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안좌도는 지금 예술의 섬이라 부른다.

2006년 2월, 전라남도교육청에서 전화가 왔다. 신안의 섬, 안좌도의 안좌중학교에서 1년간 미술교사를 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 때 둘째 아이를 막 낳고 3개월 쯤 됐으니, 젖먹이를 떼어 놓고 섬으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바로 하겠다고 말해버렸다.

섬마을 미술선생님이 나의 중학교 때 꿈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네 살 된 딸을 데리고 섬으로 들어갔다.

안좌도는 내가 꿈꾸는 그런 섬의 정취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삭막한 느낌의 농촌이었고 해산물 보다는 양파와 마늘 주산지라 밭이 많았다. 학교 뒤에는 안산이라는 작은 산이 있어서 수업을 마치고 그 산을 등산하곤 했다. 산 반대편으로 내려오면 읍내에 품위 있는 기와집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곳은 사람이 살지는 않지만 마룻바닥이 반질거렸고, 그 고풍스런 마루에 걸터앉아 있으면 뭔가 선비의 풍류와 멋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한옥이 바로 한국적 추상화의 대표적인 작가 수화 김환기선생의 생가다.

나는 안좌중학교와 팔금중학교 두 학교의 미술 수업을 맡았고 학생들은 전교생이 52명 정도였다. 수업시간 이외에 시간이 날 때면 걸어서 김환기 선생의 생가에 가서 앉아 있다가 해질 무렵 관사로 걸어오곤 했다. 밤에 그 마당에 있으면 별이 쏟아졌다. 그래서 김환기의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마치 안좌도의 별처럼 느껴졌다. 한점 한점 푸른 점들에 타국에서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으리라.

안좌도는 인심이 좋았다. 동네 할머니가 주신 고소한 참기름이며 감자 한 자루, 아직도 그 고소함이 마음속에 남아 있는 곳이다.

미술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수화 김환기를 아느냐고 물었다. 안좌도에 살고 있는 학생들이 의외로 “김환기가 누구에요?”라고 했다. 같은 동네에 있는 위대한 사람들을 우리는 모른다. 학생들에게 김환기의 작품들을 한 점, 한 점 보여주었다. 달과 항아리, 여인, 푸른 점으로 그린 추상화들…. 한국적 서정성이 형태와 색채 등등에서 고스란히 담겨있는 작품들을 감상하고 우리는 모여서 학교를 한 바퀴 돌았다.

“수화 김환기 선생님의 작품들을 우리가 미술수업시간에 벽화로 그릴까 한다. 어디에 그리면 좋을까?” 학생들에게 물었다. 학생들은 운동장에 붙어있는 테니스코트장 벽에 그리자고 하며 그리고 싶은 작품들을 골랐다. 오래된 테니스 코트장 벽은 운동장과 코트장을 구분하기 위해서 세워진, 시멘트 블록벽돌로 방치된지 오래된 벽이었다.

1학년은 흰색 수성페인트로 로울러질을 하며 밑 작업을 주로 했고, 2학년은 스케치 위에 밑색을 칠했다. 3학년은 꼼꼼히 마무리를 해 한 달 동안 미술수업을 통해 김환기 선생의 작품을 벽화로 옮기는 작업을 한 것이다. 그런데 안좌도에 놀러온 사람들이 그 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점점 안좌도가 그 유명한 화가 김환기의 생가가 있는 섬이라는 인식이 섬 전체에 확산됐다.

나는 일 년 동안 그 섬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돌아왔다.

지난 2011년, 광주시립미술관으로부터 안좌도에서 열리는 1박2일 예술의 섬 투어에 참여하고, 수화 김환기의 예술세계에 대한 강의를 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강원도 등 멀리서 ‘예술의 섬’ 성공사례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답사를 온 것이었다. 다시 찾은 안좌도는 부둣가에서부터 수화 김환기의 작품 속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들과 조형물들이 즐비했고 나를 반기고 있었다. 농협창고들 마다 김환기의 작품들로 벽화가 그려져 있었고, 김환기 예술공원이 만들어지고 있었으며, 김환기를 테마로 예술의 섬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섬 전체가 마치 미술관처럼 변신 중이었다.

그런데 그 씨앗이 됐던 안좌중학교의 벽화는 사라지고 학교는 리모델링이 돼있었다.

나는 그 당시의 사진을 찾아 다시 보았다. 손에 물감범벅이 된 학생들의 웃음의 배경이 된 그 벽화가 문득 그리웠다. 한국의 근현대를 관통하는 김환기라는 화가의 작품으로 학생들과 토론하고 학교의 방치된 높고 긴 벽을 직접 벽화로 바꾸며 우리는 살아있는 미술사를 공부한 것이다. 사라져버린 그 벽화가 나는 지금의 예술의 섬의 씨앗이라고 생각한다.

*주홍

-중앙대 대학원 미술학 석사, 원광대 대학원 보건학(예술치료 전공) 박사

-개인전 16회

-2012년 5·18전야제 샌드애니메이션 공연. 2010 광주세계光엑스포 시민파빌리온 전시 커미셔너. 2008 광주시 문화예술상(허백련 특별상)·광주비엔날레 공훈상·제3회 광주미술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