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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베레모’

2017. 08.25. 00:00:00

1980년 5월 27일 04시. 3공수여단 11대대가 전남도청에 진입했다. 도청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콩 볶는 듯 요란한 총소리에 광주 시민 모두 잠 못 이룬 밤, 반만년 역사상 가장 길었던 새벽이었다. 도청이 함락되자 10일간의 항쟁은 끝이 났다. “여러분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애절한 목소리만 남았다.
작전이 끝난 뒤 ‘공수’들은 승전가(?)를 불렀다. 분수대 앞에 20여 명이 도열해 목청껏 부른 군가는 ‘검은 베레모’. “안 되∼면 되게 하라 특전부대 용사들∼” 어깨에 멘 M16 총구엔 화약 냄새가 채 가시지 않았고, 그들이 살상한 시민들의 몸에선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날의 ‘군가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섬뜩하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학살하고 ‘보아라. 장한 모습’을 외치다니. 그런데 대열에서 가장 키가 큰 병사 한 명이 군가를 따라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지금 어디서 살고 있으며 자녀들에게 5·18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까.
5·18 진압군 11공수여단의 한 장교가 지난 5월 광주일보와 인터뷰에 응했다. 21일 도청 앞 집단 발포 때 자신도 총을 쐈다며 조준사격에 시민 수십 명이 쓰러졌다고 증언했다.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살고 있다고. 전두환이 사죄하지 않는다면 그의 도구가 되어 무고한 시민을 살상한 공수부대원들이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도 했다. 또 최근엔 “영화 ‘택시운전사’를 봤는데 금남로에서 시민들이 총에 맞아 쓰러진 사람들을 구하려고 애쓰는 장면이 그때 상황과 비슷하더라”고 회고했다.
‘택시운전사’가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가 흥행하자 5·18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국방부가 헬기 사격과 폭격 준비 조사에 착수했고 1980년 당시의 문서 공개와 군인들의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 지역에서는 관련자의 증언이 없다. 진압군으로 참여한 3·7·11공수여단, 특히 지역 연고 부대인 7공수여단 출신 중에는 광주와 전남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37년이 지나 그들도 이제 환갑을 넘긴 나이가 됐다. 더 늦기 전에 침묵에서 깨어나 5·18의 경험과 당시 목격한 진실을 증언했으면 한다.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유제관 편집1부 부국장 jk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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