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입문자를 위한 친절한 안내서
2020년 06월 19일(금) 00:00
열하일기 첫 걸음
박수밀 지음

드넓은 요양 벌판을 배경으로 서 있는 71m 높이의 요동 백탑은 많은 사신들이 으뜸의 장관으로 꼽았다. 연암도 ‘요동백탑기’를 남겼다. <돌베개 제공>

‘열하일기’는 ‘우리 고전 최고의 모험 서사’로 꼽힌다. 조선 후기 지성인 연암 박지원(1737~1805)이 당시 세계의 중심, 중국을 여행하면서 쓴 기행문이다. 그러나 단순한 문학서가 아니다. 연암이 중국대륙을 여행하면서 깨달은 사유와 세계에 대한 열망, 천하대세의 비전을 담은 글이다.

연암은 1780년(정조 5) 삼종형 명원을 따라 북경에 들른다. 명원이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 잔치에 진하사로 초청되자 함께 동행한 것이다. 당시 그는 중국의 역사와 지리, 풍속에 대한 내용을 글로 썼다. 여기에는 문학과 예술, 건축, 의학, 종교에 이를 만큼 방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열하일기’는 요즘으로 치면 연암의 대표 베스트셀러다. 자신의 공력을 쏟아 모든 장르를 포괄한데다 다양한 사상을 아울렀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형식의 여행기를 펴낸 것이다. 그러나 이후 우리의 문학이 얼마나 앞으로 나아갔을까. 그리고 우리가 자랑할 만한 문학적 성취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을까.


‘열하일기’ 입문자를 위한 친절한 안내서가 발간됐다. 이름하여 ‘열하일기 첫걸음’. 저자는 지금까지 ‘연암 산문집’,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등 박지원의 창의적 생각과 인문정신을 책으로 묶어냈던 박수밀 박사다. “박지원의 합리적 이성, 이덕무의 온화한 성품, 박제가의 뜨거운 이상을 품으려 한다”는 저자는 이번 책에서 열하일기 읽는 법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모두 네 가지 방식으로 ‘열하일기’를 접할 수 있다고 권한다.

먼저, 중국이라는 공간이 아닌 새로운 장소를 체험하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열하일기’는 여행기이며, 여행은 곧 장소 체험이다. 물론 공간은 물리적 배경만이 아닌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가 담긴 실존의 장소다. 당시 중국은 명나라를 무너뜨린 청나라로, 조선 사대부들의 인식에는 ‘무찌르자 오랑캐’의 이미지가 각인돼 있었다.

그러나 연암은 주입된 고정관념이 아닌 문명 체험의 장소로 바라본다. 그것은 곧 경계인의 시선인데, 중심과 보편의 자리에서 한발 물러나 개별의 자리에 섦을 의미한다.

두 번째, 저자는 작은 것을 다르게 보는 연암의 시선을 따라가자고 강조한다. 연암은 사람들이 버리는 ‘기와 조각’과 냄새나는 ‘똥거름’이 문명의 진수임을 알아챈다. 뿐만 아니라 정원에 냇가의 돌을 깔아 진창을 막는 모습을 보고는 “그들에게는 버리는 물건이 없음을 알겠다”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저자는 모험서사로 ‘열하일기’를 읽자는 관점도 견지한다. 북경에 도착한 일행이 열하로 떠나는 모습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모험이다. 중국에서 만난 친구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연암을 돕는 조력자가 되는 등 전체적으로 모험 성격이 강하다.

마지막으로 ‘열하일기’는 ‘우언문학’(寓言文學)이므로, 비유와 상징을 찾는데 묘미가 있다. ‘다른 사물에 빗대 의견이나 교훈을 은연중에 나타내는 말’을 우언이라고 한다. 연암의 다른 작품 ‘호질’ 또한 전체가 우언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언어 이면에 드리워진 감추어진 의도를 찾아 읽다보면 일말의 연암의 사유를 짐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내가 이 책에 담은 이야기는 열하일기가 보여 주는 넓고도 풍부한 세계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가 25년 이상을 연암에 집중하면서, 연암과 호흡하고 대화하고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그의 고민을 엿보고자 했던 흔적을 이 책에 오롯이 담았다”고 말했다.

<돌베개·1만7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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