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은 고독 속에서 혼자 서는 인간이다.”(입센)

“인간은 사회에서 어떠한 사물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감은 오직 고독에서만 얻을 수 있다.”(괴테)

중국 북경에서의 생활 7년째.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가고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고독은 지속되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운 북경의 겨울은 또 다시 찾아 왔다. 매년 겨울이 시작될 쯤 처음 북경에 왔을 때의 향수가 느껴진다.

북경에 도착하고 며칠이 안된 어느 늦은 오후, 작업실 임대차 798 예술구 근처에 있는 환티에 예술촌에 들렸다. 겨울이라 늦은 오후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날은 어두컴컴하고 심한 스모그로 하늘이 잘 보이지 않았다.

각각의 작업실에서 석탄을 때면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와 매캐한 냄새는 환티에 작업촌의 첫인상이었다. 나는 그곳에 작업실을 임대했고 며칠이 지나면서 주변 예술 촌에 몇몇의 한국 작가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모두들 중국 미술시장의 호황기에 맞춰 활발한 전시 활동과 예술가 개인의 발전에 대한 기대감으로 타국에서 고독하면서도 불편한 삶을 견디며 작업하고 있었다.

한국 작가들의 수가 많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의지가 됐고 서로를 격려를 하면서 미래의 성공된 작가로서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했다. 798예술구가 유명해지고 발전해 감에 따라 근처의 작업실들이 인기가 많아져 임대료가 상승했다. 게다가 물가는 매년 배가 올라 작업만 해서는 북경에서 살기에 경제적 어려움이 컸다.

또한 다른 문제는 중국의 거품 경제가 꺼짐에 따라 미술시장도 호황기가 사라지고 점점 작가들의 활동 무대는 적어졌다.

그동안 외국 작가들에게 배타적이었던 까닭에 한국 작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었다. 설상가상으로 미술시장의 침체기로 한국 작가들의 활동의 폭은 더욱 좁아졌다. 시간은 1년 2년 흘러가고 경제적인 압박과 부진에 따른 스트레스로 작가들은 북경에서의 꿈을 버리고 하나 둘씩 한국으로 귀국하기 시작했다.

타지에서 의지가 됐던 그들이 하나씩 떠나고 결국은 당시 친하게 지내던 한국 작가들 모두 떠났다. 홀로 남게 된 상황에서 외로움이라는 고통은 견디기 힘들었다.

고향에 대한 향수는 깊어졌고 나 또한 한국으로 돌아 가고자 하는 마음은 굴뚝처럼 높아져 갔다.

그러나 석사 과정도 채 끝나지 않았었고(당시 나는 작업활동과 석사 과정을 병행하고 있었다. 그 동안 계속 후원해 주셨던 김효수 회장님과 부모님께 실망을 시켜 드린다는 것도 두려웠다.

그후 시간이 지나 중국 생활이 익숙해지고 중국어도 능숙해짐에 따라 중국 작가 친구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들과의 교분으로 점점 중국 문화에 대해 이해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외로움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낯선 이방인이 생활이 불편한 예술촌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고 있는 게 신기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들은 나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줬고 활동에도 도움을 주었다.

나는 어느덧 그들의 일부분이 됐고 이제는 그들의 사적인 고민도 들어 주는 사이로까지 발전했다.

석사를 졸업하고 798근처에서 몇 번의 작업실 이사를 하면서도 나의 창작 활동은 계속 됐다. 그러나 작업만 하면서 살기에는 현실이 결코 녹녹치 않았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젊은이들이 전업 작가로서 삶을 살아 간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리고 최근 나를 포함한 중국 작가들은 예술가의 삶이 반드시 고통이 수반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중이다.

올해 들어 또 몇 명의 중국 작가들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작업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찾거나 고향으로 내려 갔다.

한국 작가들이 떠난 후 의지했던 중국 작가 친구들마저 점점 떠나면서 그 동안 조금 잊고 지냈던 외로움이 다시 찾아 오기 시작했다.

오늘은 중국에서 처음 알게 됐고 가장 교분을 많이 쌓았던 중국 작가 친구가 작업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해 술자리를 가졌다.

가장 믿고 의지했던 그 마저 떠난다고 하니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간듯 한 느낌이 들었다.

그 친구와 이별주를 거하게 마시고 홀로 작업실로 돌아 오던 중 오랜만에 만난 맑은 북경 밤하늘이 나를 반겼다.

참 오랜만에 보는 달과 별이었다. 내 마음은 섭섭함으로 이렇게 심란한데 밤 하늘의 별은 왜 이렇게 오늘 따라 밝고 아름다운 건지….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만남을 가졌고 이별을 가졌다. 헤어짐이 이제 익숙해 질만도 하건만 아직도 매번 힘이 든다. 매일 같이 걷는 길이었지만 오늘따라 작업실로 가는 길이 멀게 느껴졌다. 작업실에 가까워짐에 또 익숙한 석탄 연기의 냄새가 났다.

작업실에 도착하고 캄캄한 작업실 문을 연다. 고요한 작업실….

음악을 켜고 이젤 앞에 앉아 그리던 그림을 바라 본다. 진행하던 작업이 만족스럽지 못해 더욱 우울하다.

고독하고 외로운 예술가? 이런 모습은 사양하고 싶지만 좋던 싫던 간에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운명인 듯 하다. 최근 들어서는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 우리가 봐왔던 많은 명화 작품들이 이러한 고독한 작업실에서 탄생한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나는 며칠이 지나면 또 다른 곳으로 작업실을 옮길 계획이다.

낯선 그곳에서의 삶은 또 어떨지 걱정이 앞서지만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설렌다.

그동안 경제적인 어려움과 더불어 여러 가지의 이유로 작업실을 몇 번이고 옮겨야 했지만 힘든 과정 속에서도 매년 성장을 해 왔다. 이제는 제법 798의 갤러리와 중국 작가들도 나를 알아 보는 이가 많아 졌다. 북경에서 활동 하는 한국 작가로서 조금 자리를 잡은 셈이다.

그래서 곧 이사 가게 될 새 작업실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크다. 또 다시 그 곳에서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홀로 창작의 고통을 겪어야겠지만 이제는 그것을 즐기려 한다.

이곳 798 근처의 작업 촌들도 예전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르(Montmartre)처럼 현대 많은 예술가들의 꿈과 낭만이 모여 미래에 유서 깊은 곳으로 발전 되길 기대해 본다.

* 정성준 프로필

-조선대 미대 졸업, 러시아 샹트페테르부르크 국립미술대학 연수, 중국 북경 중앙미술학원 유화과 석사 졸업

-개인전 2회, 단체전 30회

-대한민국신미술대전 특선, 행주미술대전 특선

-현재 광주시립미술관 북경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