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20여 일 간의 탐험 일정으로 몽골 울란바토르 공항에 내려 황량한 고비사막인 남쪽의 차강소브라가와 달란자드가드와 욜린암, 헝그린 일스 사막, 바얀작, 옹깅사원, 하라호롬, 쳉헤르, 테르힌차칸 호수, 무릉을 거쳐 최북단의 홉스골까지 약 2700㎞를 강행군하듯 러시아제 부르공 차량 2대로 남북을 일주했다.

거대한 지평선과 여백미의 창공은 척박한 자연환경을 넘어 평화로운 유목민의 삶과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적막한 공간이다.

특히 끝없이 이어지는 지평선은 원대한 상상력과 꿈을 확장시키는 에너지가 숨겨져 있는 듯 하고 천공에서 지상을 응시하는 독수리의 울음소리는 초원을 넘어 세계 절반의 영토를 정복한 칭기스칸을 저절로 떠오르게 한다.

황량한 고비사막을 지나 짙푸른 녹음의 산세를 지닌 쳉헤르에서 안개 사이로 배회하는 수 십 마리의 독수리 떼를 보며 몽골제국 흥망성쇠의 역사를 떠올려 본다.

자연을 제외한 역사도, 사람도 파도의 포말처럼 고저장단을 형성하며 상승했다 부서지며 형상과 실체가 사라지고 흔적만 기억한다. 이는 영원한 것도 없고 절대적인 것도 없이 항상 변화하며 인과(因果)의 법칙에 따라 구름처럼 생성 됐다가 흩어지기도 한다.

대제국을 건설한 칭기스칸 또한 그 범주 안에서 회자된다. 그는 가족의 생존과 함께 창업의 기틀을 다지며 초원의 패자 자리를 놓고 사선을 넘는 경쟁 속에서도 원대한 뜻을 기필코 일으켜 세운 인물이다.

그는 넓은 국량(局量)과 바다와 같은 관용(寬容) 정책을 펼친 관대장자(寬大長者)로 도량이 넓어 사람의 위에 설 만 한 위인이었다.

또한 지혜를 가진 타민족 학자도 등용하여 자신의 부족함을 채웠다, 금나라를 칠 때는 야율초재(耶律楚材)를 얻었는데 그것도 삼고초려해서 등용하여 통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졌다. 제국건설에서 전쟁의 살육을 줄이고 화합정책을 유도한 책사로서의 일화로 정복의 야심을 조절하기 위해 군주에게 기본 윤리교육을 시킨 것이다. 이후 야율초재의 지혜로 당시 동서양의 실크로드를 형성해서 평화의 교역이 이루어진다.

몽골여행 중 아름다운 자연 풍광이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 지역은 쳉헤르와 바다와 같이 넓은 홉스골 호수다. 하라호름을 거쳐 쳉헤르 가는 날은 바람 끝이 매섭고 기온이 낮아져 매우 추웠다.

허름한 소도시를 지나 서낭당이 있는 언덕에 부르공 차가 정차한다. 아래로 보이는 풍경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숲 사이로 폭이 넓은 강물이 구불구불 태극 형태로 흘렀다. 색상이 화려한 동네가 형성되어 있는 위로 강줄기는 흘러간다. 소박한 마을과 자연 환경이 고요하고 평화롭다. 짙은 녹음과 맑은 강물, 싱그러운 산세와 담백한 고요의 풍경이 선경(仙境)이다. 이곳에서 직선거리로 울란바토르를 하루 이틀이면 왕래가 충분하여 소풍 오는 사람들도 많단다.

주변지역은 습지대로 강물이 범람하여 조심스럽게 수심을 체크하며 수륙양용(水陸兩用) 차량으로 전진한다. 산을 넘고 진흙탕인 숲길을 헤치며 산 중턱을 내려가니 게르 집단촌락이 보이고 높은 설산이 가까이에 있다. 바로 노천온천이 있는 휴양지의 쳉하르다. 신작로는 온통 흙탕길로 도보는 쉽지 않고 차가운 개울물이 쏜살처럼 흐르고 자주 비가 온다. 숙소 뒷산은 잣나무 숲이 울창한데 다람쥐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 운무 사이로 거대한 독수리 떼가 50여 마리 정도 유영(遊泳) 하는데 이유는 많은 다람쥐를 먹이로 삼아 하늘을 차지하고 있다. 노천온천에서 피로를 풀며 독수리 떼의 수를 헤아려 본다. 독수리의 울음소리에서 문득 위대한 칭기스칸의 풍모를 상기 시킨다. 칭기스칸을 닮은 독수리의 상징성을 상표로 차용해 몽골 자국 비행기의 심볼 마크가 독수리다.

