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경(709~785)의 자는 청신이며 장안에서 출생했다. 당나라의 대표적 서예가로 해서·행서·초서에 뛰어났다. 덕종때 난을 일으킨 이희열을 설득하러 갔다가 살해당했다. 안노공(顔魯公)으로 불리운다.

‘안씨가훈’을 저술한 안지추의 5대손이다. 부친 안유정의 7남 가운데 6째다. 734년 진사 갑과에 급제해 관직에 나아가게 되었다. 736년 비서성저작국 교서랑이 되었다. 748년 감찰어사가 되어 하서 지방의 민정을 살피게 되었다. 이때 유명한 어사우(御使雨)라는 일화가 탄생했다. 구당서 안진경전에 따르면 오원 지방에 억울한 송사가 있었는데 해결되지 못한지 오래되었다. 그가 부임해 판결하니 송사가 해결되어 가물었던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사람들은 이를 어사우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는 고지식한 원칙주의자로, 대부분의 관직 생활을 지방관으로 보냈다. 이때의 경험이 후일 안사의 난을 대처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755년 평원태수 재직시 안녹산의 난이 일어났다. 반군은 하북 24군을 석권했는데 오직 안진경과 종형인 상산태수 안고경만이 평원과 상산을 사수할 수 있었다. 결국 중과부적으로 퇴각하였다. 그 과정에서 안고경과 그의 아들 안계명 등 삼십여 명의 안씨 일족이 죽임을 당했다. 현종이 사천으로 피난가고 숙종이 제위에 오르자 헌부상서 겸 어사대부에 임명되었다. 숙종이 병환으로 죽고 대종이 즉위하니 원재가 정국을 좌지우지했다. 형부상서 겸 어사대부로 중앙에 복귀해 원재의 전횡을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미움을 받아 다시 지방관으로 좌천되었다.

11년간 지방관으로 보내면서 서도가 진일보했으며 각계의 명사들과 교류하였다. 768~777년 무주자사와 호주자사로 재임 중 많은 저술과 작품을 남겼다. 임천집, 마고선단기, 운해경원 등을 저술하였다.

777년 원재가 죽자 형부상서로 중앙에 복귀했다. 779년 대종이 죽자 예의사에 임명되어 장례 절차를 주관했다. 779년 9대 황제로 즉위한 덕종은 정치개혁과 더불어 번진 세력을 약화시키는데 열정을 기울였다. 그러나 재위 초 재상인 유안과 양염을 처형하는 정치적 실수를 저질렀다. 간신 노기가 재상이 되면서 권력을 장악했다. 노기는 음모에 능하고 시기심이 강해 안진경과는 물과 불의 사이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번진 세력이 자주 난을 일으켰는데 회서절도사 이희열도 그중의 한명이었다. 783년 이희열이 낙양을 점령하자 노기는 안진경을 중재자로 황제에게 천거했다. 황제는 그를 선위사로 임명하였다. 이희열 진영에 갔으나 2년여 억류되었다. 그는 이희열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안녹산에게 욕하며 죽은 사람인 안고경을 아는가? 바로 나의 형이다. 내 나이 여든이고 절개를 지키다 죽는 것을 알 따름인데 어찌 너희들에게 유혹과 협박을 받겠는가?” 결국 감옥에서 목졸려 생을 마감했다.

안진경은 적인걸, 우세남, 구양순과 함께 당대 4대 서예가로 불리운다. 그의 명성은 송대에 이르러 크게 평가되었다. 특히 조정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충신으로서의 인간적 측면과 함께 평가가 높아졌다. 왕희지의 여성적 서체와 대비되어 남성적 풍모를 보여준다. 여러 서체에 능해 당대 이후 중국 서예계를 사실상 지배했다. 그는 급제 이후 초서의 명인 장욱에게 사사해 필법을 배웠다. 전서의 대가 이양범, 장희관, 회소 등의 영향을 받았다. 안근례비, 안씨가묘비, 제질문고, 고신첩 등이 후대에 전승돼 사랑을 받았다. 다보탑기, 마고선단기 등과 같은 비첩들이 있으며 여러 묵적이 전해진다. 잠두연미(蠶頭燕尾), 안근유골(顔筋柳骨) 같은 표현이 그의 서체를 설명하는데 인용된다. 잠두연미는 서체가 누에머리와 제비꼬리 같다는 의미로 구양순과 흔히 비교된다. 안근유골은 안진경과 유공권의 글씨를 일컬을 때 사용되는 말로 글씨의 근기와 골기가 잘 갖추어졌다는 의미다. 그는 성당(盛唐)의 기상을 과시하였으며 해서에 창조성을 가미해 그것을 정형화했다는 평을 받는다. 소식은 “안진경은 서예의 집대성가”라고 평가하였다. 선조가 쌓아올린 가학의 토대 위에 고법(古法)을 일변하는 실력을 발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