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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포명령자

2017. 09.08. 00:00:00

5·18 첫 발포는 1980년 5월 19일 오후 4시50분 계림동 광주고 앞 도로에서 발생했다. 시위대에 포위된 장갑차의 뚜껑이 열리고 M16 총구가 나오더니 군인 한명이 고개를 내밀고 총을 발사해 조대부고 학생이 복부에 관통상을 입었다.
두 번째 발포는 20일 오후 11∼12시 광주역 앞. 3공수여단이 시민들을 향해 집단 발포해 5명의 사망자와 수십 명의 부상자를 냈다. 최근 공개된 ‘전남대 주둔 병력에 실탄 장전 및 유사시 발포명령 하달(1인당 20발)’이라는 문건 속 주둔 병력이 바로 이 부대다.
세 번째 발포는 충격적인 도청 앞 집단 발포. 21일 오후 1시 11공수여단이 무릎쏴, 서서쏴 자세로 시민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고 헬기에서는 전일빌딩을 향해 기총소사를 했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으로 나오는 이날 집단 발포에 희생자가 50여 명, 부상자는 수백 명에 달한다.
이후 곳곳에서 시민을 향한 발포가 이어지다 계엄군은 27일 새벽 상무충정작전을 시작했다. 3공수여단 특공조 77명이 1인당 실탄 140발과 수류탄으로 무장하고 벌인 소위 ‘도청소탕 작전’은 발포 명령 없이는 불가능했다. 5·18 과정에서 계엄군은 실탄 51만2626발, 수류탄 194발, 대전차로켓탄 ‘66㎜로우’ 50발을 사용했다. 시민을 적으로 규정하고 전쟁을 치르듯 광주를 유린했지만 발포 명령자는 37년이 지난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국방부가 ‘5·18 진상조사위’를 꾸렸다. 군은 그동안 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던 자료까지 모두 찾아내서 조사하겠다며 전 군에 ‘5·18 자료 폐기 금지’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국방부의 이번 조사 범위는 일단 헬기사격 의혹과 공군 전투기 출격 대기 의혹 등 두 가지다. 미공개 자료를 조사해 발포 명령자의 ‘스모킹 건’을 찾아내기 위한 전초 단계의 조사라 할 수 있다. 이후 국회가 ‘5·18 진상 규명 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수사권·기소권 등 법적 강제력을 가진 진상 규명 위원회가 설치되면 그때 가서야 비로소 발포 명령자의 얼굴이 드러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제관 편집1부 부국장 jk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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