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국가의 행정 수반으로서 받드는 것이지 정치적으로 받들 필요가 없습니다. 이 정권은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을 정권의 도구로 이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략) 국정원이 국내에서 군림하면 안 됩니다. 국가 기관과 정보를 공유해 국가 위기 원인을 철저히 관리해야 합니다. 대통령으로서 마지막으로 부탁합니다. 완전 중립을 지켜 주십시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대통령 취임 이후 국정원을 방문해 첫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납치와 사형선고 등 국정원 전신인 중앙정보부로부터 용공 조작 등의 피해를 본 김 전 대통령이다. 그런 그가 과거 치욕스러운 역사를 버리고 국정원의 새 출발을 당부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중 국정원장의 독대 보고를 한 차례도 받지 않았다고 자서전에 썼다. 국정원장의 독대 보고를 받게 되면 부작용이 더 많다는 점 때문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중 국정원 스스로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한 정보기관에서 국가를 위한 정보기관으로 변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자서전에 “야당 정치인의 뒷조사를 하거나 반정부 세력을 위축시키기 위해 국정원 조직을 활용하는 행위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결코 해서는 안 될, 국가와 국민을 모독하는 추악한 짓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은 또다시 ‘민낯’을 드러냈다. 문화 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댓글 부대’ 운영, 방송사 장악 시도는 물론 자신들이 블랙리스트로 꼽은 문성근-김여진 씨의 나체 합성 사진 조작까지 참으로 가관이다. 이 중 사진 합성 조작은 정말 국가 정보기관에서 이런 일을 한 게 맞나 싶을 만큼 수준 이하의 공작이다. 국가 안보를 전문으로 해야 하는 정보기관이 정권 유지를 위해 정치 권력기관이 되어서 수치스러운 일을 해 왔다는 게 개탄스럽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국정원 개혁위원회가 출범했다. 정치 개입 의혹 조사와 근절을 위한 적폐 청산·조직 쇄신 테스크포스 팀을 운영 중이다.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노력했던 국정원 개혁이 이번 정부에서는 반드시 이뤄져 국가 안보의 핵심 기관으로서의 역할과 국민의 신뢰를 받는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최권일정치부 부장 c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