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스포츠/연예
오피니언
weekend
사설
칼럼
이홍재칼럼
기자노트

[이홍재의 세상만사]'죽 쒀서 개 주기’ 또 되풀이될라

2016. 12.23. 00:00:00

용(龍)과 기린(麒麟)은 상상 속의 동물이다. 여기에서 기린은 우리가 동물원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그 기린이 아니다. 몸은 사슴 같고, 꼬리는 소 같고, 빛깔은 오색찬란한 동물이다. 수컷을 ‘기’(麒)라 하고 암컷을 ‘린’(麟)이라 한다는 옛 기록이 있다.
재주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가리켜 ‘기린아’(麒麟兒)라고 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기린은 훌륭함을 상징한다. 반면 자질이 좋지 못하여 기대할 것이 없을 때에는 ‘우마(牛馬)가 기린 되랴’라고 하였다. (요즘의 박근혜 대통령에 딱 들어맞는 속담이지 않나 싶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몰랐다. 나도 속고 너도 속고 온 국민이 속았다. ‘미꾸라지 천년에 용 된다’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억겁의 세월이 흐른다 해도 어찌 미꾸라지가 용이 될 것인가. 우리는 그걸 몰랐다. 그녀가 설마 우마에 불과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지금 온 국민이 하릴없이 낭패에 빠진 것도 다 그 때문이다.
‘낭패’(狼狽) 또한 상상 속의 동물이다. ‘낭’(狼)과 ‘패’(狽)를 옥편에서 찾아보면 모두 ‘이리’로 나온다. 그러나 본래는 전설상의 동물이다. ‘낭’은 뒷다리 두 개가 없거나 있어도 아주 짧고, ‘패’는 앞다리 두 개가 없거나 있어도 아주 짧다. 그래서 이들이 걸을 때에는 ‘패’가 늘 ‘낭’의 등에 앞다리를 걸쳐야 한다. 둘이 합쳐야만 걸을 수 있지 떨어지면 그 즉시 꼬꾸라진다.
‘낭’(狼)은 지모(智謀)가 부족한 반면 ‘패’(狽)는 반대로 꾀가 뛰어나다. 그래서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이 생기거나 먹이를 사냥할 때면 낭은 언제나 패의 지시를 따른다. 그런 까닭에 낭은 기꺼이 패를 등에 태우고 다닌다. (낭과 패의 의미를 살피다 보면 또 박근혜와 최순실이 연상되지 않는가.)
이들은 서로 도와 공생하다가도 뜻이 맞지 않으면 바로 틀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낭과 패 모두 걸을 수 없고 먹이를 사냥할 수도 없으니 꼼짝없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이렇듯 둘 다 곤경에 빠진 상태가 바로 흔히 비유적으로 쓰는 ‘낭패’라는 단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박근혜와 최순실 중 누가 더 교활한 사람이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한때는 원칙과 신의의 정치인으로 각인된 적도 있는 박근혜에게서 교활의 이미지를 끄집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긴 하다. 하지만 그동안 탄핵에 대처하는 여러 수법과 ‘거짓 사과’ 등을 볼 때 그가 최순실보다도 훨씬 더 교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교활’(狡猾) 또한 상상 속의 동물 이름이다. 개 모양에 쇠뿔을 달고 있는 ‘교’(狡)와, 생김새는 사람인데 돼지털이 나 있는 ‘활’(猾)은 어찌나 간사한지 여우를 능가할 정도라고 한다. 이들은 길 가다가 호랑이라도 만나면 조그만 공처럼 변신하여 제 발로 호랑이 몸속으로 들어간 뒤 내장을 마구 파먹는다. 그렇게 해서 호랑이가 죽으면 그제야 유유히 밖으로 나와 미소를 짓는다. 여기에서 바로 그 ‘교활한 미소’라는 관용구가 생겨났다.
이제 우리는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원 플러스 원(1+1) 대통령’(박근혜와 최순실)이라는 상품을 진열대에서 빼내 쓰레기통에 넣으려 하고 있다. 대통령은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더 끼워 주는 이벤트 상품’이 아닐진대 그렇다 하더라도 유통기한이 1년도 더 남은 시점에서 심하게 부패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썩어 악취가 진동하는 이 상품을 반품시키기 위해 우리 모두는 분연히 일어났다. 수백만 국민이 주말마다 촛불을 들고 대통령 탄핵과 즉각 퇴진을 외쳤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국회는 대통령탄핵소추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시켰고 우리는 이제 마지막 관문인 헌법재판소(헌재)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촛불 혁명’을 보면서 새삼 ‘여러 사람의 말은 쇠도 녹인다’는 ‘중구삭금’(衆口鑠金)의 의미를 실감한다. 이 말은 지금 여론의 힘을 강조할 때 쓰이지만 원래부터 그런 뜻이었던 것은 아니다. 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의 굴원(屈原)이 남긴 기록을 보면 ‘뭇 간신의 입이 쇠를 녹이나니’라고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이 말은 본디 간신들의 말에 임금이 속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도 박근혜와 최순실이 떠오르지 않는가.)
중구삭금 이야기는 삼국유사에도 나온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남의 부녀 앗아간 죄/ 얼마나 클까/ 네 만일 거역하고/ 바치지 않으면/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고 말리라.” ‘해가’(海歌) 또는 ‘해가사’(海歌詞)라고 하는 이 노래에는 사연이 있다.
신라 성덕왕 때 절세미인이었던 수로부인이 동해안을 지나는데 돌연히 용이 나와 바닷속으로 납치했다. 이때 지나가는 노인이 “예로부터 뭇사람의 입길은 쇠도 녹인다고 했습니다. 모름지기 백성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지팡이로 땅을 치면 마땅히 부인을 되찾을 것이오”라고 했다. 그래서 남편인 순정공 일행이 ‘해가’(海歌)를 부르며 그대로 따라 하니 용이 부인을 되돌려 주었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도 당시 백성들이 땅을 치며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무능한 대통령에게 빼앗긴 대한민국의 주권을 찾기 위해 광화문으로 금남로로 뛰쳐나와, 지팡이 대신 촛불을 들고 ‘하야가’(下野歌)를 불렀다. 그 결과가 바로 헌재의 탄핵 심판이다. 한데 헌재의 인용(認容) 가능성은 얼마나 될 것인지, 그 시기는 언제가 될지를 놓고 말들이 많다. 하지만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는 내년 3월 13일 안에, 아마도 탄핵으로 결정 나리라 확신한다.
문제는 탄핵 이후다. 조기 대통령 선거가 확실해진 상황에서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된 야당이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며’ 호들갑을 떨어서는 안 된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보수 정당이 갈라져 이제 다당 구조가 확실해졌지만 한때 ‘부역’했던 저들의 근본이 바뀌는 것도 아닐 터. 상황이 생각보다 녹록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반복되는 과거 역사가 그것을 말해 준다. 우선 4·19 혁명의 결과로 허정 과도 내각을 거쳐 제2공화국이 탄생됐지만 끝내 박정희 군사 쿠데타의 빌미를 주고 말았다. 5·18 민중항쟁 역시 피로써 민중의 결집된 힘을 보여 주었지만 전두환의 집권을 막지는 못했다. 6·10항쟁의 결과로 얻은 ‘직선제’ 역시 야당의 분열로 노태우에게 대통령 자리를 헌납하고 말았다. 엊그제 서울에서 만난 박지원 의원(국민의당)도 이와 똑같은 말을 했지만 ‘죽 쒀서 개 주는’ 이런 역사가 또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주필〉

기사 목록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