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중독
2018년 10월 22일(월) 00:00 가가
[문요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는데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이다. 뭔가 앞뒤가 안 맞는 제목 같지만 묘하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기분부전장애를 앓는 20대 후반의 한 직장 여성이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을 하면서 느낀 점을 쓴 책이라고 한다. 기분부전장애는 우울증과 비슷하지만 우울증과 달리 기분의 높낮이가 뚜렷하지 않고 2년 이상 지속적으로 우울한 상태를 말한다. 한마디로 ‘늘 우울한 성격’을 말한다. 기분부전장애는 흔히 섭식장애를 잘 동반한다. 음식이 우울한 기분을 달래 주는 오랜 친구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작가에게 떡볶이란 긴 우울의 시간 동안 그 마음을 달래 주었던 위로의 음식이지 않았을까?
음식은 단지 연료가 아니다. 가끔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괜히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닫을 때도 있고, 딱히 무언가를 꼬집어 먹고 싶은 것도 아닌데 왠지 뭔가를 먹어야만 해소될 것 같은 허전함도 있다. 이럴 때 느끼는 허기는 사실 신체적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경우가 많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심리적 허기는 종종 신체적 허기와 혼동된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로저 굴드는 이를 빗대어 우리 뱃속에는 두 개의 위장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소화를 담당하는 진짜 위장이고 또 하나는 ‘유령 위장’이라는 게 있다는 것이다. 이 유령 위장은 음식물이 비어 있을 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외롭거나 불안하거나 심심할 때와 같이 정서적인 결핍을 느낄 때 허전함의 신호를 보낸다. 즉, 심리적 허기가 크면 클수록 우리는 신체적인 필요와 상관없이 음식을 먹게 된다. 반대로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고, 활기가 있고,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겨질 때 이 유령 위장은 작동하지 않는다. 이 유령 위장은 진짜 위로를 받아 보지 못하거나 과도한 다이어트를 반복한 사람일수록 크다.
음식은 우리를 위로한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힘들 때, 누군가 정성스럽게 차려 준 밥상을 받고 나면 힘이 난다. 뜻대로 되지 않아 내가 형편없게 느껴질 때, 재료를 사다가 내 손으로 풍성한 식탁을 차려 먹고 나면 그래도 내가 괜찮게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는 가짜 위장과 진짜 위장을 구분해야 하는 것처럼 음식이 주는 가짜 위로와 진짜 위로를 구분해야만 한다. 진짜 위로는 마음을 진정시켜 다시 현실을 헤쳐 갈 힘을 주지만, 가짜 위로는 마음을 마비시켜 현실을 외면하게 만들고 만다.
지금은 어린아이가 울면 게임기나 스마트폰을 주지만 옛날에는 사탕을 주곤 했다. 아이는 울다가도 사탕을 보면 울음을 멈춘다. 그리고 사탕을 빨면서 이내 웃음을 되찾는다. 그렇다면 이 아이를 눈물 나게 했던 그 이유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 감정은 그냥 사라지는 것일까? 이런 위로에 익숙한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힘들 때마다 자신에게 먹을 것을 건넨다. ‘자, 이것 먹고 잊어 버려!’ 가짜 위로는 먹는 순간만큼만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행복하게 한다. 이는 뇌의 보상 시스템을 자극하여 중독의 회로를 만든다. 점점 먹는 것을 제어하기가 힘들고, 힘들 때마다 자꾸 음식을 찾게 된다.
그러나 같은 기분을 맛보기 위해서 점점 더 많은 물질이 필요한 중독처럼 가짜 위로는 점점 폭식으로 이어진다. 이는 늘 깊은 후회와 자책감으로 이어지고 다시 또 먹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먹고 후회하고, 후회하고 또 먹는 것이다. 그리고 점점 자극적 음식에 빠진다. 이러한 음식은 빠르게 쾌감을 일으키는 케이크, 떡볶이, 과자, 튀김, 치킨, 피자 등 달달하고 맵고 바삭거리고 기름진 음식들이다. 알코올 중독자에게는 술만이 유일한 삶의 낙이 되는 것처럼 음식 중독자에게는 음식만이 유일한 위로가 된다. 그 밖의 나머지는 의미를 잃어 간다. 그것이 음식 중독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중독에서 회복하는 길은 똑같다. 진짜 위로를 찾는 수밖에 없다. 일시적인 마비가 아니라 다시 힘을 내어 현실에 맞설 수 있는 진짜 위로를 만나야 한다. 그것은 당위가 아니라 음식보다 더 좋은 ‘위로’가 있음을 몸으로 경험해야만 한다. 운동, 신앙생활, 봉사 활동, 악기 연주, 예술 감상, 공예, 동식물 기르기, 귀촌, 요리 등 사람에 따라 다르다. 당신에게는 음식보다 더 좋은 위로가 있는가?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어린아이가 울면 게임기나 스마트폰을 주지만 옛날에는 사탕을 주곤 했다. 아이는 울다가도 사탕을 보면 울음을 멈춘다. 그리고 사탕을 빨면서 이내 웃음을 되찾는다. 그렇다면 이 아이를 눈물 나게 했던 그 이유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 감정은 그냥 사라지는 것일까? 이런 위로에 익숙한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힘들 때마다 자신에게 먹을 것을 건넨다. ‘자, 이것 먹고 잊어 버려!’ 가짜 위로는 먹는 순간만큼만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행복하게 한다. 이는 뇌의 보상 시스템을 자극하여 중독의 회로를 만든다. 점점 먹는 것을 제어하기가 힘들고, 힘들 때마다 자꾸 음식을 찾게 된다.
그러나 같은 기분을 맛보기 위해서 점점 더 많은 물질이 필요한 중독처럼 가짜 위로는 점점 폭식으로 이어진다. 이는 늘 깊은 후회와 자책감으로 이어지고 다시 또 먹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먹고 후회하고, 후회하고 또 먹는 것이다. 그리고 점점 자극적 음식에 빠진다. 이러한 음식은 빠르게 쾌감을 일으키는 케이크, 떡볶이, 과자, 튀김, 치킨, 피자 등 달달하고 맵고 바삭거리고 기름진 음식들이다. 알코올 중독자에게는 술만이 유일한 삶의 낙이 되는 것처럼 음식 중독자에게는 음식만이 유일한 위로가 된다. 그 밖의 나머지는 의미를 잃어 간다. 그것이 음식 중독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중독에서 회복하는 길은 똑같다. 진짜 위로를 찾는 수밖에 없다. 일시적인 마비가 아니라 다시 힘을 내어 현실에 맞설 수 있는 진짜 위로를 만나야 한다. 그것은 당위가 아니라 음식보다 더 좋은 ‘위로’가 있음을 몸으로 경험해야만 한다. 운동, 신앙생활, 봉사 활동, 악기 연주, 예술 감상, 공예, 동식물 기르기, 귀촌, 요리 등 사람에 따라 다르다. 당신에게는 음식보다 더 좋은 위로가 있는가?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