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펼쳐진 물김 양식장과 굴 양식장 모습.

가을에 들어선 이즈음, 바다는 소리마저도 시원하다. 파도 소리에서 푸른 청량감이 묻어난다. 바다는 늦여름과 초가을의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 펼쳐져 있다. 사시사철 어느 때고 바다를 찾아가는 일은 설레지만, 이맘때의 바다가 주는 즐거움에 비할 바 아니다. 또 한 계절을 보내고, 새로운 계절을 받아들이는 바다는 다함없이 푸르다.

물론 삶의 현장인 어촌의 바다는 그 결이 다르다. 신열처럼 뜨거웠던 지난여름, 바다는 온몸으로 폭염을 받아내며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받아들임’이 숙명인 바다가 뙤약볕을 무시로 받아들일 때, 그것은 새로운 생명을 낳기 위한 숙연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진도 의신면에는 접도라는 어촌 마을이 있다. 지명치고는 생소한 이름이어서 필경 내력과 관련된 곡절이 있지 않을까, 의문이 들었다.

‘의신’(義新)과 ‘접도’(接島)라는 지명에서 추정해보면 역사적 유래가 깃들어 있을 터다. 예상했던 대로 ‘의신’(義新)은 남달리 의로움에 앞장섰던 고장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고려 말 몽고에 대항하다 진도로 내려온 삼별초의 의로움과 무관치 않다.

그렇다면 의로운 땅 의신면에 속한 ‘접도’(接島)라는 지명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말 그대로 인접한 섬이라는 뜻인데, 이곳은 원래 외따로 떨어진 섬이었다. 접도는 삼국시대에 4개 마을이 형성됐지만 현재는 3개의 마을이 있다. 1988년 금갑마을과 연륙이 돼 차로 오갈 수 있게 됐다.

그처럼 오늘날의 접도는 예전의 모습과는 다르다. 말 그대로 환골탈태(換骨奪胎). 외지인들이 무시로 찾아오고, 수산물 수확량도 늘고 있어 활기가 넘친다. 무언가에 부속돼 있다는 예전의 이미지보다는 주도적으로 마을 공동체를 꾸려가고 있다는 인상이 묻어난다.

아침나절부터 접도에 가기 위해 부산히 움직였다. 광주에서 접도까지는 넉넉잡고 2시간 30분. 거리상으로 그리 가깝지는 않지만 초가을이 주는 선선한 기운에 이끌려 부지런히 남행을 했다. 목포에서 해남에 들어서자 제법 노랗게 물든 들판이 보인다. 다행히 태풍 피해가 많지 않아 들판은 평온한 기운과 결실을 코앞에 둔 기대가 넘실거린다.

우수영에 당도하자 때마침 명량축제가 열려 사방이 축제 분위기로 들떠 있다. 진도대교 아래로 빠르게 흘러가는 물살이 가을햇볕을 받아 반짝인다. 400년이 넘는 시간을 넘어 이순신의 충혼을 되새기고자 하는 이들의 발길이 모여 인근은 장관을 이룬다.

그리고 얼마 후 당도한 의신면 접도. 이곳은 남서해 최남단 국립해상공원에 인접한 곳으로 오염되지 않는 청정해역과 아늑한 포구를 거느리고 있다. 특히 먹이사슬이 풍부해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며 전복, 굴, 김, 미역 등이 많이 난다. 지난 2010년 우수 어촌체험마을 선정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데서 보듯 입지적 조건, 주변 경관, 양식어장 등 환경이 좋다.

“우리 접도마을에서는 물김이 많이 납니다. 지난해 927t을 생산했는데 위판액으로 치면 85억 정도에 이릅니다.”

어촌계 일을 보고 있는 한해성(61) 사무장의 설명이다. 한 사무장은 “작년 접도가 속한 수품항 물김 위판액이 1000억 정도에 이른다”며 “바다가 오염이 안 돼 김발하기가 좋다”고 말했다.

이곳은 서남해안 끝이라 날씨가 좋은 날은 멀리 제주도가 보인다고 한다. 물이 깨끗한데다 해수온도가 적당한 것도 양식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다른 지역은 물김 생산을 대부분 3~4개월이면 끝나지만 이곳에서는 5~6개월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물김 생산이 5월 초까지 가능해 어가 소득 향상에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임정남(68) 이장은 “접도가 진도에서는 소득이 많은 마을에 속할 정도로 어장이 좋다”며 “수산물 뿐 아니라 인근에 웰빙 산책 코스도 있어 휴일이면 외지인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현재 접도마을에는 30여 가구가 있으며 모두 65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물김과 굴을 주 업종으로 하는 어가가 대부분이다. 주민들의 평균 나이가 60대 이상이지만, 젊은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예전에 비해 활기가 넘친다고 한다.

이곳에는 다양한 체험 관련 시설이 들어서 있다. 개막이 체험과 해상펜션낚시를 할 수 있으며 해상관광과 웰빙등산도 가능하다. 다가오는 미래가 더 밝은 것은 이색적인 휴양, 체험, 천혜의 환경, 풍부한 수산물뿐 아니라 주변의 볼거리도 풍성하기 때문이다.

‘모세의 기적’으로 유명한 신비의 바다가 펼쳐지는 회동마을이 멀지 않고 남도화맥의 절정인 남종화의 감성이 깃든 운림산방도 지척이다. 그뿐인가. 산별초의 대몽항쟁의 혼이 서린 용장산성, 남도 전통문화의 보고 남도국악원도 가깝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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