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의 '그림생각' ] (211) ‘1987’‘그 날’의 염원
2018년 01월 11일(목) 00:00 가가
‘헛된 꿈’은 아니었구나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그 감동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픈 게 보편적 정서라고 한다. 영화 ‘1987’을 관람하고 난 후에는 반대로 혼자서 말없이 좀 오래 걸었다. 영화가 끝나고 스크린 가득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함께 흘러나왔던 이한열 합창단의 노래 ‘그 날이 오면’을 속으로 따라 부르며 민주화운동 최전선에 섰던 그 때 그 청년들이 염원했던 ‘그 날’이 ‘헛된 꿈’은 아니었다는 위로를 하고 싶었다. 그 때, 그 역사적 순간에 그 청춘들과 또래였던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새삼 자문하면서 말이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시작으로 이한열 열사 사망과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역사를 담아 우리에게 묵직한 울림을 준건 순전히 영화의 힘이다. 영화를 보면서 서슬 퍼런 공안 탄압과 폭력, 그 분노의 시대를 다시 기억하고 연대하고 공감한 이들이 많다.
영화 ‘1987’을 관람 중 내내 생각했던 그림 한 점은 목수화가로 불리는 최병수작가(1961∼ )가 1987년에 제작한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였다.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면서 피 흘리는 이한열을 부축하는 모습은 당시 숨죽여 지내던 보통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 ‘한열이를 살려내라!’고 외치며 거리로 나오게 했고 마침내 6.29 민주화 선언을 이끌어낼 수 있게 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걸개그림은, 부직포에 수성페인트와 아크릴로 그린 그림이라 어둡고 흐린 상태이지만 진품만이 지닌 아우라를 발산하면서 흐릿한 기억 속의 이한열 열사를 오늘 다시 광장으로 이끌어낸 역사적 의미를 확인하게 한다. 당시 로이터통신 특파원이었던 정태원기자가 찍은 ‘한 장의 사진’을 걸개그림으로 옮긴 이 그림은 이한열 열사 장례를 치를 때 연세대 중앙도서관에 걸렸고 여러 판형의 목판화로 제작되어 시위 현장에 직접 쓰이기도 했다.
한 장의 사진, 한 점의 그림이 역사의 물줄기를 돌렸고, 오늘 이 한 편의 영화가 다시 그 역사를 상기시켜준다.
〈광주비엔날레재단광주폴리부장·미술사박사〉
영화 ‘1987’을 관람 중 내내 생각했던 그림 한 점은 목수화가로 불리는 최병수작가(1961∼ )가 1987년에 제작한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였다.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면서 피 흘리는 이한열을 부축하는 모습은 당시 숨죽여 지내던 보통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 ‘한열이를 살려내라!’고 외치며 거리로 나오게 했고 마침내 6.29 민주화 선언을 이끌어낼 수 있게 했다.
〈광주비엔날레재단광주폴리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