설욕적인 몽골 침입을 받았던 우리 역사는 몽고반점의 혼혈을 낳았다. 하지만 근현대사의 몽골은 중국과 러시아, 일본에 의해 문화유산이 파괴되고 온갖 수탈을 당하면서 이제야 자본주의를 수용해서 전통 문화를 계승하고 재정비해서 옛 영화를 찾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과거의 역사나 사물이나 모든 것은 물 흐르듯, 구름이 지나가 없어지듯 흘러가고 흩어진다. 그리나 현재의 족적은 미래의 후손들에게 물려 줄 것이다. 그래서 당당한 현재의 역사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훌륭한 인재육성이 가장 중요하다.

위대한 인물만이 큰 인재를 발굴할 수 있다. 시련과 고난을 극복한 지도자만이 백성과 함께 울고 함께 굶을 수 있으며 아랫사람의 직언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칭기스칸은 능력 위주 인사와 개방성, 기동성, 정보력과 집중된 의지력으로 꿈과 희망을 실현시킨 인물이다. 사람을 일순간에 매도하기 쉬워도 인재를 기르는 것은 어려운 법이다.

우리의 근현대 정치사를 보면 큰 인물도 쉽게 매도되고 김구 선생처럼 제거당하는 일이 허다했음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황금을 신으로 모시는 부류들의 의식도 문제이지만 서민이 굶을 때 함께 굶는 지도자가 그리운 현재가 아닌가 싶다.

몽골 여행의 종반인 홉스골은 ‘푸른 진주’라 불리며 샤머니즘의 보고로 신성한 지역이다.

호수의 길이가 139㎞, 넓이 38㎞로 36개 지류에서 흘러들어와 아쉽게도 러시아로 흘러간다. 맑고 드넓은 호수의 밤은 고요하고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청정지역이다. 4일간을 머무르는 어느날 밤이다. 게르 아래 캠프에서 한국 노래 소리가 들린다. 반가워서 내려가 보니 대구에서 동창들 모임으로 8명이 3박4일간 휴가를 왔단다. 현직 교수도 있고 기업인들도 있는 중후한 상류층 모임 같았다. 그들이 대취한 상태에서 통성명을 하는데 대화중 ‘시민운동’이란 단어가 나오니 즉각 냉담 반응과 함께 충돌적 언어구사로 어색한 분위기다. 그래서 반목의 대화를 피해 발걸음을 돌린다. 잠깐의 인연에 시간을 더듬어 생각해본다.

피를 먹고 자란다는 민주화 과정에서 시민사회 운동가나 NGO 활동가들이 적지 않은 시행착오와 오류도 있었지만 진정성을 가진 지도자들이 매도당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작금의 불안한 현실은 서민들 나름대로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할 상황처럼 느껴진다. 소수권력에 의해 모든 국민이 자발적 노예를 자청하는 형국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몽골을 떠나면서 여러 상념들을 추스르자 칭기스칸과 야율초재 같은 큰 인물이 그리움으로 변한다. 입국으로 우리 영공에 들어서고 고속버스로 귀향하며 생기 넘치는 산천을 보고 실감한다. 이렇게 아름답고 풍요로운 강산이 나의 자랑스러운 조국 땅이구나! 새삼 감탄하면서도 뒷맛이 허전한 아쉬움으로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종석

-호남대 미술학과 및 조선대 대학원 순수미술학과 졸업

-개인전 15회, 단체전 200회

-제6회 광주미술상 수상, 제2회 서암전통문화대상 수상

-논문 및 저서 ‘학포 양팽손의 예술과 사적고찰’, ‘부러진 대나무’, ‘세한을 기약하고’, ‘히말라야14좌 화보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