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집 ‘거듭 나, 당신께 살러 갑니다’ 펴낸 선안영 시인
2018년 07월 16일(월) 00:00 가가
“묵은 어둠 둘둘 말아서 버린 느낌”
유장한 시조에 입힌 현대적 이미지
“부친과의 필담, 시인의 길 이끌어”
유장한 시조에 입힌 현대적 이미지
“부친과의 필담, 시인의 길 이끌어”
선안영 시인
“짓눌려왔던 어둠을 커다란 두루마리에 말아서 버린 느낌입니다.”
예술가들에게 창작은 지난하면서도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생명을 출산하는 산고(産苦)와 같다고 말하는 건 그 때문이다. 예술 장르 가운데서도 문학은 상상력과 체험으로 이뤄지는 원초적인 분야다.
이번에 세 번째 시조집 ‘거듭 나, 당신께 살러 갑니다’(발견)를 펴낸 보성 출신 선안영 시인. 선 시인은 이번 창작 과정을 ‘어둠을 두루마리에 말아서 버린 것’에 비유했다. 시를 쓰는 고통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기자는 시인의 말이 시적인 표현이라는 생각도 잠시, 시를 쓰도록 강제했을 ‘시적 상황’이 궁금했다.
“책을 내는 과정에서 친정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셨어요. 살아계실 때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이었습니다. 안 계신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너무도 마음이 아프네요.”
작품집 발간 소식을 전해오는 시인이 내밀한 이야기를 꺼냈다. 시를 쓰게 된 계기, 문학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가는 이유 등을 조곤조곤 풀어냈다. 시조를 쓰는 시인이라 그런지 말에서 어느 정도 율격이 느껴졌다. 성정이나 스타일이 시조를 쓸 수밖에 없는 시인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성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성 시인은 지난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됐다. 줄곧 광주에서 작품활동을 해왔지만 지역의 문학행사나 문단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이었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저는 글을 쓰지 않았을 겁니다. 아버지는 청각장애인이었죠…. 어릴 때부터 늘 편지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모두 5남매인데 제게 그 역할이 주어졌고,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글의 힘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선 시인은 편지를 쓰면서 문장력이 길러지고 아버지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고 했다. “왜 시인이 되었냐고 묻는다면 편지의 힘,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환경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작품집에 유독 ‘그늘’의 흔적이 많이 보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화자의 음성은 하나로 묶을 수 없는 다향적(多響的)인 울림을 준다.
“울 엄마 뒤꼍에서 손 놓고 흐느낄 때/ 자스락 물 떨어져 물 동그라미 그릴 때/ 몰랐다/ 웃음으로만/ 씻어지는 이름 한 채// 소금포대가 녹아내린 흰 가슴에 매달려/ 어미의 젖은 숨에 어린 숨을 들이밀면/ 지갑 속/ 유빙이 흘러 흘러/ 뼈 속까지 가난하던”(‘그늘의 연(緣)’ 중에서)
위에 언급한 ‘그늘의 연(緣)’은 화자로 치환되는 시인의 정서와 체험이 응축돼 있다. ‘어미의 젖은 숨에 어린 숨을 들이밀’며 성장한 화자에게는 ‘뼈 속까지 가난하던’ 불운한 기억과 생의 비의가 드리워져 있다.
해설을 쓴 유종인 시인은 “파열음의 근저는 바로 ‘가난’과 ‘울음’의 기조에서 출발한다. 그림으로 치자면 가난은 바탕이고 배경이며 울음은 그 바탕과 환경을 확인하고 견디는 내면의 방식으로서의 붓질인 셈이다”고 평한다.
유 시인의 평이 아니라도 선안영 시인의 시조는 다향적이며 다성적인 아우라를 발한다. 파도처럼 넘나드는 율격, 유장하고 유려한 사설시조의 느낌이 묻어난다. 현대 모더니즘의 이미지를 시조에 덧입힌 덕분에 작품이 세련되면서도 깊이가 있다. 시인의 성정이나 기질이 시조라는 형식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선 시인에게도 여느 문인들처럼 오랜 습작 시절이 있었다. 문학소녀였던 중고교 시절을 지나 조선대 국어교육과에 진학한 이후로는 문학 동아리 ‘나락’에서 활동했다. 졸업 후 교사보다는 일반 직장인의 길을 선택했다.
“LG가전 홍보부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어요. 이후 삼능건설로 이직해 분양사업부에서 아파트 분양 관련 업무를 봤구요. 그러다 아이들 논술을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 사이 동아리 선후배나 문학활동을 하는 지인들의 등단 소식을 접하게 된다. “안에서 꿈틀대는 글에 대한 열정을 억누를 수 없었던” 그녀는 절치부심 마침내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과 이후 중앙시조대상 신인상을 거머쥐게 된다.
