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마을의 명물인 공룡알 크기의 몽돌이 늘어진 ‘공룡알 해변’.

보옥마을의 특산물인 낭장멸치. 가을이 되면 멸치를 삶는 연기가 마을을 휘감는다. /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동풍이 건듯 부니 물결이 곱게 일렁이네/돛 달아라 돛 달아라/동호를 돌아보며 서호로 가자꾸나/지국청 지국청 어기여차/앞산이 지나가고 뒷산이 다가온다”

고산 윤선도가 완도 보길도에서 머무르며 지은 연시조 ‘어부사시사’의 한 대목이다. 윤선도는 65세 되던 해 가을 벼슬을 버리고 보길도 ‘부용동(芙蓉洞)’에 들어가 한적한 나날을 보내며 완도의 한적한 섬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그가 시간여행을 하고 이곳을 다시 찾는다면 400년에 걸쳐 변함없는 풍광에 감탄했을 법하다.

완도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 선생의 숨결과 천혜의 아름다운 풍광 덕에 대한민국에서 지명도가 가장 높은 섬 중 하나다.

보길도 최고 명승 ‘세연정(洗然亭)’을 중심으로 낙서재와 동천석실 등 3곳을 잇는 내부 안쪽 수십만평의 산림 ‘윤선도 원림’도 펼쳐져 있다. 보길도의 존재를 알리려는 듯 날카롭게 솟은 보죽산은 보길면 보옥마을의 자랑거리다. 해발 195m이지만 여느 산보다 높게 느껴지기 때문에 마을에서는 ‘뾰족산’으로 부른다. 이곳에서는 지난 2008년 보길도와 노화도를 잇기 위해 개통한 보길대교와 마을이 한눈에 보인다.

노화도는 국내 최초로 전복 양식을 시작한 ‘부자 섬’이지만 보옥마을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멸치 말리기로 분주한 요즘 보옥마을의 널따란 곳이라면 어디든 은빛으로 물들어 있다. 보길도 해역에도 곳곳에 전복이 자라나고 있지만 유일하게 전복 가두리 양식장이 없는 곳이 바로 보옥리다. 보옥리 앞바다는 조류가 세고 파도가 높아 전복 양식을 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이다. 때문에 유일하게 멸치 어장이 주민들의 생계수단이다. 45가구 중 절반 이상이 멸치잡이를 하고 있으니 멸치는 주민들에게 삶 그 자체나 마찬가지다.

이곳 주민들은 여느 멸치와 달리 ‘낭장멸치’라고 부른다. 입구가 크고 끝은 좁은 사각뿔 모양의 자루그물인 ‘낭장망 그물’을 조류가 빠른 협수로에 설치해 멸치를 잡는다. 그물 이름에서 딴 이름이 어느새 보옥마을의 간판 특산품으로 굳혀졌다.

보옥마을에 시집 와 40년째 멸치로 자식농사를 지은 김영단(62)씨는 “멸치의 생명은 신선도”라고 말했다. 항구와 멀지 않은 곳에서 멸치 삶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보옥마을 어민들은 멸치를 신선하게 포장하기 위해 새벽에 멸치를 잡고 즉시 어장과 가까운 곳에서 이를 삶는 과정을 반복한다. 김씨는 “예전에는 나무를 때서 가마솥에 멸치를 삶았지만 지금은 자동화 공정 덕분에 1분여 남짓이면 삶아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청정식품을 운영하는 정춘배(60)씨는 “바빠 죽을 지경”이라고 엄살을 떨지만 모처럼 돌아온 대목에 입가에 미소가 가시지 않는다. 정씨의 작업장은 색깔이 하얗고 깨끗한 낭장멸치가 하루 200상자씩 포장해 내놓고 있다. 그는 진한 바다 내음이 묻어나는 멸치를 두 손 가득 들어보이며 “풍년이든 흉년이든 해를 거르지 않고 가을이면 햇멸치를 잡아올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바다가 보이는 곳을 향해 골목을 따라가다 보니 공룡알 해변이 눈앞에 펼쳐졌다. 듣던 대로 공룡알 해변의 돌은 여느 몽돌과 같이 둥글지만 그 크기가 자갈이 아니라 공룡알 정도다. 뒤뚱거리며 해변을 걷다 보니 이곳 몽돌처럼 모난 성품까지도 동글동글해지는 기분이다.

해변에서 만난 김임철(84)씨는 치열했던 도시 생활을 뒤로하고 36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한가로운 나날을 지내고 있다. 자신만의 산장을 지어 노후를 보내고 있는 그는 가장 좋아하는 산책로로 공룡알 해변, 보죽산 그리고 우암 송시열이 자신의 귀향길 심정을 한탄한 시를 새겨 놓은 ‘글씐바위’를 꼽았다.

“서해의 일몰을 볼 수 있는 망끝 전망대에서는 날씨가 좋으면 추자도와 제주도가 바로 보인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마을이 남향이라 사계절 따뜻한 햇빛을 맞을 수 있다”고 덧붙인 그는 “한 번만 와도 보옥의 진가를 알아보고 세 번 오면 이 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라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백희준 기자 bhj@kwangju.co.kr



찾아오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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