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은 나날이 붉은 꽃 푸른 잎이 우거지는 때다. 가고 오고 또 보내고 맞는 것은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순리라지만, 참 빠르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래서 그런지 옛 판소리 명창들이 공도난이(公道難離) 백발을 한탄하며 세월의 무상함을 노래 부르던 백발가(白髮歌)며, ‘아서라 세상사 쓸 곳 없다’며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 부르던 편시춘(片時春) 단가 한토막이 떠올려진다. 더불어 이런 음악을 늘 함께하며 살다간 남도의 명인 명창(名人名唱)은 누구누구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불연 듯 든다.

세상 사람이 알고 있듯이, 남도는 유독 명인 명창을 많이 배출한 곳이다. 왜일까? 춘향가 중에서 춘향을 데리러간 방자의 노래 대목에서처럼, “경상도 산세는 산이 웅장하기로 사람이 나면 정직하고, 전라도 산세는 산이 촉하기로 사람이 나면 재조 있고, 충청도 산세는 산이 순순하기로 사람이 나면 인정 있다”는 방자의 산새 풀이와 같이, 기이한 모양의 바위와 깎아지른 낭떠러지로 둘러싸인 남도의 산새 정기(精氣)가 판소리와 산조와 시나위 같은 남도 음악을 생성할 수 있었던 재조를 부여하였던 것일까?

아무튼 유네스코가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판소리에 대한 우수성은 더 말할 나위 없고, 산조(散調) 또한 남도인의 손끝에서 만들어져 한국 음악에 미친 영향만 봐도 남도에 재주 있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세간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뛰어난 명인 명창이라도 남도에서 소리하고 연주하기를 제일 겁냈다고 한다.

이는 실제 남도에 명인 명창이 많아다는 뜻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소리가 흘러가야 할 길의 옳고 그름을 귀로 듣고 평가할 줄 아는 귀명창이 더 많아서 탄탄한 실력이 아니고서는 쉽게 무대에 설 수 없었다는 조심스런 말일 게다.

그렇다면 이런 남도 음악은 어떤 배경에서 생성할 수 있었을까? 주지하듯이, 남도 음악은 신청(神廳)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쉽게 말해서 신청은 무(巫)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친목과 결속을 위해 조직한 자치단체이다. 이들은 무업(巫業)에 종사한다는 구심점을 가지고 스스로 기강을 세우고 단합하여 무업에 수반되는 기예(技藝)를 독려하고, 모범적인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규율을 어기는 사람에게는 벌을 주는 기능을 겸비한 전국 규모의 무당 조직체였다.

이런 신청조직이 남도에는 광주신청을 비롯하여 나주신청, 능주신청, 장흥신청, 진도신청 등이 있었다고 한다. 곧 남도의 음악을 일구어낸 주역들이 이곳을 본거지로 하여 전설 속의 요순우탕(堯舜禹湯) 문무주공(文武周公)의 덕행이며, 영웅호걸(英雄豪傑) 기개세며, 우애 있던 흥보며, 욕심 많던 놀보며, 효성 깊은 심청이며, 대쪽같은 굳은 절개 자랑하던 춘향을 우리들 가까이에 전달해 주었으며, 우스갯짓과 금방이라도 생사를 왔다 갔다 하는 재조를 부리면서 잘하면 살판이요 못하면 죽을 판이라던 기예(技藝)며, 산조며, 시나위 등 남도의 음악을 잉태하고 전승시킨 전당으로써, 신청은 한국 음악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여기에서 특히 능주 신청이 눈길을 끈다. 왜냐하면 능주는 화순, 동복을 한 생활권으로 하여 순천, 여수, 구례, 광양을 비롯한 전라 좌도와 강진, 해남, 목포, 영암, 나주를 비롯한 전라 우도 사이의 중앙부에 위치한 곳으로, 동쪽으로는 곡성과 승주가 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나주과 남평이 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보성과 장흥이 접해 있고, 북쪽으로는 광주에 접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헤어지는 활동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뿐만 아니라, 능주의 옛 이름이 능성(綾城)이었는데, 인헌왕후(仁獻王后)의 관향(貫鄕)이 능성구(綾城具) 씨라 하여 인조 10년(1632)에 능주목(綾州牧)으로 승격된 이후, 목사골에 걸맞게 많은 관기(官妓)들이 이곳 능주에 거주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임방울 명창이 평상시 애창한 것으로 알려진 단가 호남가의 사설 가운데 “풍속은 화순이요 용담의 맑은 물은 이 아니 용안처며, 능주의 붉은 꽃은 곳곳마다 금산인가”에서 능주의 붉은 꽃이란 능주에 기예와 미모가 뛰어난 기생들이 많았음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능주는 관기의 출현과 더불어 관청에서 필요한 삼현육각 등 기악에 능한 예인들이 많았으며, 이들의 기예를 연마하고 전승시키는데 능주 신청이 큰 역할을 했을 걸로 사료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능신 신청과 화순, 동복지역에 터전을 둔 판소리 명창으로는 제일 먼저 김채만을 들 수 있다. 김채만은 1865년경 능주에서 태어나 박유전 - 이날치를 잇는 서편제 명창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세간에는 김채만을 일컬어 속골명창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속골이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속골에 대하여 능주신청 마지막 후예인 조도화는 김채만이 능주읍 잠점리에 있는 속고리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속골명창이라는 아호가 생겼다는 담론을 펴고 있어 김채만이 능주읍 태생이란 점을 가늠할 뿐이다.

