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시대 식량을 얻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였다. 채집, 수렵, 고기잡이. 인류가 발전하면서 채집은 농경으로, 수렵은 목축으로 바뀌었다. 고기잡이만이 200만 년 넘게 식량 획득 수단으로서의 위상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기잡이를 이끌어왔던 어부와 어부 사회는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대체로 그들은 무명의 존재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자신들의 체험이나 견문을 전수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고기잡이 역사의 상당부분이 그들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 것은 그 때문이다.

인류사가 지금껏 놓친 바다와 바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갈무리한 책이 나왔다. 인류의 문명이 어떻게 바다를 기반으로 식량을 조달했는지 책은 면밀하게 조망한다. 캘리포니아대학 고고학과 명예교수인 페이건은 그동안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고고학을 전달하는 데 주력해왔다.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 ‘인류의 대항해’, ‘위대한 공존’ 등 그동안 펴냈던 책들은 인류 문명사를 조명한 기념비적인 저서들이다.

이번에 펴낸 ‘피싱’ 또한 앞서의 연구와 동일선상에서 볼 수 있다. 저자는 문명 발달에 있어 수렵과 사냥 못지않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고기잡이에 초점을 맞춘다. 정작 자신은 “낚시 실력은 내세울 만한 수준이 아니다”면서도 “어부들이 현대 세계가 세워지는 데 어떻게 이바지했는지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출간 의미를 설명한다.

언론과 학계에서 쏟아지는 찬사는 이 책의 진가를 말해준다. ‘이코노미스트’는 “인류 문명이 어떻게 바다에 의존해 식량을 확보했는지 생생하게 보여 준다”고 평했고 소피아 페르디카리스 뉴욕시립대 대학원 교수는 “인류학, 고고학, 문명사, 역사, 생태학, 인문 등에 두루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꼭 읽어볼 만한 필독서”라고 추천한다.

저자는 고기잡이는 탐험, 항해, 교역 등 인간의 이동 생활을 견인했다고 본다. 고기잡이 가운데 배와 관련된 기술은 이러한 역동적인 활동을 가능하게 했다. 더욱이 물고기는 건조하거나 염장 처리하면 운반이 용이했고 영양분 또한 크게 손상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는 방식이 더해지면서 선원이나 탐험가 등에게는 이상적인 식량원으로 여겨졌다.

책은 인간의 이동 생활과 문명사회를 이끈 고기잡이 역사를 크게 3부로 나눠 들여다본다.

1부에서는 인류가 연안과 강어귀, 호수, 강 등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아간 이야기를 다룬다. 초기 인류는 수면 위로 떠오르는 물고기를 움켜잡는 기회주의식 고기잡이를 했다. 고기잡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방식이지만 오랫동안 지속됐다. 책에는 선사시대 어부들이 사용한 그물이나 창, 낚싯줄 같은 도구들이 소개돼 있다. 당시의 도구들은 근본적으로 오늘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흥미를 자아낸다.

2부는 문명을 꽃피우고 세계를 이어준 어부와 고기잡이 이야기를 다룬다. 기원전 3100년경 지중해 동쪽(이집트)에서 세계 최초 도시가 출현했고 얼마 후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에도 도시가 발전한다. 수메르, 이집트, 로마 등에서는 모든 도시마다 신전이나 공공건물을 지었는데 이들의 노역자에게 줄 양식이 물고기로 충당됐다. 소금에 절인 생선은 지중해와 아시아 교역을 활성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3부에서는 로마 제국의 붕괴와 중세온난기라는 사회적, 환경적 변화와 맞물린 어부들의 활동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10세기 무렵에는 물고기를 인근 시장에 내다 팔았고 300년 후에는 짐수레 수송망이 갖춰졌다. 노르망디에서 파리까지 생선을 운반하는 수송체계도 마련될 만큼 활기를 띄었다. 14세기에는 국제적 어업이 형성됐지만 안타깝게도 18세기 초에는 남획의 징조가 나타난다. 저인망 어선, 건착망 등 도구가 개발되면서 빚어진 부정적인 결과다.

저자는 “이전까지 아주 풍요로웠던 바다를 영영 사막화시키고 싶지 않다면, 지속가능한 어업은 월턴의 조용한 낚시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예술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편이 낫다. 안 그러면 바다에서 더 이상 물고기를 구경하지 못할 테니까”라고 경고한다. <을유문화사·1만89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 소설가인 박성천기자는 전남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문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남대에 출강중이며 소설집 ‘메스를 드는 시간’ 등 다수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