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陸贄, 754-805)의 자는 경여로 소주 가흥 출신이다. 대종, 덕종 때의 명신으로 안사의 난 이후 위기에 빠진 왕조 부흥에 기여했다.

부친 육간은 강소성 율양 현령을 지냈지만 요절했다. 모친 위씨 슬하에서 자랐는데 독립심이 강하고 학구열이 뛰어났다. 771년 진사에 급제해 화주 정현 현위에 올랐다. 덕종은 즉위하자 한림학사와 사부원외랑에 임명했다. 군사력을 가진 번진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삭번(削藩) 정책으로 조정과 번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783년 8월 경원병변이 일어났다. 조정으로부터 푸대접을 받은 경원진의 병사들이 일으킨 군사 쿠데타였다. 절도사 주차도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대진황제로 즉위했다. 황제를 수행해 섬서성 봉천으로 피난을 갔다. 많은 신료들이 도망갔지만 굳건히 황제의 곁을 지켰다. 황제가 피난길에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작위를 내리려 하자 “작위를 내리시는 것은 언제나 신중하고 아껴야지 가볍게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의 병폐는 바로 작위를 경시하는데 있으니 방도를 세워서 그것을 귀하게 하여야 합니다”고 반대했다. 황제가 대소사를 의논하니 사람들은 내상(內相)으로 불렀다. 피난 중 양주에서 황제와 길이 엇갈리자 황제는 그의 처지가 걱정스러워 울음을 흘렸다. 그를 찾는 자에게 천금을 주겠다고 말하였다. 무사히 복귀하자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그러나 잦은 직언으로 은혜와 대우가 융숭했지만 재상으로 발탁하지는 않았다. 심성이 음흉한 노기를 내칠 것을 건의했지만 관철되지 못했다.

덕종이 자신의 과오를 사과하는 죄기조(罪己詔)를 발표한 것도 그의 건의 때문이다. 대사면을 건의해 전열, 왕무준 등이 조정에 복귀했다. 장군 이성이 분전해 주차를 처형해 황제가 장안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복귀 후 중서사인이 되었다. 모친이 사망하자 낙양으로 내려가 절에서 생활하였다. 각지에서 많은 부의금이 왔으나 모두 거절했다. 모친상을 치른 후 병부시랑으로 복귀했다. 재상 두창이 그를 미워해 재상에 발탁하는 것을 반대했다. 792년 두창을 호남성 청주별가로 좌천시키고 중서시랑, 동평장사로 임명해 재상으로 발탁했다.

그는 왕조의 흥망성쇠는 인재의 등용에 달려있다고 건의했다. 조정에 인재가 부족한 7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인사기준이 불분명하고 참언을 맹신하며 과오가 있는 사람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커 재임용하지 않는 등 인사의 폐해를 강조했다. 인사선발의 범위를 넓혀 다양한 방법으로 인재를 선발토록 하고 재상뿐 아니라 관리들이 자유롭게 인재를 추천할 수 있도록 건의했다. 그는 “시험으로 사람을 뽑는다면 사람들이 잘 보이기 위한 잔재주에 몰두할 것이고 원칙을 지키는 올바른 사람은 뽑히지 않을 것이다”라며 지나친 과거시험 의존을 경계했다.

판탁지사에 배연령을 쓰려하자 반대했다. “탁지는 만가지 재화를 다루는 곳이므로 각박하고 인색하면 재난이 생기고 너그럽게 용서하면 쉽게 간사하게 됩니다. 배연령은 제멋대로 하는 소인이니 황상께 손상이 될까 두렵습니다.” 황제가 따르지 않았다. 경제운영과 관련해서는 농민과 지주계급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강조했다. 지주의 과도한 토지 소유를 제한하고 농민의 노역과 토지세 부담을 경감토록 건의했다. 그는 매사에 신중하였다. 이에 덕종은 “경은 청빈과 신중이 너무 지나쳐 지방에서 보내는 음식을 모두 거절하니 아마도 일의 사정이 잘 소통되지 못할까 걱정이 된다”고 말하였다. 그는 주문을 올려 “뇌물을 주는 길이 한번 열리면 더욱 심해지고 채찍이나 가죽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금과 옥에 이를 것입니다. 눈으로 보면 욕심이 생기는데 어찌 스스로 마음에서 막을 수 있겠습니까?”

계속되는 직언에 덕종은 그를 멀리하고 배연령을 가까이 하였다. 794년 재상에서 물러나 태자 빈객이 되었다. 배연령은 그가 군심(軍心)을 선동한다고 모함했다. 덕종은 그를 파면하고 죽이려고까지 하였다. 795년 충주별가로 좌천되었다. 그곳에서 10년간 두문불출했다. 말년 기후가 나쁘고 질병이 많은 백성들을 걱정해 ‘육씨집헌방’ 50권을 저술했다. 805년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