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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의 세상만사] 꿈의 그라운드 “심장이 터져도 좋았다”

2018. 07.13. 00:00:00

어릴 적 시골 마당에서 돼지 오줌보(방광)에 바람을 넣은 공을 발로 툭툭 치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 축구공이 없거나 드물던 시절, 옛날 세대들은 실제로 그렇게 돼지 오줌보 공으로 축구를 했다.
공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했다. 먼저 돼지 오줌보에서 오줌을 빼내고 밀짚대 같은 것으로 바람을 넣은 뒤 끄트머리를 묶으면 된다. 하지만 이런 풍선 모양의 형태로는 너무 가벼워서 방방 뜰 뿐, 제대로 공을 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오줌을 다 빼내지 않고 어느 정도 남겨두곤 했다. 오줌을 남겨 놓은 채 바람을 넣으면 무게감이 생겨 드리블이나 패스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국내에 축구가 소개된 것은 1882년(고종 19년)이라는데, 돼지 오줌통 축구의 역사는 당연히 훨씬 더 고대로 올라간다. 삼국유사만 봐도 김유신과 김춘추가 ‘축국’(蹴鞠)을 즐겼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때 사용한 공이 바로 돼지나 소의 오줌통에 바람을 넣어 만든 것이었을 것이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이 바야흐로 결승전만을 남겨 두고 있다. 파죽지세의 프랑스와 천신만고 끝에 올라온 크로아티아의 한판 승부.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월드컵 열기도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두 걸출한 스타를 이번 월드컵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31세가 된 메시와 33세의 호날두는 이번 월드컵이 마지막일지 모른다. 누가 그랬던가. 전설은 막을 내리고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호날두의 멋진 인생 스토리

그들이 떠난 지금, 이제 열아홉 살 음바페(프랑스) 같은 어린 친구에게나 기대를 걸어야 하나. 왕년의 차범근보다 더 빠른 스피드로 측면을 돌파하는 음바페는 준결승에서 쓸데없는 지연 플레이로 비난을 받았다. 이에 비해 호날두는 품격 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역경을 딛고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됐다는 점에서 그는 충분히 존경받을 만하다.
참고로 포르투갈의 호날두(33)는 브라질의 전설 호나우두(42)와 동명이인이다. 로마자로 적어 놓으면 철자가 같은데 한글 표기는 달리 한다. 우리나라 외래어 표기법이 발음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같은 포르투갈어인데도 이름(Ronaldo) 중간에 있는 ‘엘’(l)을 포르투갈에서는 ‘ㄹ’ 받침으로 발음하지만 브라질에서는 ‘우’로 발음하기 때문에 각기 호날두와 호나우두가 된 것이다.
내가 호날두를 좋아하게 된 것은 밤을 새워 가며 위성중계를 통해 만날 수 있었던 멋진 ‘가위차기(오버헤드킥) 골’도 골이지만, 인터넷에 떠다니는 그의 멋진 인생 스토리를 접한 뒤부터다. 혹시 아직 못 봤을 독자를 위해 여기에 잠시 소개해 본다.
“어릴 적부터 가난이 너무나 싫었지만 도망치고 또 도망쳐도 결국 가난은 나를 잡아먹었다. 나의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였다. 형은 마약중독자였다. 가난한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은 청소부 일을 하는 우리 어머니였다. 청소부 일을 하는 어머니가 난 너무 부끄러웠다.” 여기까지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이제 그는 어떻게 해서 축구를 시작하게 됐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어느 날 빈민가 놀이터에서 혼자 흙장난을 치던 나에게 보인 것은 저 멀리서 축구를 하는 동네 친구들이었다. 내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나를 축구에 끼워 주지는 않았지만 원망하지는 않았다. 우연히 날아온 축구공을 찼을 때 난 태어나 처음으로 기쁨을 넘어선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어머니, 저도 축구를 하고 싶어요. 축구 팀에 보내주세요.” 철없는 아들의 부탁에 어머니는 당황했다. 자신들의 형편으로는 비싼 축구 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기에. 그렇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꿈을 무시할 수 없었다. “겨우 저렴한 가격으로 팀에 들어올 수 있었던 나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패스 한번 받지 못하고 조명이 꺼지고 모두가 돌아간 뒤에는 혼자 남아 축구공을 닦아야 했다. 시간이 흘러 난 꿈에 그리던 그라운드에 데뷔하였다. 내가 바라고 바랐던 축구장. 난 이 무대에서 죽을 각오로 뛰고 또 뛰었다. ‘심장이 터져도 좋다.’ 그렇게 나의 데뷔전이 끝났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나를 이적시키고 싶다며 직접 나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세계 최고의 구단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퍼거슨 감독이었다. 통화를 끝낸 후 나는 흐느끼며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더 이상 청소부 일을 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이 수화기를 잡고 울고 계셨다.”

공도 둥글 삶도 둥글둥글

호날두는 최고 몸값의 축구선수인 만큼 실력도 출중하지만, 그가 한 해 기부하는 금액이 한국인 5천만 명이 한 해 기부하는 금액보다 많다고 한다. 그는 소말리아에 300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으며 아동 질병 퇴치와 아동 구호 운동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호날두에게는 운동선수들에게 아주 흔한 문신 하나도 없다고 한다. 문신을 하면 헌혈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니 이 얼마나 감동적인가.
이쯤 되면 호날두와 호날두가 있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텔레비전에서 ‘오 필승 코리아’ 가락이 흘러나오자 ‘오 미스 코리아’라고 열심히 따라 불렀다는, 축구를 전혀 모르는 아줌마라고 해도 말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89분을 잘 싸워도 한방으로 질 수 있는 것이 축구’라 했다. 인생도 그럴 것이다. 어느 시인이 말했지 않나.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것은 잠깐이라고. 그래도 아직 쓸쓸함에 젖기에는 가을이 너무 멀다.
흔히들 ‘공은 둥글다’고 한다. 축구 경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이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당시 서독 팀 감독이었던 제프 헤르베르거가 헝가리와의 예선전에서 크게 패한 뒤 처음으로 한 말이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결승전에서 다시 만난 헝가리 팀에 3대2로 극적인 역전승을 하면서 ‘공이 둥글다’는 사실을 제대로 입증했다. 하긴 이번에 크로아티아가 결승까지 올라오리라고 예상한 사람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어찌 됐든, 인간은 본시 둥그런 공(球)을 좋아한다고 한다. 동물들도 역시 둥근 공을 좋아한다. 우리 속담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이 있다. 축구를 보면서, 월드컵을 즐기면서, ‘우리 모두 공처럼 둥글둥글 살자’고 말한다면 젊은이들이 ‘꼰대 같은 소리’하고 있다고 수군대려나? 그래도 어쩌랴. 나이가 든 탓인지 ‘모나게 살아서 좋을 것은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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