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호남지 제4부 - 일상에 서린 민족문화의 원형] 4. 남도의 삶터와 강줄기
2017년 05월 16일(화) 00:00 가가
개발에 막힌 영산강, 온전한 강으로 당당하게 흘러야
영산강이 만든 대규모 분지는 평야이지만 그 안에는 낮은 물결 모양의 구릉들과 영산강 스스로 만든 평탄한 범람원 지대로 이루어졌다. 사진은 무안군 몽탄면 일대를 휘감아 도는 영산강. 〈광주일보 자료사진〉
◇삶의 발자취는 강을 따라
그 고장의 자연은 유구한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 살았던 선인들의 삶과 문화의 자취를 품고 있는 보고이다. 그냥 바라보면 한낱 자연경관이지만, 국토 산하 구석구석에 수많은 선인들의 발자취와 그들의 속사임이 알알이 묻혀있어 캐면 캘수록 강산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터 없는 역사는 없다. 동해상 한 점에 불과한 독도가 우리에게 중요한 국토성을 일깨워 주듯, 매일 대하는 산과 들 그리고 강은 영겁의 세월을 말없이 지켜왔고 늘 변함없이 우리의 삶의 무대가 되어왔다. 지질과 토양의 차를 통해서 프랑스 삶의 의미를 찾았던 비달(Vidal de la Blache)처럼 우리 삶터에 대한 지리적 이해야말로 그 삶터를 살아가는 사람을 이해하는 첫 걸음이 된다.
사람은 물길을 통해 모이고 산으로는 서로가 나뉜다. 따라서 인류 문명의 탄생이 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듯 물길을 따라 사람의 삶이 엮어지고, 벼농사를 업으로 하는 시대엔 재물이 모이고 정기가 모이는 곳이 된다. 물길을 잡고 관리하는 데는 혼자의 힘으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자연 마을사람 모두가 서로의 힘을 합쳐야만 가능한 일로 마을의 대동단결을 자연 필요로 하는 것이다. 강은 그래서 삶터를 이룬다.
남도의 물줄기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그 하나가 작지만 남도의 맏언니 같은 영산강이요, 다른 하난 수줍은 새색시 같은 보성 섬진강이다. 그리고 끝으로 막내와 같은 탐진강이 그것이다. 오늘은 영산강에 대해서만 알아본다.
◇남도의 곳간 채워주는 영산강
내장산∼불갑산 산줄기와 용추봉∼무등산∼봉화산∼월출산 등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로 에워싸인 영산강은 널따란 들녘을 밑천으로 남도의 큰 곳간을 채워주는 맏언니같은 강이다.
우리나라 4대강이면서도 담양 용추에서 발원해서 목포로 빠져나가니 남도에서 처음과 끝을 함께하는 가장 남도다운 강이면서 상류의 담양 식영정(息影亭)과 강끝 무안의 식영정(息榮亭)이 처음과 끝을 함께하는 강이다.
오랜 지질시대를 걸치면서 풍화에 강한 변성암석은 산으로, 풍화에 약한 화강암석은 마사토로 변한 영산강의 주변은 산지가 둘러싸고 마사토같은 부드러운 속살은 구릉과 들판으로 다듬어지면서 남도 최대의 문화와 곡창지대를 이루는 터전이 되었다. 영산강이 다듬어 논 이 들녘 의 모양새가 목포에서 광주 쪽으로 떠가는 거대한 배 모양처럼 펼쳐진 평야이다.
이렇게 벌려진 곳의 중심지는 나주가 되었고, 후에 사람들은 나주평야라 하고, 학자들은 영산강 침식분지라 한다. 산과 강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는 대체로 이런 분지의 나라이다. 수많은 산지 사이사이에 진주알처럼 박혀있는 분지들을 강들이 꿰차고 흐르고 있다. 그런 곳은 어김없이 큰 도시나 마을이 들어서 있기 마련이다. 분지는 우리에게 중요한 생산의 공간이고 삶의 공간이다.
영산강이 만든 대규모 분지는 평야이지만 그 안에는 낮은 물결 모양의 구릉들과 영산강 스스로 만든 평탄한 범람원 지대로 이루어졌다. 영산강의 구릉들은 유난히도 남도의 색깔을 띤 적황색토를 보이고 구릉의 솔밭과 그 사이에 흐르는 작은 하천들은 다루기가 쉽고 땔감도 용이하다. 거기에 영산강의 뱃길도 이용할 수 있는 지류변은 식량을 구하고 외래 문화와 접촉하기 좋은 조건으로 일찍부터 영산강 고분문화의 터전이 된 것이다.
