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한 휴가를 꿈꾸다 죽을 뻔.

시작부터 불길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담양군 문화재단 주관 담빛예술창고 ‘한중교류전-공명’ 전시가 끝나고 작품을 중국에 배달하려 무안공항에 작품이며 짐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식구들과 도착한 것까진 좋았다.

작품을 화물운송에 넣으려니 올해 1월부터 법이 강화돼 문화재청 허가가 필요하다 했다. 복잡한 서류절차를 거치고 2m 넘는 작품을 항공화물 벨트에 올리니 간신히 일행 4명의 화물제한과 맞아떨어졌다. 다행이다 싶어 항공사 예쁜 직원에게 여권을 들이밀고 기다렸다.

일행은 아내와 아이,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 친구 윤 선생의 아들까지 총 4명이었다. 마침 광주시립미술관 베이징 창작센터 레지던시에 파견되는 8기 작가 3명도 같이 가는 중이었다.

직원이 여권을 한참 끝까지 넘기더니 나를 쳐다보며 “선생님 비자는 어디에 있나요?” 하고 묻는 순간 갑자기 온 몸에 힘이 쫙 빠져나갔다. 순간 생각해보니 비자 신청을 깜빡 해버린 것이다. 예전에 딸아이 여권이 만료가 돼 새로 만들었는데 항공권을 구입하고 공백이 있다 보니 그만 비자를 받은 것으로 착각을 해버린 것이다.

하늘이 노래지고 당황해 식은땀이 흘렀다. 그 잠깐 멈춰버린 시간 속 기억에는 어이없어 하는 공항직원들, 황당한 주변인, 실망한 식구들 눈빛이 뇌리에 남는다. 머리 속은 하얘지고 도망갈 구멍을 찾느라 뇌가 분주하다 못해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멍해지고 말았다.

사연의 내막은 이렇다. 얼마 전 지난해에는 휴가다운 휴가를 못간 채 너무 일에 매달리는 바람에 식구들의 불만을 잠재우려 작전을 세웠다.

중국 작품 배달 일정을 더 늘려 베이징에서 활동하고 있는 윤선생 가족들과 따뜻한 중국 남방 여행을 가기로 가족과 손가락 걸고 약속을 한 것이다. 그런데 기대를 무너뜨리고 황당한 일을 저질러버린 죄인(?)이 돼버렸다. 작품은 일행에게 어찌어찌 맡기고 보냈지만 미리 예약했던 호텔과 비행기표는 왕창 손해 보고 취소한 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딸아이는 돌아오는 내내 아빠 때문에 여행 못 가게 됐다고 훌쩍거리고 아내는 폭발하기 일보직전이라 말도 못 붙이는 상황이었다. 이 일을 어떻게 잘 수습할 것인지를 고민하느라 어떻게 운전대를 잡았는지도 모르고 담양 집에 도착했다.

딱히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집에서 괜히 컴퓨터만 뒤적거리다 문득 ‘그래, 비자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비자 없는 여행’이라 검색을 하니 베트남 다낭이 추천여행지로 떴다.

다낭에는 이민 간 제자가 가이드를 하고 있는 것까지 생각해내고 바로 전화를 돌렸다.

항공권도 쉽게 예약이 돼 다음날 출발하는 것으로 구입했다. 그제야 얼굴에 생기가 돌아와 기대와 안도의 웃음이 가득한 식구들과 인천으로 출발했다.

공항에서 갑자기 스트레스 때문인지 손가락에 티눈이 올라왔다.

수속을 마치고 약국에서 티눈밴드를 구입해 아내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행기 안에서 손가락에 감았다.

며칠 붙이면 티눈 주위가 하얗게 돼 저절로 떨어지리라 생각하고 안심한 것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옛 싸부’가 찾아왔다고 새벽 2시가 넘었는데도 제자는 공항에 마중나와 있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새벽 3시가 넘어 제자 집에 도착했더니 다들 잠도 자지 않고 반겨 주었다.

첫날은 가볍게 맥주 한잔하며 회포도 풀고 해프닝에 대한 이야기로 웃으며 보냈다. 3일째 되는 날 계속 마신 술 때문에 티눈이 나온 오른쪽 손끝에 염증이 발생해 심각해졌다. 손끝부터 겨드랑이까지 핏줄이 두 줄로 고속도로처럼 불거져 있었다. 깜짝 놀라 사진을 찍어 한국에 있는 친한 병원 원장님께 보냈더니 다급한 문자가 왔다.

“지금 당장 약국에 나가 페니실린 계열과 퀴놀른 항생제를 강하게 처방할 것. 잘못하면 패혈증으로 죽을 수 있음. 절대 술 마시면 안 됨” 겁이 덜컥 나서 휴가고 나발이고 바로 나가 약을 사서 먹고 드러누웠다.

이틀 정도 지나자 좀 나아졌지만 다낭의 푸른 파도와 바나힐의 안개 속 산 정상까지 펼쳐진 기나긴 케이블카, 호이안의 옛 거리와 아름다운 야경도 티눈 하나 때문에 신경 쓰여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 휴가 아닌 병가가 되고야 말았다.

마지막으로 비좁은 다낭 공항에서 두 시간이나 연착된 저가항공에 대한 후회막급과 후유증을 뒤로하고 제자와 헤어지며 “금방 다시 올께” 작별 인사를 했다.

비행기 속에서 딸이 한 말. “아빠가 잘못한 점은 세 가지인데 첫 번째, 비자를 잊은 것, 두 번째 엄마 말 듣지 않고 티눈밴드를 붙인 것, 세 번째, 아픈데 술을 마신거야”

간혹 여행은 뜻하지 않은 악몽과 두려움이 될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게 해준 해프닝과 함께한 시간이었다.

*장현우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및 대학원 졸업. 중국로신미술학원 왕성렬 예술중심 수학.

-개인전 17회. 국내외 그룹초대전 500여회.

-영무예다음 창작공간 레지던시. 북경광주시립미술관 레지던시. 현재 한국미협 및 전업미술가협회 회원, 담양군 문화재단 국제예술 창작촌 총괄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