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빠진 간조에 맞춰 굴포나루 갯벌에서 주민이 낙지를 잡고 있다. 굴포마을 인근 바다에서는 낙지와 졸복, 간재미 등 다양한 어종이 풍부하게 서식하고 있다.

굴포마을 주민들은 바다와 땅이 주는 풍요로움에 감사함을 품고 살고 있다. 마을 인근 바다에서 잡힌 물고기를 말리는 모습이 소박한 어촌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아무 것도 없는 적막함이 오히려 이 마을을 빛나게 한다. 흔한 카페도, 군것질거리를 집어들 구멍가게도 없었다. 지나는 주민조차 몇 없는 작은 어촌마을. 고요한 굴포나루를 걷는 게 즐거웠고, 둥그러니 앉아 들이켰던 ‘졸복탕’ 한 그릇이 진한 여운을 남겼다.

진도군 임회면의 ‘굴포마을’은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진도라는 섬 자체가 그렇다.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은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후백제의 군사들을 진도에서 격파했고, 원나라(몽골)에 항전한 삼별초 배중손 장군이 최후를 맞은 곳이 굴포마을이기도 하다. 조선시대로 넘어와서도 진도는 왜군의 모진 침략을 견뎌야 했다. 임진왜란 당시 전략상 요충지인 진도에 상륙한 왜군은 약탈과 살인을 일삼았다.

진도는 예부터 유배지로 알려져 있다. 진도는 다른 섬들과 다르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토지가 많고 섬 주변 수산물도 풍부했다. 유배를 당했다고 해도 다시 관직에 오르는 이들은 늘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주민들은 뱃놈, 섬놈이라는 천시에 온갖 고초를 겪었다.

각종 전란과 양반들의 전횡에 이곳의 사람들은 많은 피와 눈물을 흘렸다. 남정네나 아녀자나 전쟁의 상처를 피해갈 수 없었다. 그렇게 쌓인 설움은 한 맺힌 ‘창’(唱)과 망자의 한을 풀어주는 ‘씻김굿’으로 승화됐다.

굴포마을 역시 동쪽과 남쪽으로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지역으로 토지도 비옥하다. 마을 주민들은 주로 톳과 미역, 김양식 등 수산업에 종사하면서 농사도 짓고 있다. 대파와 봄동, 월동배추가 주작물이다.

‘굴포’라는 마을의 이름도 일제시대 때 붙여졌다고 한다. 일본군은 마을 뒷산에 굴을 파놓았는데, 갯포가에 굴이 파여 있다는 뜻에서 굴포라는 지명으로 불리게 됐다고 전해진다.

후삼국시대부터 일제시대까지 수세기에 걸친 한을 품고 있지만 주민들에게선 그런 모습은 볼 수 없다. 낯선 이방인에게도 살갑게 말을 건네주고, 음식도 후하게 내준다. 비옥함이 주는 넉넉한 남도의 정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먼저 띄는 것이 ‘배중손 사당’이다. 배중손은 삼별초의 지휘관이었던 장군으로, 야별초지유(夜別抄指諭)들을 포섭해 1270년 삼별초항쟁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진도로 남천한 후 진도정권을 유지하는 동안 수령으로 추대됐다.

당시 독자적인 정부를 수립하고 강렬하게 저항했던 삼별초는 정부 수립 3일 후 진도로 항전의 거점을 옮긴다. 진도에 용장산성을 만들고 진도를 황도(皇都)라 부르며 장기항전을 벌였다. 고려와 몽골의 연합군의 공격을 수차례 버텨내던 삼별초는 1271년 5월 대군을 이끌고 출동한 여몽연합군에게 결국 패한다. 이때 배중손도 굴포마을 인근에서 전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배중손 사당에는 삼별초군을 호령하며 여몽연합군과 대항하던 배중손 장군의 동상이 근엄하게 서있다. 굴포항을 바라보며 서있는 배 장군의 동상 옆에는 늠름하게 뻗은 소나무 한 그루가 멋들어지게 서있다.

굴포마을을 방문하면 빼놓지 말고 먹어야 할 음식이 또 있다. 굴포나루(굴포항)에 있는 ‘굴포식당’이다. 이 식당은 ‘졸복탕’ 전문점이다. 음식점은 허름하다. 음식점인지 동네 구멍가게인지 정체를 모를 정도다. 작은 복어인 졸복(쫄복)을 우려낸 ‘졸복탕’만 팔고 있는데, 인근 지역에서는 이름난 맛집이다.

물건을 파는 공간과 주인이 거주하는 방이 딸려있다. 이 주인이 살던 방들이 곧 손님들이 앉는 공간이다. 예전 가족들이 둥그러니 둘러 앉아 식사를 하던, 꽃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진 밥상이 놓인다. 그 위로 온갖 젓갈과 각종 김치 등 밑반찬이 깔린다. 탕도 탕이지만 이 반찬들의 맛이 일품이다. 진도 주민들의 밥상, 남도 서민들의 밥상을 꼽자면 딱 이 집의 한상을 꼽고 싶을 정도다.

반찬을 맛보느라 밥 반공기를 비울 무렵 졸복탕이 나온다. 맑은 복지리(복탕)으로 해장을 즐기는 애주가들도 졸복탕을 맛보긴 힘들다. 졸복은 숙취해소에 최고의 음식으로 꼽힌다. 특히, 이 집의 졸복은 주인장이 직접 바다에 나가 잡아온다. 싱싱함은 말할 것이 없다.

독특하게도 굴포식당의 졸복탕은 맑은 형태의 다른 복탕과 모양새가 다르다. 고사리와 함께 푹 우려낸 이 집의 졸복탕은 얼마나 오랫동안 우려냈는지 국물이 뽀얗게 올라왔다. 여기에 파를 듬북 썰어넣은 양념장을 더해주면 시원하고도 칼칼한 졸복탕을 맛볼 수 있다. 일반 탕과 달리 국물이 진하고 점성이 있어 어죽과 그 형태가 닮았다. 주인장이 내오는 파김치를 곁들였을 때 맛의 정점을 찍는다.

배중손 사당과 졸복탕을 맛보는 것 외에도 주변 마을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워낙 고요한 마을인 탓에 바로 앞 굴포나루를 여유롭게 걷는 것도 제법 운치가 있고,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주변 마을을 둘러보는 것도 또 흥미롭다.

윗마을과 아랫마을인 웃굴포와 아랫굴포를 비롯해 염밭이 있다고 이름이 붙은 염전, 도적들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도적골, 서당이 있었다고 붙여진 서당골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박기웅 기자 pboxer@kwangju.co.kr

찾아오시는 길

▶승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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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시티터미널(호남) → 진도공용터미널(4시간40분) → 진도공용터미널정류장 도보이동(1분) → 팽목, 서망행 버스 승차(36분 이동) → 굴포마을 정류장 하차 → 굴포마을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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