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순(歐陽詢, 557-641)은 호남성 담주임상 출신으로 자는 신본이다. 당나라 초의 대표적 서예가로 해서체에 뛰어났다.

부친 구양흘은 남조 진나라 광주자사로 19주의 군사를 10년동안 감독하였다. 재주와 책략이 있었으나 진의 선제가 의심을 품어 반역죄로 처형하였다. 부친의 친구였던 상서령 강총이 구양순을 입양해 길렀다. 키가 작고 인물이 못나 남의 업신여김을 받았으나 매우 영특했다. 강총에게서 글과 셈을 배웠다. 경전을 폭넓게 읽었는데 특히 삼사(三史)에 정통했다. 수대에서의 벼슬길은 순탄치 못해 수양제 아래서 태상박사를 지냈을 뿐이다. 당 고조 즉위 후 급사중으로 발탁되었다. 정관 원년(627년) 태자솔경령·홍문관학사 등을 거쳐 발해남현령에 봉해졌다. 그러나 원로 문신으로 정치적 역량은 크지 않았다. 수말기 화폐가 남발되어 경제에 혼란을 초래했다. 가죽을 잘라 종이를 풀로 붙여서 화폐를 만들게 되자 백성들 사이에서 원성이 컸다. 처음으로 개원통보 전을 시행했는데 그에게 글자를 지어서 아울러 쓰게 하여 돌려 읽을 수 있게 하였다. 626년에는 20여만권의 책을 모아놓은 홍문관의 학사가 되어 숙직하며 강론하고 연구하였다. 우세남, 지량, 요사렴, 채율공, 소덕언 등과 함께 학사로 발탁되었다.

초기에는 동진의 왕희지 서법을 모방하였으나 점차 자신만의 독특한 서법을 만들어냈다. 필력이 기이하고 힘이 넘쳐 당시 최고로 꼽혔다. 전서, 예서, 행서, 해서, 초서 등을 자유로이 썼으나 특히 해서에 뛰어났다. 사람들은 그가 쓴 문장을 해서의 전범으로 여겼다. 고조는 그의 필체를 보고 감탄해 “구양순의 서예가 이리도 명성이 있는 줄 몰랐다. 멀리 있는 이민족들이 그의 작품을 보고 분명 그를 우람하고 장대하다고 생각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하루는 길을 가다가 색정이 쓴 비석을 본적이 있었다. 그는 한참을 보고 돌아서 가다가 다시 돌아와 삼베 방석을 꺼내고 앉아 비석 옆에서 밤을 지내며 3일을 머무르다 떠났다. 624년에는 고조의 칙명을 받아 배구, 진숙달과 함께 예문유취 100권을 편찬해 황제에게 진상하니 그 공으로 비단 200단을 받았다.

저수량이 우세남에게 자신의 서체가 구양순과 비교해 어떤지 물었다. 우세남이 말하기를 “구양순은 어떠한 종이나 붓이라도 원하는 문장을 쓸 수 있다고 합니다. 당신이 어찌 그리 할 수 있겠습니까?” 저수량이 어찌하면 되냐고 묻자 “당신이 문장의 조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분명 존경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답하였다.

남조 왕희지의 서법을 배우고 북조의 웅건한 서체를 흡수했다. 당초의 저수량, 우세남과 함께 삼대가로 불리며 중당의 안진경과 함께 사대가로 불린다. 특히 해서의 극칙(極則)으로 칭송받았다. 그의 서적은 비서와 서법으로 전해지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이다. 불후의 문장으로 평가되는데 후일 그의 서체를 구성궁체, 또는 구체라고 하였다. 구성궁예천명은 632년 당 태종이 수왕조의 인수궁을 수리해 구성궁으로 개칭하고 이곳에 피서하러 갔는데 단맛이 나는 샘물이 솟아난 사실을 기념한 것이다. 시중 위징이 찬(撰)하고 구양순이 썼다. 그의 나이 76세때의 작품으로 비문은 24행이며 50자로 되어 있다. 구양순은 일찍부터 글씨를 쓸 때 붓이나 종이의 질을 따지지 않았다.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말년에는 자신의 격을 높이며 생활했다. 여우의 털로 붓을 만들고 그위에 토끼의 털을 입혔다. 붓통은 상아나 무소뿔로 만들어서 사용했다. 이렇게 만든 붓이 아니면 글을 쓰지 않았다.

그의 아들 구양통(歐陽通)도 아버지의 글을 열심히 공부해 뛰어난 서예가가 되었다. 부자가 모두 ‘대소구양체(大小歐陽體)’로 이름을 떨쳤다. 중서사인을 거쳐 전중감, 발해남의 작위를 수여 받았다. 간언을 주로 하는 납언의 지위에 올라 무관들의 뜻을 거슬렀다. 이에 동료 금장청이 대역죄인으로 사형에 처해졌다. 혹리 내준신이 진술서를 허위로 작성하여 그도 역모로 몰아 사형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