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폭염이다. 갈수록 여름은 더욱 더워지고 겨울은 더욱 추워진다. 거기다 여름과 겨울은 길어지고 봄과 가을은 짧아진다. 해서, 언제 봄이었나 싶게 여름이 되고 언제 가을이었나 싶게 겨울이 되어 버리곤 한다. 예전 같으면 7월 말, 8월 초 사이 그 며칠만 견디고 나면 혹서기는 지나갔으나 우리 앞엔 찜통더위가 한동안 더 지속될 것이라는 징그런 현실이 떠억 버티고 있다.

얼마 전 2019 광주 FINA 세계수영선수권대회 폐회식에서 ‘사계절’을 테마로 한 공연이 열렸다. 사계절이 뚜렷할 뿐 아니라 아름답다는 자긍심이 퇴색되어 가는 즈음 마주한 거여서인지 눈길을 끌었다. 우리가 나고 자란 이 땅의 사계절을 우리의 전통 예술과 함께 잘 버무린 공연이었다. 아름다운 사계절의 진경을 보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화사한 봄꽃 속에서 어린 소녀가 사철가를 부르며 깡총 나왔다. 여리디 여린 몸에서 구성진 소리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 가락에서 절로 꿈과 희망이 샘솟았다.

그리고 여름이 왔다. 객석 사이를 크게 관통하며 흐르던 꽃의 봄강이 어느새 파란 여름강으로 변했다. 그러곤 질주했다. 쿵쾅거리는 음악, 연주자들의 절제된 연기와 목청이 한데 어우러진 가운데 미디어아트의 영상은 객석을 환상 속 현실로 가만히 이끈다. 계절은 여름에서 슬쩍 가을로 넘어가며 어느새 황금들녁이다. 온통 황금색이 넘실대며 풍요의 세계가 쫘악 펼쳐졌다. 객석 사이를 흐르는 무대는 어느 새 하얀 겨울 강으로 변했다. 눈발이 날리고 세상은 순백인데 저 멀리 무대의 들머리에서 한 세월을 견뎌내며 모든 것을 우려낸 듯한 목청이 눈강을 가르며 뻗어 나왔다. 세상을 가만히 그러나 차분히 쥐락펴락하는 듯한 강력한 카리스마가 소리에서 흘러나온다. 명창 안숙선이다. 때론 한스럽게 때론 강건하게 토해내는 그의 사철가는 객석을 확 휘어잡는다.

폐막 공연은 봄에서 여름으로 치달았고 가을로 갔는가 하면 겨울로 뛰어들며 객석을 뒤흔들었다. 대한민국의 사계절을 마음껏 담아냈다. 세련된 영상으로 계절의 강을 흐르게 했고 음악으로 계절의 체온을 보듬었으며 춤판으로 신명을 풀어냈다. 걸판지게 멋진 한판이 흥건히 벌어졌다. 그토록 아름다운 우리의 사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공연이었다.

퍼포먼스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ACC 예술극장 안은 한 순간 농악대가 신나는 농악놀이를 펼쳤고 공연에 참가한 모든 예술인들이 다 무대로 나왔다. 그리고 예술극장의 빅 도어가 쫙 열렸다. 야외 공간으로 농악대가 선두를 잡으며 객석의 관람객들을 밖으로 유도했다. 예술극장 앞 광장에서 예술인, 관객, 수영선수권대회 관계자들이 서로 뒤섞이며 한참이나 신명난 마당을 연출해냈다. 예술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즐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처럼 모두가 절로 어깨를 들썩이고 엉덩이까지 흔들며 신명난 시간을 만들었다.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공연으로 보는 즐거움이 정말 컸다, 여름은 더 더워지지 않고 더 길어지지도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혹서기의 한 중앙에서 간절히 외쳐본다. 우리의 사계는 아직 아름답다고. 그리고 그 순환하는 사계의 숨결 속에서 우리는 쉼 없이 아름다운 예술을 만들어내고 문화를 창조해 나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