍성은 골목골목 고샅이 잘 발달돼 있는데 여러 번 방문한 사람들조차 쉽게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나주읍성은 전국에서 유능한 지방 관리로 명성을 날렸던 나주 향리들의 삶을 그대로 간직한 고샅과 대로, 읍성, 사대문, 관아, 향교, 건축물 등 고려시대부터 구한말까지의 유산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고샅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천년의 시간과 마주할 수 있다.

나주읍성 고샅길은 워낙 넓다보니 ‘따릉따릉 동부길’과 ‘징검징검 서부길’로 나누어진다. 따뜻한 봄날 차분히 걸으며 골목을 즐길 수 있는 서부길을 따라 길을 나서보기로 한다.

금성관에서 시작하는 서부길은 나주목 문화관과 정수루, 목사내아 금학헌, 궁궐 돌담, 서성벽길과 서성문, 나주향교, 사마재길, 사마교와 사매기길, 연애고샅길, 남파고택, 샛고샅길을 돌아오는 길이다.

목사내아는 나주읍성 안에 있었던 여러 관아 건축물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중 하나다. 내아(內衙)는 조선시대 지방관아에 있는 안채를 가리키는 말로 현재는 숙박체험을 할 수 있는 ‘금학헌’으로 이용되고 있다. 내아 서편 담장에는 벼락을 맞아 두쪽으로 갈라지고도 살아남은 500년 넘은 팽나무가 우뚝 서 있다.

조선시대 나주읍성 4대 성문 중 하나인 서성문에도 고샅길이 있다. 일명 서성벽 고샅길이다. 구한말 일제의 성벽 훼손으로 많은 곳이 허물어지면서 갈 곳 없던 사람들이 허물어진 성벽 위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성벽에도 고샅길이 생겨났다. 성벽은 현재 서성문에서 나주천까지 250m 정도 남아있다.

사마재는 과거 소과 초시에 합격한 사람들이 모여 성균관에 입학하기 위한 시험을 준비하며 학문을 연마하던 곳으로 1879년 목사 백낙연이 창건했다. 이곳 사마재 앞길을 사마재길이라 부르며 나주읍성 고샅길 중에서도 가장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길로 꼽힌다.

사마재길로 향하는 입구에 ‘신숙주 한글 고샅길’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나주시 노안면에서 태어난 조선시대 문신 신숙주를 기리는 길로, 신숙주는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으며 한글창제에도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훗날 사육신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세조를 도와 배신자라는 오명을 남겼다. 고샅길 벽화에는 세종이 밤늦게 집현전을 찾았다가 잠든 신숙주에게 자신의 옷을 덮어줬다는 일화를 담은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름만으로도 솔깃해지는 ‘연애고샅길’은 금성관 동쪽 담장을 따라 좁고 길게 난 골목길이다. 남녀가 이 길을 마주 지나게 되면 옷깃은 물론 어깨까지 스치게 돼 연애 걸기에 좋다고 해서 붙여진 재미난 명칭이다. 지금은 한쪽 담장을 허물고 낮게 재조성한 탓에 훤히 내다보여 남몰래 연애하기에는 어렵지만 여전히 연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길이다.

나주 신숙주한글고살길
◇담양 슬로시티 창평 삼지내마을 돌담길= 고즈넉한 돌담길을 걸으며 시골마을의 정겨움을 느끼고 싶을 땐 슬로시티 담양 창평면 삼지내마을을 찾는다. 100여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전통가옥들과 함께 선조들의 삶과 지혜가 그대로 녹아 있는 이야기가 가득한 삼지내 마을은 지난 2007년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 마을로 지정됐다.

삼지내 마을의 백미는 3.6㎞에 달하는 돌담길이다. 등록문화재 265호로 지정된 돌담길은 ‘S’자 형으로 이어지며 마을고택과 조화를 이룬다. 담장은 돌과 흙을 사용해 만든 토석담이다. 모나지 않고 둥근 화강석과 논흙을 번갈아 쌓아 줄눈이 생긴 담장과 막쌓기 형식의 담장이 섞여 있다. 대체적으로 아래쪽에는 큰 돌을, 위쪽으로 갈수록 중간 돌과 작은 돌을 사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골목길을 걷다보니 담벼락 위 반쯤 열린 창살 사이로 정원이 들여다보인다. 운이 좋으면 활짝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가 고택이 주는 시간의 멈춤을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고재선 가옥과 고재환 가옥, 고정주 가옥 등 조선후기 전통적인 사대부 가옥을 만날 수 있으며 선비들의 풍류와 누정문화의 운치가 깃든 남극루와 상월정에서 잠시 쉼을 청할 수 있다.

어디선가 졸졸 흐르는 냇물 소리가 들려온다. 돌담길 아래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마을 동쪽에 있는 월봉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세 갈래로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다고 해서 삼지천(川), 삼지내 마을이다. 새마을운동 등 농촌 근대화 과정에서 사라졌던 개울은 마을이 슬로시티로 지정되면서 지난 2012년 복원됐다. 물소리를 동무삼아 골목길을 따라 한참 걸어 들어가니 새로 지은 듯한 한옥이 눈앞에 나타난다. ‘슬로시티’ 고장답게 한옥으로 지어진 면사무소다. 따뜻한 봄날 면사무소 안뜰로 나들이를 떠나도 좋을 것 같다.

/글=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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