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심심풀이 땅콩’ 이라구
2025년 07월 13일(일) 19:00
농산물품질관리사 김대성 기자의 ‘농사만사’
땅속에서 열매 맺어 영양·맛은 물론 지력 회복 이로운 작물

/클립아트코리아

‘심심풀이 땅콩’이라는 말이 있다. 심심할 때 땅콩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행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관용구로 열차나 비행기에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판매원이 땅콩을 권하던 것에서 유래한 듯하다. 또 좋지 않은 표현으로 키 작은 사람을 땅콩에 비유하기도 한다. 키만 작은 사람이 아니라 작고 뚱뚱한 사람을 얕잡아 부른 것인데 삼가야 할 언사다.

땅콩을 한자로 쓰면 토두(土豆) 즉 ‘땅에서 나는 콩’이다. 알이 단단한 껍질에 싸여 있어 견과류에 속하지만, 엄격하게는 콩 과류이다. 나무에서 자라는 견과류와 달리 땅속에서 열매를 맺는 작물이다. 땅콩은 수정된 열매가 땅속에서 크며 완두콩이나 일반 콩과 같이 신축성 있는 껍질로 씨를 보호한다.

땅콩을 다른 말로 ‘낙화생(落花生)’이라고 한다. 꽃이 떨어져 콩이 자란다는 의미다. 꽃은 노란색이며 꽃이 진 뒤에 꽃대가 땅속을 파고들어 열매를 맺는 특이한 생육을 한다. 밭에 땅콩을 심는다면, 물 빠짐을 생각해서 두둑을 높게 하고, 꽃이 필 무렵에는 수시로 북을 쳐줘야 한다. 꽃대가 흙 속에 묻히게 하기 위해서다.

땅콩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조선 정조 시절이다. 청나라로 사신으로 간 이덕무가 신기하게 여겨 재배법을 물었고, ‘무오연행록(戊午燕行錄)’을 쓴 서유문도 중국에서 처음 땅콩을 먹고는 종자를 가져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 심은 땅콩은 썩어 재배에 실패한 것으로 추정된다. 작물로 번성했다는 기록이 없다. 추사 김정희도 ‘완당집(阮堂集)’에 “중국에서 땅콩을 가져온 사람이 있는데 이게 우리나라에서 재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적었다. 이를 바탕으로 추측해 보면, 우여곡절 끝에 19세기 중반쯤 재배에 성공해 퍼지지 않았나 싶다.

땅콩은 한때 곡식이 부족할 때 고구마나 감자와 함께 배고픔을 줄여주던 구황작물이었지만 그 쓰임새가 무궁무진한 작물이다. 고지방 고단백으로 13종의 비타민, 26종의 무기질 등 탁월한 영양 성분은 물론 고소한 맛까지 품고 있어 그 효용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땅콩에는 불포화 지방산이 풍부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심장 건강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다. 땅콩에 포함된 레스베라트롤은 심혈관 질환 예방에 탁월하다. 또 비타민 E와 같은 항산화제가 포함돼 있어 세포 손상을 방지하고 노화를 늦추는 데 이바지한다. 식물성 단백질의 훌륭한 공급원으로 근육 형성과 유지에 도움을 주며, 비타민 B3(니아신)는 뇌 기능을 향상하고 기억력을 개선하는 데 효과가 있다.

땅콩을 먹는 방법으로는 볶아서 그대로 먹는 것이 가장 일상적이다. 대표적인 술안주다. 특히 맥주 안주로는 최고다. 보통 술집에서 먹는 땅콩은 모두 적절하게 볶아 가공한 땅콩이다. 커피와 설탕 결정을 입힌 커피땅콩, 소금이랑 유지로 간을 한 맛땅콩, 약간의 소금과 흑설탕으로 맛을 낸 꿀땅콩 등 여러 가지 간식거리, 안줏거리용으로 파생되었으며 땅콩버터 같은 가공식품도 인기가 있다. 밑반찬으로 간장과 물엿을 넣어 조린 땅콩조림(땅콩자반)도 있다. 학교 급식이나 식당 반찬으로 자주 등장한다.

땅콩은 구황작물이나 안줏거리, 간식을 넘어 땅의 지력을 회복시키는 이로운 작물이다. 논두렁이나 연작이 많은 땅에 땅콩을 심으면 지력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땅콩 뿌리엔 뿌리혹박테리아가 함께 살고 있는데, 이들은 공기 중 질소를 고정해 자연스럽게 땅을 비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같이 자라면 좋은 ‘동반식물’ 역할도 수행하는데 고추와 옥수수, 상추 등과 궁합이 좋아 함께 심으면 병해충 감소, 생육 촉진 효과가 있다.

실상이 이런데, 누가 감히 ‘심심풀이 땅콩’ 같은 관용구나 ‘게으르기가 땅콩 같다’라는 속담으로 그 존귀함을 깎아내릴 수 있겠는가. 모르긴 몰라도 우리 인생도 땅콩처럼만 살면 욕먹을 일은 없을 것 같다.

/big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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