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히 단잠에 빠진 아기, 둘러앉아 수박을 맛있게 먹으며 수박씨를 뱉는 가족의 표정, 사랑스러운 아이를 품에 안고 어쩔줄 몰라하는 엄마….

1990년대 화가 김호석의 수묵 인물화는 깊은 인상을 줬다. 바로 우리 곁에 있는 ‘누군가’를 세심히 포착한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를 머금게 되고 마음도 따뜻해진다.

‘수녀님, 서툰 그림 읽기’를 통해 오랜만에 다시 만난 그의 그림들은 여전히 감동을 준다. 다양한 인물화를 비롯해 동물, 벌레는 물론 세상에 대한 발언도 놓지 않는 그의 그림들은 한참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여기에 이번에는 ‘수녀님’이 풀어놓은 이야기까지 겹쳐져 그림 감상은 더 큰 즐거움이 됐다.

경남 마산 트라피스트 봉쇄 수녀원에서 수도중인 장요세파 수녀가 ‘수녀님, 서툰 그림 읽기-수묵화 속의 공백과 대면하다’를 통해 수묵화가 김호석의 작품 99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1984년 일본 홋카이도 트라시프트 여자 수도원에서 첫 수도 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35년간 수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트라시프트는 봉쇄 수도원으로 필수불가결한 일 이외에는 수도원 밖으로 외출을 하지 않으며 새벽 3시30분부터 오후 8시30분까지 오직 노동과 기도로만 이루어진 단순한 삶을 평생 살아간다.

수도회 입회 직후부터 구체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장요세파 수녀는 252점이 실린 김호석 화백의 도록을 만나고, 그림에서 느낀 감정들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역사에서부터 시작해 고난 속에서도 찌부러지지 않는 고귀한 인간의 모습, 분노할 수밖에 없는 정치 풍토와 그 희생자들, 가족, 동물, 벌레, 그리고 종교적 영적 세계로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한” 김호석의 그림에서 “깊은 성찰과 삶의 의미 추구를 통한 줄임과 통합의 결과인 각각의 다른 물길이 일렁인다”고 말한다.

전봉준, 매창, 김구, 성철 스님 등 역사적 인물을 다룬 그림과 소박한 가족들의 모습, 고양이, 거미, 개미 등의 모습을 통해 들려주는 ‘수녀님’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선·2만원〉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