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월드컵 도전 역사는 골키퍼들의 수난사라 할 수 있다. 본선 무대에 첫발을 내디딘 1954년 스위스 월드컵. 한국은 첫 경기에서 우승 후보 헝가리를 만나 0대9의 기록적인 참패를 당했다. 당시 골키퍼 홍덕영은 “헝가리 푸스카스의 슈팅이 너무 강해 맞으면 갈비뼈가 부러질 것 같았다. 너무 힘들어서 공을 잡으면 관중석으로 차 냈다. 그때는 공을 한 개만 가지고 할 때여서 경기장에 다시 공이 들어올 때까지 시간을 벌 요량이었다”고 회상했다. 100개가 넘는 슈팅을 막아 낸 홍덕영은 나름대로 선방해 0대9라는 스코어가 오히려 기적 같을 정도였다.

32년 만에 다시 본선 무대를 밟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는 골키퍼 실수로 맥없이 실점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은 이운재가 나선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야 골문 싸움에서 안정감을 찾고 첫 승과 함께 4강까지 올랐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은 한국 팀에서 골키퍼가 가장 돋보인 대회다. 조현우는 등 번호 23번이 말해 주듯 ‘넘버3 ’골키퍼였고 사실상 뛸 기회가 거의 없어 보이는 선수였다. 그러나 김승규와 김진현을 제치고 스웨덴과 첫 경기에서부터 멕시코전, 독일전까지 모든 경기에서 골문을 지키며 눈부신 선방을 보여 주었다.

조현우의 롤 모델은 스페인의 데헤아라고 한다. 실제 모션이나 플레이 스타일, 체격 등이 비슷해 ‘대구FC의 대헤아’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그의 활약은 데헤아를 넘어 ‘레알 골키퍼’ 코스타리카의 나바스를 연상케 했다. 그는 당대 최고의 골키퍼라는 독일 노이어와의 대결에서도 완승을 거뒀다. 노이어는 김영권에게 골을 허용한 뒤 조급한 마음에 공격에 가담했다가 공을 빼앗겼다. 주세종의 롱 패스가 텅 빈 독일 골문을 향하고, 그 공을 힘차게 쫓아가 골을 넣은 손흥민을 보며 5천만 국민의 심장도 함께 뛰었다.

16강 진출이라는 1%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은 세계 1위 독일을 꺾었고 조현우라는 눈부신 보석을 발견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골키퍼가 한국 팀에 있다는 사실을 대회 시작 전까지 솔직히 몰랐다. 미안하다 조현우.

/유제관 편집1부장. 부국장 jk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