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물염색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다. 감물염색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을 정도로 감물염색은 대중화가 되었다. 감물염색이 인기를 끄는 데는 자연감, 소취성, 항균성, 좋은 착용감, 친환경적이라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감물염색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말 제주도에서 감물염색 옷을 입었다는 기록(제주사론고, 濟州道史論攷)이 있다. 일본에서는 가마쿠라시대(鎌倉時大, 1192-1333) 때에 감물염색 옷을 입었다는 기록(평가물어, 平家物語)이 있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문헌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 감물염색이 기술되어 있다. 감물염색은 한국, 일본, 중국 모두 전통을 갖고 있지만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한국은 여름철에 풋감 즙으로 옷을 염색한다. 일본은 풋감에서 착즙한 액을 1-3년간 발효시킨 다음 염색에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옷 보다는 주로 어망, 부채, 우산에 이용한 전통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감물염색은 현재 제주도와 청도군에서 많이 하고 있다. 청도군은 반시 주산지라는 점과 섬유산업이 발전한 대구 인근이라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최근 20년 사이에 급격하게 발전했다. 제주도는 고려시대 때부터 감물염색이 있었다는 기록이 탐라성주유사(耽羅星主遺史), 제주사론고(濟州道史論攷)에 나와 있다. 1950년대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감물염색 옷을 착용한 곳이다. 제주도에서는 이런 기록과 감물염색 풍속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문화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감물염색은 제주도만의 고유문화로 알고 있다. 외국에도 그렇게 알려졌고, 학술적으로도 제주 전통 감물염색을 주제로 한 연구들이 많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간 전남의 각 마을 노인당을 찾아다니면서 전통 문화를 조사한 필자의 연구 과정에서 진도군 또한 제주도 못지않게 감물염색이 성행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진도군에서는 1930년대까지만 해도 곳곳에서 주민의 70-80%가 감물염색 옷을 입었다는 제보가 있었다. 이는 진도의 정체성 측면뿐만 아니라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 진도 전통적인 강강술래, 들노래와 같은 민속 행사의 복장도 감물염색 옷 측면에서 되새겨 보아야할 대목이기도 하다.

과거 진도에서 감물염색 방법은 제주도와는 달랐다. 제주도에서는 풋감을 으깬 알갱이를 뒤집은 옷으로 감싼 다음 문지르면서 염색했다. 그 다음 알갱이를 털어 내고 지붕 위에 올려놓고 5-10일정도 햇볕과 밤이슬을 이용해서 발색시켰다. 진도에서도 여름철에 풋감을 이용한 염색은 제주도의 방법과 비슷했지만 감을 절굿대로 파쇄 한 다음 절구 안에다 옷을 넣고 염색한 것에서부터 차이가 있었다. 또 염색한 것을 빨랫줄에서 넣어 놓고, 건조하면 다시 염색을 하였다. 제주도에는 보통 1회 염색을 한데 비해 진도에서는 2-3회 염색을 한 다음 1-2일째부터 감물로 염색된 옷을 입었다.

진도의 감물염색 방법 중에는 독자적인 진흙염색 방법도 있었다. 이 방법은 감물로 염색한 옷을 진흙 속에 묻어 두고 진흙속의 철성분이 화학반응(매염)이 일어나게 하여 옷이 검정 혹은 흑갈색으로 변하게 하는 염색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행해졌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진 이 염색법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염색기술이다.

진도에서 행해졌던 것처럼 진흙을 이용한 염색물에는 중국 광둥성(廣東省) 포산시(佛山市) 특산물인 향운사(香雲紗)가 있다. 향운사는 감처럼 타닌을 함유한 서랑(薯?)이라는 식물 추출물로 비단을 염색한 후 철분이 많은 진흙을 발라 철 매염 한 것이다. 1,000년의 전통을 가졌지만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잊혀진 것이었는데 타이완의 소피홍이라는 디자이너의 노력에 의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이에 중국정부는 2008년에 향운사의 염색기술을 중국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를 했다. 향운사는 현재 포산시에서만 수천억원 어치를 생산하고 있으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인 펑리위안 여사도 향운사로 만든 옷을 입고는 전통을 자랑하곤 한다.

일본에도 비슷한 것이 있다. 일본 가고시마(鹿兒島)의 특산품인 오시마 명주(大島紬)가 그것이다. 오시마 명주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고급 견직물 중의 하나로 가고시마의 아마미 오시마(奄美大島)에서 생산 된다. 이 명주는 그곳에 자생하는 다정큼나무를 끓인 물로 실을 염색하고, 건조한 다음 철분이 많은 진흙을 묻혀서 염색한 것이다. 오시마 명주는 비싸지만 독특한 색상과 명주의 특성을 그대로 살린 염색 때문에 우아하고 가벼우며 내구성도 뛰어나다. 수많은 일본인들이 동경하는 대상이 되고 있으며, 아마미 오시마는 관광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진도에는 이처럼 감물염색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진흙염색 문화가 존재했었는데 진도 사람들조차도 잘 모를 만큼 잊혀져 가고 있다. 진도의 감물염색 문화처럼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호남의 무형문화들이 급속하게 소멸되고 있는 시기에 전라도 정명 천년을 맞게 되었다.

전라도 정명 천년은 새천년을 준비한다는 심정으로 잊혀져 가는 무형 문화들을 적극적으로 찾고, 이를 문화 자산화와 더불어 시대에 맞게 재창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호남의 소중한 미래 자산을 일구고, 가꿔가는 시발점으로도 삼았으면 한다.



-국제인명센터(IBC) 아시아지역 부의장

-(사)한국자원식물학회 상임이사

-(사)한국인간식물환경학회 이사

-패션저널 칼럼위원동신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