영산강의 구릉들은 이후 주로 밭이나 배를 중심으로 하는 과수원으로 이용되고 혁신도시로도 변모하고 있다. 그래도 영산강 본류와 그 지류의 주변은 여전히 주식인 쌀을 제공하는 남도의 곡창 들녘이다. 그래서일까? 영산강과 주변은 사람들을 압도하지 않는 자연 그리고 그 자연과 조화를 이룬 사람 그리고 풍요의 추구가 이 지역 문화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래서 이중환의 택리지에 “온 전라도가 가장 남쪽에 위치하여 지방 물산이 풍부하면, 산골 고을이라도 냇물로 관개하는 까닭으로 흉년이 적고 수확이 많다.”라 했는지 모른다.
영산강은 위로부터 담양의 본류와 증암천을 합쳐서 내려오다 광주의 극락강물을 합치고 다시 광주비행장 끄트머리에서 장성의 황룡강을 만나서 큰 물줄기를 이룬다.
그러나 승천보에서 물병을 앓다가 바로 그 아래에서 맑은 지석천을 만나 숨을 돌린다. 나주를 돌아, 영산포를 구비 돌아 흐르면서 함평천, 고막천을 만나 큰 호수같은 강을 이루다 죽산보에서 또 한 차례 정체되면서 물길은 갈길을 멈춘다. 겨우 빠져나와 바다를 만나기 쉽지 않은 목포 앞바다 하구 둑을 마주한다. 강은 강이지만 흐르다 멈추다 강과 바다는 흔적 없이 합쳐진다.
과거 하루에 두 번씩 밀려오는 바닷물의 영향으로 영산강 본류는 매일 강물이 불었다 줄었다 한다. 이때를 이용하여 영산강 뱃길은 열리고 멀리 흑산도 홍어도 진한 삭힌 냄새를 뿜으며 영산포에 그 맛을 토해낸다. 사실 흑산도 홍어가 삭아서 제 맛을 내는 것도 이런 연유인 것이다. 지금도 영산포 강가에 있는 홍어거리는 옛날만 못해도 여전히 삭힌 냄새는 맡을 수 있다.
더 오랜 과거에는 영산포 맞은 편 영산창에선 내륙의 여러 고을에서 집산된 물자가 모였다가 뱃길을 타고 서해를 통해 멀리 한양 마포나루까지 올라가는 남도의 출구였다. 영산강의 풍요와 민중의 억센 삶은 조선의 조세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도 중앙무대에 드러나지 않았다. 미완의 풍요이다. 미완의 유산이다.
이제 영산강도 예스런 강은 아니다. 스스로를 찾아가는 강으로 남도인이 되새겨야 할 강이다. 개발시대와 MB시대가 만든 상상의 지리로 몸살만 앓는 반쪽의 강이 아닌 온전한 강으로 새로운 지리의 강이 되어야 한다. 왜 영산강은 담양, 장성, 광주, 화순. 나주, 함평, 영암. 무안, 목포 지역을 안고 있는 남도의 축이고 남도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고 살리고 지속시키는 것은 이제 남도인의 몫이다.
그 고장의 자연은 유구한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 살았던 선인들의 삶과 문화의 자취를 품고 있는 보고이다. 그냥 바라보면 한낱 자연경관이지만, 국토 산하 구석구석에 수많은 선인들의 발자취와 그들의 속사임이 알알이 묻혀있어 캐면 캘수록 강산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터 없는 역사는 없다. 동해상 한 점에 불과한 독도가 우리에게 중요한 국토성을 일깨워 주듯, 매일 대하는 산과 들 그리고 강은 영겁의 세월을 말없이 지켜왔고 늘 변함없이 우리의 삶의 무대가 되어왔다. 지질과 토양의 차를 통해서 프랑스 삶의 의미를 찾았던 비달(Vidal de la Blache)처럼 우리 삶터에 대한 지리적 이해야말로 그 삶터를 살아가는 사람을 이해하는 첫 걸음이 된다.
◇남도의 곳간 채워주는 영산강
우리나라 4대강이면서도 담양 용추에서 발원해서 목포로 빠져나가니 남도에서 처음과 끝을 함께하는 가장 남도다운 강이면서 상류의 담양 식영정(息影亭)과 강끝 무안의 식영정(息榮亭)이 처음과 끝을 함께하는 강이다.
