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12년째 서울에 있는 한 종합일간지의 기자로 일하고 있다. 늘 의심하고 질문하는 직업 탓인지 아내는 종종 비교적 단순해 보이는 사건이나 현상에서도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남편이자 판사이기도 한 내가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이다. 물론 우리도 여느 부부처럼 생활방식과 가치관의 차이, 가사와 육아의 분담 정도 등을 이유로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둘 다 매일 낯선 사람과 대화하고 사실에 입각한 자신의 의견을 글로써 밝히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각자의 지식과 경험으로 서로에게 충실한 조언을 해주려 노력한다.

하루는 나와 대화하는 중에는 좀처럼 웃음을 잃지 않던 아내가 불쾌한 내색을 보인 적이 있다. 최근 몇 달간의 어수선한 정국에 관하여 대화하던 중 무심코 내가 내던진 “요즘은 언론도 문제가 참 많은 것 같아”라는 말 때문이다. 당황한 나는 화제를 급히 다른 데로 돌리면서도, 한쪽으로는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을까?’라고 고민한다. 그리고는 곧 내가 아내와 사회문제에 관하여 대화하면서 지켜온 두 가지의 암묵적인 규칙을 어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르다’와 ‘틀리다’를 상황에 맞지 않게 사용하는 것은 사람들이 자주 하는 어법상의 실수 중 하나이다. 무엇인가가 ‘다르다’고 해야 할 상황에서 ‘틀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대부분 그 정도의 어법상 오류는 다 이해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이는 ‘사실’에 관한 경우에만 너그러이 허용되는 것이지 ‘의견’이나 ‘당위’에 관한 경우에는 다소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누군가의 의견이 ‘내 생각과 다르다’는 것과 ‘옳지 않다’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내가 아내에게 한 말은 쏟아지는 뉴스 속에 진실이 얼마나 될까를 자문하다 나온 것이었고, 아내는 아마도 누군가의 전언이나 정황이라도 신뢰할 만하고 개연성이 높다면 보도하는 것이 사회정의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나는 언론보도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염두에 두었는데 아내는 언론기관의 사실 보도와 논평의 자유를 더 무겁게 생각한 것이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다름’을 인정하지 않아 커다란 갈등이 생기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물론 ‘틀린 것’을 단순히 ‘다른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비겁하다. 그러나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그야말로 ‘틀린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서로 너무도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같은’ 근거를 내세울 때가 많다는 점이다. 최근 정권 획득을 위하여 서로 대립되는 주장을 하면서 상대방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최근 특정 인물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사건에서 찬반론자들(근거 없는 추측성 의혹 제기론자는 제외)의 공통된 근거는 ‘사법부의 독립’이었다. 판사로서의 경험에 비추어 법정에서 상대방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자신이야말로 ‘서민’이자 ‘약자’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민주주의’, ‘사법부의 독립’, ‘사회적 약자의 배려’ 모두 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용’과 ‘기준’이다. 앞선 아내와의 대화에서 나는 적어도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보도하는 것이 공정하고 객관적인 것이 아닐까?’라는 말을 해야 했다. 그것이 ‘다름’과 ‘틀림’을 구별하기 위한 첫걸음이었을 것이다. 총론(總論)과 각론(各論)은 우열이나 선후의 판단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각론을 고찰하지 않고 총론만을 논하는 경우 결론이 도출될 수 없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에서는 정당한 세금 없이 이익만을 취하려는 장사꾼들이나 이에 기대어 일확천금을 노리는 도박꾼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틀림’을 찾아내는 것. 그 첫걸음으로 구체적인 ‘내용’과 ‘기준’을 제시하는 것. 이것이 판사의 아내와 기자의 남편, 즉 우리 부부가 사회문제에 관하여 대화하는 법이다. 아내가 일하는 것을 지켜보면 ‘기자의 펜을 빌려 자신의 뜻을 전달하려는 취재원’과 ‘취재원의 입을 빌려 자신의 생각을 밝히려는 기자’ 사이에는 묘한 긴장관계가 형성되는 듯하다. 법정에서도 ‘판사의 판결을 통해 유리한 결론을 얻으려는 당사자’와 ‘당사자의 주장과 증거를 통해 진실을 발견하려는 판사’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관계가 생긴다. 우리 부부가 대화하는 법은 결국 이러한 긴장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과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