큰 상을 받고 나면서 선 시인의 이름은 중앙 문단에까지 알려진다. 시조 전문문예지에서 수차례 특집으로 다룬 바 있고, 2016년에는 유망작가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또한 올해는 제6회 발견작품상(500만원)에 선정돼 다시 한 번 시단에 그녀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고재종 시인은 “남도 시단에서 선 시인은 의미있는 위치를 점하고 있다”며 “향후 작품활동이 기대되는 시인”이라고 상찬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예술가들에게 창작은 지난하면서도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생명을 출산하는 산고(産苦)와 같다고 말하는 건 그 때문이다. 예술 장르 가운데서도 문학은 상상력과 체험으로 이뤄지는 원초적인 분야다.
이번에 세 번째 시조집 ‘거듭 나, 당신께 살러 갑니다’(발견)를 펴낸 보성 출신 선안영 시인. 선 시인은 이번 창작 과정을 ‘어둠을 두루마리에 말아서 버린 것’에 비유했다. 시를 쓰는 고통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기자는 시인의 말이 시적인 표현이라는 생각도 잠시, 시를 쓰도록 강제했을 ‘시적 상황’이 궁금했다.
작품집 발간 소식을 전해오는 시인이 내밀한 이야기를 꺼냈다. 시를 쓰게 된 계기, 문학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가는 이유 등을 조곤조곤 풀어냈다. 시조를 쓰는 시인이라 그런지 말에서 어느 정도 율격이 느껴졌다. 성정이나 스타일이 시조를 쓸 수밖에 없는 시인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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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저는 글을 쓰지 않았을 겁니다. 아버지는 청각장애인이었죠…. 어릴 때부터 늘 편지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모두 5남매인데 제게 그 역할이 주어졌고,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글의 힘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이번 작품집에 유독 ‘그늘’의 흔적이 많이 보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화자의 음성은 하나로 묶을 수 없는 다향적(多響的)인 울림을 준다.
“울 엄마 뒤꼍에서 손 놓고 흐느낄 때/ 자스락 물 떨어져 물 동그라미 그릴 때/ 몰랐다/ 웃음으로만/ 씻어지는 이름 한 채// 소금포대가 녹아내린 흰 가슴에 매달려/ 어미의 젖은 숨에 어린 숨을 들이밀면/ 지갑 속/ 유빙이 흘러 흘러/ 뼈 속까지 가난하던”(‘그늘의 연(緣)’ 중에서)
위에 언급한 ‘그늘의 연(緣)’은 화자로 치환되는 시인의 정서와 체험이 응축돼 있다. ‘어미의 젖은 숨에 어린 숨을 들이밀’며 성장한 화자에게는 ‘뼈 속까지 가난하던’ 불운한 기억과 생의 비의가 드리워져 있다.
해설을 쓴 유종인 시인은 “파열음의 근저는 바로 ‘가난’과 ‘울음’의 기조에서 출발한다. 그림으로 치자면 가난은 바탕이고 배경이며 울음은 그 바탕과 환경을 확인하고 견디는 내면의 방식으로서의 붓질인 셈이다”고 평한다.
유 시인의 평이 아니라도 선안영 시인의 시조는 다향적이며 다성적인 아우라를 발한다. 파도처럼 넘나드는 율격, 유장하고 유려한 사설시조의 느낌이 묻어난다. 현대 모더니즘의 이미지를 시조에 덧입힌 덕분에 작품이 세련되면서도 깊이가 있다. 시인의 성정이나 기질이 시조라는 형식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선 시인에게도 여느 문인들처럼 오랜 습작 시절이 있었다. 문학소녀였던 중고교 시절을 지나 조선대 국어교육과에 진학한 이후로는 문학 동아리 ‘나락’에서 활동했다. 졸업 후 교사보다는 일반 직장인의 길을 선택했다.
“LG가전 홍보부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어요. 이후 삼능건설로 이직해 분양사업부에서 아파트 분양 관련 업무를 봤구요. 그러다 아이들 논술을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 사이 동아리 선후배나 문학활동을 하는 지인들의 등단 소식을 접하게 된다. “안에서 꿈틀대는 글에 대한 열정을 억누를 수 없었던” 그녀는 절치부심 마침내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과 이후 중앙시조대상 신인상을 거머쥐게 된다.
큰 상을 받고 나면서 선 시인의 이름은 중앙 문단에까지 알려진다. 시조 전문문예지에서 수차례 특집으로 다룬 바 있고, 2016년에는 유망작가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또한 올해는 제6회 발견작품상(500만원)에 선정돼 다시 한 번 시단에 그녀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고재종 시인은 “남도 시단에서 선 시인은 의미있는 위치를 점하고 있다”며 “향후 작품활동이 기대되는 시인”이라고 상찬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