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은 자연이 아니라 예술이었다.

조선 후기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 모태가 됐던 금강산은 우리 산수의 맥과 정신이 흐르는 의미 있는 곳으로 나에게는 항상 동경의 대상이었다.

다행이 금강산이 분단 반세기만에 열려 1999년 초부터 사계절을 여러 번 탐승할 수 있었다.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난날 탐승과 사생이 크나큰 행운이었고 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몽유금강’ 시리즈도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봄에는 금강산, 여름 봉래산, 가을 풍악산, 겨울 개골산으로 불리며 각각 독특한 울림으로 가슴 설레게 하고, 천봉만학의 계곡과 암산의 금강미가 황홀경에 빠져들게 했다.

특히 금강산의 아름다움은 골산미의 빼어남과 더불어 물의 미묘한 변화가 연출하는 신비스러운 기운이 감동적이었다. 우리 산하 최고의 백미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1000m 고지의 천선대에 오르니 하늘로 아우성치는 만물상과 하얀 운해의 무위가 오묘하고 신비한 기운을 선사하고 있었다. 형형색색 기암들과 만물의 소리, 극적인 대기의 변화는 현실과 천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느낌이있다.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꿈 속 기행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초자연적 차원이며, 심오한 경지가 열리는 곳이었다.

이처럼 만물상은 장엄한 화엄세계의 꽃으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옥류동과 연주담 등 푸른 흐름이 아름다운 비취색 물빛, 하늘에서 선녀가 하늘하늘 춤추며 내려오는 것 같은 하얀 폭포 줄기의 경쾌한 흐름, 장대한 구룡폭포, 비봉폭포들의 거침없는 물의 낙하 등 비상한 물의 기운에 넋을 잃고 있었다.

수많은 물방울의 낙하가 모여서 웅장한 폭포가 되어 잠자는 땅을 흔들어 깨우듯이, 거침없는 폭포수는 세상의 모든 찌꺼기를 시원스럽게 씻어주고 있었다.

시각과 청각 ,촉각이 발생하는 인간의 지각을 넘어서는 폭포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시인 김수영은 시 ‘폭포’에서 폭포가 가진 올곧음을 이야기한다.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중략)’



천변만화하는 금강산은 우리 땅의 정신성이 짙게 흐르고 세상의 모든 가치가 피어나는 곳처럼 숭고함과 장엄함을 느낄 수 있는 영혼의 울림이었다.

남북이 분단된 상황 속에서 민족의 영산 금강산은 우리 모두가 꿈 속에서나 노닐 수 있는 이상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금강산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본다.



*송필용

-전남대 미술교육과, 홍익대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서울 학고재갤러리, 이화익갤러리 등 개인전 20회

-1996년 제2회 광주미술상 수상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일민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등 작품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