오랜 지질시대를 걸치면서 풍화에 강한 변성암석은 산으로, 풍화에 약한 화강암석은 마사토로 변한 영산강의 주변은 산지가 둘러싸고 마사토같은 부드러운 속살은 구릉과 들판으로 다듬어지면서 남도 최대의 문화와 곡창지대를 이루는 터전이 되었다. 영산강이 다듬어 논 이 들녘 의 모양새가 목포에서 광주 쪽으로 떠가는 거대한 배 모양처럼 펼쳐진 평야이다.
이렇게 벌려진 곳의 중심지는 나주가 되었고, 후에 사람들은 나주평야라 하고, 학자들은 영산강 침식분지라 한다. 산과 강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는 대체로 이런 분지의 나라이다. 수많은 산지 사이사이에 진주알처럼 박혀있는 분지들을 강들이 꿰차고 흐르고 있다. 그런 곳은 어김없이 큰 도시나 마을이 들어서 있기 마련이다. 분지는 우리에게 중요한 생산의 공간이고 삶의 공간이다.
영산강이 만든 대규모 분지는 평야이지만 그 안에는 낮은 물결 모양의 구릉들과 영산강 스스로 만든 평탄한 범람원 지대로 이루어졌다. 영산강의 구릉들은 유난히도 남도의 색깔을 띤 적황색토를 보이고 구릉의 솔밭과 그 사이에 흐르는 작은 하천들은 다루기가 쉽고 땔감도 용이하다. 거기에 영산강의 뱃길도 이용할 수 있는 지류변은 식량을 구하고 외래 문화와 접촉하기 좋은 조건으로 일찍부터 영산강 고분문화의 터전이 된 것이다.
영산강의 구릉들은 이후 주로 밭이나 배를 중심으로 하는 과수원으로 이용되고 혁신도시로도 변모하고 있다. 그래도 영산강 본류와 그 지류의 주변은 여전히 주식인 쌀을 제공하는 남도의 곡창 들녘이다. 그래서일까? 영산강과 주변은 사람들을 압도하지 않는 자연 그리고 그 자연과 조화를 이룬 사람 그리고 풍요의 추구가 이 지역 문화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래서 이중환의 택리지에 “온 전라도가 가장 남쪽에 위치하여 지방 물산이 풍부하면, 산골 고을이라도 냇물로 관개하는 까닭으로 흉년이 적고 수확이 많다.”라 했는지 모른다.
영산강은 위로부터 담양의 본류와 증암천을 합쳐서 내려오다 광주의 극락강물을 합치고 다시 광주비행장 끄트머리에서 장성의 황룡강을 만나서 큰 물줄기를 이룬다.
그러나 승천보에서 물병을 앓다가 바로 그 아래에서 맑은 지석천을 만나 숨을 돌린다. 나주를 돌아, 영산포를 구비 돌아 흐르면서 함평천, 고막천을 만나 큰 호수같은 강을 이루다 죽산보에서 또 한 차례 정체되면서 물길은 갈길을 멈춘다. 겨우 빠져나와 바다를 만나기 쉽지 않은 목포 앞바다 하구 둑을 마주한다. 강은 강이지만 흐르다 멈추다 강과 바다는 흔적 없이 합쳐진다.
과거 하루에 두 번씩 밀려오는 바닷물의 영향으로 영산강 본류는 매일 강물이 불었다 줄었다 한다. 이때를 이용하여 영산강 뱃길은 열리고 멀리 흑산도 홍어도 진한 삭힌 냄새를 뿜으며 영산포에 그 맛을 토해낸다. 사실 흑산도 홍어가 삭아서 제 맛을 내는 것도 이런 연유인 것이다. 지금도 영산포 강가에 있는 홍어거리는 옛날만 못해도 여전히 삭힌 냄새는 맡을 수 있다.
더 오랜 과거에는 영산포 맞은 편 영산창에선 내륙의 여러 고을에서 집산된 물자가 모였다가 뱃길을 타고 서해를 통해 멀리 한양 마포나루까지 올라가는 남도의 출구였다. 영산강의 풍요와 민중의 억센 삶은 조선의 조세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도 중앙무대에 드러나지 않았다. 미완의 풍요이다. 미완의 유산이다.
이제 영산강도 예스런 강은 아니다. 스스로를 찾아가는 강으로 남도인이 되새겨야 할 강이다. 개발시대와 MB시대가 만든 상상의 지리로 몸살만 앓는 반쪽의 강이 아닌 온전한 강으로 새로운 지리의 강이 되어야 한다. 왜 영산강은 담양, 장성, 광주, 화순. 나주, 함평, 영암. 무안, 목포 지역을 안고 있는 남도의 축이고 남도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고 살리고 지속시키는 것은 이제 남도인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