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元진, 779-831)의 자는 미지로 하남성 출신이다. 당 후기의 시인 겸 정치인으로 백거이와 함께 신악부(新樂府) 운동을 주도했다.

북위 선비족 탁발부 후예로 탁발 십익건의 14대 손이다. 일찍 부친을 여의고 모친을 따라 봉상 지역의 외숙에게 의지 하였다. 15세에 진사과에 합격했다. 21세에 하중부에 임명되고 22세에 산관장사랑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비서성 교서랑을 거쳐 806년 우습유가 되었다. 그해 헌종이 실시한 책시(策試)에서 백거이 등과 함께 출중한 실력으로 선발되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백거이와 평생의 친구가 되었다. 그는 헌종에게 간관을 중시할 것을 건의하였다. “예전에 태종은 왕규와 위징을 간관으로 삼고 정사를 논의할 때 반드시 참여시켜 득실을 헤아리도록 해 천하가 잘 다스려졌습니다.” 또한 바른 인사를 기용해 황자들을 잘 교육토록 권하였다. 809년에는 감찰어사가 되었지만 실세 환관 유사원의 비위를 건드려 호북성 강릉부 사조참군으로 좌천되었다. 형주에서 5년 가까이 지내면서 시 창작에 몰두해 거의 300여 수의 작품을 지었다. 초가십수(楚歌十首)가 대표작이다. 하루는 부수역이라는 역참에서 묵게 되었다. 환관 유사원 일행도 부수역에 유숙하게 되어 제일 큰 방을 원하였다. 역리는 이미 묵고 있는 분이 있다고 다른 방을 권했다. 유사원은 크게 화를 내며 원진이 묵은 방문을 걷어차며 방안으로 난입해 욕설을 퍼붓고 채찍으로 뺨을 내리쳤다. 결국 원진은 초주검이 되어 장안으로 돌아왔다. 조정 대신들은 유사원을 처벌해 줄 것을 황제에게 상소하였다. 그러나 헌종은 오히려 원진을 강릉으로 좌천시켰다.

10년에 걸친 지방 생활은 원진의 성격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세상을 구하겠다는 순수한 뜻을 접고 출세 지상주의자가 되었다. 819년 장안으로 돌아와 선부원외랑이 되었다. 지방 근무시 친해진 환관 최담준과 위홍간과 힘을 합쳤다. 목종 원년(821년) 고부낭중 겸 지제고로 승진하고 한림학사, 중서사인이 되었다. 위홍간이 그를 재상으로 추천하였다. 그는 번진과의 화해를 원하는 온건파였다. 배도는 하북 번진과의 전쟁을 종결하려는 환관 세력과 친밀한 그의 재상 임명안을 반대하는 상소를 세차례 올렸다. 목종은 원진을 공부시랑으로 삼았다. 비록 한림에서 해직되었지만 은총과 대우는 전과 같았다.

822년 재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하북에서 군대를 철수 시키고 배도의 병권을 박탈할 것을 주청하였다. 조정 대신들이 배도를 내치는 것에 반발하였다. 결국 배도를 재상으로 임명해 함께 정사를 보도록 하였다. 이로써 둘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우방이라는 자가 원진의 사주를 받아 배도를 해치려 한다”는 투서가 조정에 올라왔다. 조사 결과 배도를 제거하기 위한 음모로 확인되었다. 목종은 그를 동주자사로 좌천시켰다. 이후 월주자사와 절동관찰사를 거쳐 829년 상서좌승이 되었다. 831년 호북성 무창절도사로 재임중 53세로 병사하였다.

원진은 일찍부터 문재를 과시해 원재자(元才子)로 불리었다. 백거이와 함께 원백(元白)으로 호칭되었다. 백거이와 신악부 운동을 주도해 시가 혁신을 이끌었다. 그러나 문학적 재능은 백거이에 미치지 못하고 환관과 결탁하는 등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평판이 좋지 않았다. 남긴 시중에는 풍자시가 가장 많다. 장편 서사시 연창궁사(連昌宮詞)는 궁녀들의 대화 방식을 통해 당 현종의 사치와 황음을 고발한 내용으로 묘사가 세밀하고 구성이 치밀해 백거이의 장한가와 비교된다. 신악부는 당나라 문인들이 새롭게 제목을 붙여 창작한 악부시로 시성 두보에 이르러 크게 발전하였다. 한유와 유종원의 고문 부흥운동과 백거이, 원진의 신악부 운동이 당 후기에 크게 호응을 받았다. 신악부 운동은 중국 시가 사상 중요한 혁신의 하나로 자리잡아 후세 시가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여성 시인 설도와의 러브스토리도 유명하다. 감찰어사로 성도에 왔을 때 만나 사랑에 빠졌다. 몇 년 후 둘이 헤어지고 설도가 사랑의 시 100수를 써서 보냈는데 이에 답한 시가 유명한 기증설도(寄贈薛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