김채만은 본래 성음이 탁하고 음악적 재질이 뛰어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지나, 그는 도암 불회사 토굴에서 각고의 독공으로 쉰듯하면서 우렁찬 수리성음을 얻어 기존의 소리가락에 기교를 더하여 꽉 짜 맞춘 듯 한 짜임새 있는 장단에 소리를 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애간장을 다 녹여 내린다는 평가와 함께 당대 최고의 소리꾼으로 특히 심청가를 잘 불렀다 한다.

이후, 김채만의 뒤를 박화섭, 한성태, 신용주, 박종원, 김정문, 공창식, 박동실 등이 후기 7명창 시대를 열었으며, 다시 박화섭은 박후성을 후계자로 두었으며, 한성태는 그의 3남인 한승호가 대를 이었다. 김정문은 동편제와 서편제의 소리를 두루 섭렵하여 김준섭, 강도근, 박록주 등에게 이어졌고, 공창식은 공기남과 조몽실, 조상선에게 이어지고, 박동실은 김소희, 한애순, 조해숙으로 이어졌다. 이렇듯 김채만의 소리는 그의 많은 제자들에 의해 후세에 이어질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어 서편제의 판소리 법제가 고스란히 남겨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여 주었다.

하지만 김채만은 난향이라는 기생과 함께 강진으로 이거하여 2년 남짓을 살지 못하고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하며, 현재는 그의 손자 김성권이 명고로써 조부의 명성을 잇고 있다. 이 외도 명창 중에는 성원목, 성우춘, 성차옥, 박기채, 박기홍, 김준섭, 김억순, 김동문, 박봉선, 김막동, 이진영, 정명수, 조경화, 전일도, 박화기, 정명암, 조명수, 백현옥, 전명옥, 하벽도, 염금달, 박영순, 신평일, 박농월, 박농주, 박소우, 하벽산, 유일호, 정옥진, 정행옥, 신금월, 조순애, 박봉덕, 임선례, 박금선, 장양금, 김형규, 하재옥, 김행옥, 공대일 등이 있으며, 무형문화재로 활동한 성창순, 성우향, 박송이, 박초선, 조순애, 공옥진, 김일구 명창 등이 이 지역의 옛 명성을 빚냈다.

한편, 기악의 명인으로는 동복의 한숙구 명인을 들 수 있다. 당대 가야금의 명인으로 알려진 한숙구는 가야금의 창시자로 알려진 김창조와 쌍벽을 이루었던 것으로 전하여 지며, 그의 재능은 아들 한수동에게 전해져 가야금 산조의 일가를 이루었으나, 한수동이 젊은 나이에 요절한 탓으로 활성화 되지 못하고, 겨우 이양 출신인 정남희에게 전하여 졌으나, 정남희 역시 월북하여 그의 맥이 끊기가 싶더니 정남희에게 월북하기 전에 배웠던 서공철과 조카 정달영이 그의 유음을 되찾아 한숙구류 가야금 산조를 가늠케 할 따름이다.

그러나 한숙구를 비롯해 한수동, 한성태, 한귀호, 한주환, 한영호, 한일섭, 한갑득, 한승호, 한세현 등 한씨 가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거문고의 명인으로는 김연수와 임석윤, 오똘남 등을 들 수 있으며, 대금의 명인으로는 오갑순의 부친 오재환과 오진석, 한주환, 김동표 등을 들 수 있으며, 피리의 명인으로는 성우향의 부친 성차옥과 조송문, 김대자, 김유복 등을 들 수 있으며, 아쟁과 태평소의 명인으로 한일섭과 김흥순, 정창국, 김용철 등이 있으며, 가야금 병창에는 박춘섭과 정달영이 있으며, 고수에는 조상엽, 주봉현, 주응조, 성원목, 김동준, 문남구를 들 수 있다. 또 시조와 가곡을 잘 불었던 김산옥, 신초월, 양학, 양농주, 김규열가 있으며, 발탈에는 조영숙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능주 신청과 화순, 동복 등지에서 배출된 명인 명창들이 숱하다.

앞으로 이분들의 가계 정리와 남도 음악의 우수성과 특수성을 체계이고 학술적으로 다듬어서 무형문화 보존 전승은 물론 미래의 무형유산이 될 수 있도록 진흥에 힘써야 한다는 무거움을 느낀다.



*남도의 명인들

김채만 박화섭 한성태 신용주 박종원 김정문 공창식 박동실 박후성 한성태 한승호 김정문 김준섭 강도근 박록주 공창식 공기남 조몽실 조상선 박동실 김소희 한애순 조해숙 김성권 성원목 성우춘 성차옥 박기채 박기홍 김준섭 김억순 김동문 박봉선 김막동 이진영 정명수 조경화 전일도 박화기 정명암 조명수 백현옥 전명옥 하벽도 염금달 박영순 신평일 박농월 박농주 박소우 하벽산 유일호 정옥진 정행옥 신금월 조순애 박봉덕 임선례 박금선 장양금 김형규 하재옥 김행옥 공대일 성창순 성우향 박송이 박초선 조순애 공옥진 김일구 한숙구 한수동 정남희 서공철 정달영 한숙구 한수동 한성태 한귀호 한주환 한영호 한일섭 한갑득 한승호 한세현 김연수 임석윤 오똘남 오갑순 오재환 오진석 한주환 김동표 성우향 성차옥 조송문 김대자 김유복 한일섭 김흥순 정창국 김용철 박춘섭 정달영 조상엽 주봉현 주응조 김동준 문남구 김산옥 신초월 양학 양농주 김규열 조영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