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선을 중심으로 한 공업화 시대에 농도(農道) 전남은 소외의 대명사였다. 농산물의 부가가치는 형편없이 낮았고 값싼 수입산까지 밀려들었다. 많은 농민들이 새로운 직업을 찾아 고향을 떠나야 했다.

전남의 전성시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고종이 친히 ‘조선의 보고(寶庫)’라고 칭할 만큼 농수산물 생산량이 압도적인 때가 있었다. 1941년에는 인구가 265만여 명으로 경북보다 많았다. 이후 1970년 393만 명을 정점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공공·민간의 투자와 개발이 수도권·영남권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와 편리는 농업 혁명, 산업 혁명, 정보 혁명 덕분이다. 영국의 존 데스몬드 버널이 1939년 ‘과학의 사회적 기능’에서 주장한 것처럼 과학 기술이 사회 변혁의 원동력을 제공함으로써 이 같은 혁명은 가능했다.

무엇보다 이들 혁명의 가장 앞에 서고, 기반이 된 것은 농업 혁명이었다. 인간이 땅에 정착하고, 잉여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안정적인 상황에서 과학 기술의 발전도 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농어업의 중심지이자 생산량과 여건에서 여전히 타 지역을 압도하고 있는 전남으로서는 지금까지 농어업과 산업·정보와의 연계가 무엇보다 아쉬웠다.

전남도가 두 번의 도전 끝에 고흥에서 스마트팜(Smart Farm) 혁신 밸리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고흥만 간척지 일대에 1065억 원을 투입해 아열대 작물을 재배하는 대규모 유리온실, 기술 혁신 단지, 청년 보육 단지 등 첨단 농산업 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다. 농업과 제4차 산업 혁명의 핵심인 정보 통신 기술(ICT)의 접목을 시도한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이 사업이 전남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하고, 전남의 전성시대를 다시 여는 단초가 되기 위해서는 좀 더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농업·생명 공학·의학 관련 대학을 중심으로 20여 개의 농업 관련 연구 기관, 1500여 개의 관련 기업 등이 집적돼 있는 네덜란드 바헤닝언의 푸드밸리처럼 관련 산업과의 융·복합을 통해 제2의 농업 혁명이 시작되는 전초 기지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현석 정치부 부장 chad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