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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맞는 오월… 초심으로 돌아가자
항쟁의 주역은 평범한 시민이자 우리의 이웃
민주의 열정·대동세상 … 광주정신 되새겨야

2018. 05.17. 00:00:00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이틀 앞 둔 16일 추모객들이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5월 영령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최현배기자 choi@kwangju.co.kr

김모씨의 사인은 M16총상이었다. 숨진 때와 장소는 1980년 5월 21일 광주 금남로 일원. 당시 그의 나이 21세, 사는 곳은 광주 방림2동. 직업은 직공(織工). 같은 날 숨진 또 다른 김모씨의 사인은 타박상. 나이는 65세. 사는 곳은 광주 월산 4동, 직업은 농업.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에 공개된 ‘광주소요사태 사망자 조서(1980년)’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일련번호 1부터∼164번까지 성명, 성별, 연령, 직업, 본적, 주소, 사망일시, 사망장소, 사망구분(사인)이 적혀있다. 사망자는 죄다 구두수선공, 직공, 미장공, 농업, 노동, 중학생, 전공, 공업, 재수생, 운전원, 무직, 주방장, 페인트공, 화물차 조수, 다방주방장, 가사, 자개공, 운전원, 상업, 점원들이다. 그들은 아무런 힘없는 평범한 시민이었고 우리의 이웃이었다.

그들은 그날 무엇을 위해 분연히 나섰을까. 신군부의 폭압에 맞서 우리 형제 자매와 이웃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또 국민 모두가 주인되는,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시민정신의 발로였다. 자기희생을 통해 평화를 이루려는 순수한 열정이었다.

또 다른 장면 하나. 5월 21일 집단발포 이후 계엄군이 밀려난 후 광주는 대동세상이었다. 양동시장 상인들은 주먹밥을 만들어 배고픈 시민군을 먹였고, 경찰도 없는 세상에서 시민들은 스스로가 치안을 담당했다. 범죄없는 광주가 실현되는 순간들이었다. 당시 광주는 시민 모두가 하나였고 서로를 지켰다.

다시 38년이 흘러 5월 그날이 왔다. 17일 도청 앞 금남로에는 5·18전야제를 위한 무대 설치 작업이 한창이다. 민주화 항쟁의 현장이었던 그 자리에 시민들은 또다시 모여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긴다.

지난해 촛불혁명으로 세워진 문재인 정부도 5·18을 민주주의 역사 최고의 단계로 끌어 올리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군부의 가해자들은 한치의 반성도 하지 않고 있지만 역사는 준엄하게 그들을 심판할 것이다.

오늘이 지나고 역사는 또 그렇게 흘러가겠지만 오월 광주는 우리에게 묻는다. 지난 38년을 달려온 당신들은 무었을 했느냐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광주정신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이제 다시 한 번 초심으로 돌아가야할 때다. 오월정신, 광주정신이 다시 부활해야 할 때가 왔다. 시민 스스로가 삶속에서 그날의 정신을 다시 새겨야 한다. 오월은 투쟁만이 아닌 모든 시민이 하나가 되는 대동의 정신임을, 또 나보다는 우리를 생각하는 공동체 정신이고, 갈등보다는 화합과 평화의 정신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일깨울 때다.

/김형호기자 kh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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