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로 띄우는 그림편지] <23> 제주 - 오광섭
2015년 10월 26일(월) 00:00 가가
힘들고 지친 마음 씻어주는 제주의 푸른 바다
서귀포 친구 집에서 바라본 제주 풍경
그림 하나로 진지한 인생을 살아가리라. 그 신념 하나로 부단히 창작의 시간을 이어가면서도 항상 부족함에 부끄러워 사람들 앞에 결과물을 선보이질 못했다. 종종 가까운 사람들에게 욕심일지 모를 창작욕에 대해 ‘나는 내가 하고 싶고, 원하는 작품을 얻기까지 한 몇백 년 살아야 되지 않을까 싶다’고 농담을 하곤 했다. 좀 더 성숙하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림 그리는 사람은 참 많다.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많은 화가들 속에는 시류에 따라 급변하는 이도 있고 다양한 아이템 보여주는 이도 있다. 경쟁 아닌 경쟁 또한 치열하다. 이렇게 쉽지 않은 창작의 시간과 함께 나는 혼돈의 시간을 보냈다.
상념 속에 여전히 붙들고 있는 신념 하나로 가던 길을 계속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작년 후반부터 욕심도 조금 버리고 부끄러움도 내려놓으며 용기내서 어제보다 차츰 변화된 오늘의 그림을 이제는 사람들 앞에 보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약속되어진 전시로 올 한 해는 쉴 틈 없이 작품 제작에 몰두했다. 예전보다 많아진 작업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몸과 마음이 피곤하고 귀찮아졌다. 누적된 긴장의 시간들로 화실은 감옥처럼 답답한 공간으로 변했다.
반전의 시간, 위안, 그리고 힘을 얻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한 끝에 잠시 화실을 벗어나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10여년 전부터 제주에 살고 있는 어릴적 고향 친구가 있어 여행의 목적지를 결정하기가 쉬웠다.
며칠간 제주도에서 죽마고우 신세를 졌다. 크고 작은 검은돌, 제 멋대로 만들어진 돌담, 돌담 사이 하얗게 색칠한 작은집. 이곳이 친구가 살고 있는 집이다. 여느 시골 풍경과는 다른 이국 정취와 소담한 길, 밭이 어우러졌다. 석양이 뉘엿 뉘엿 붉으스레 수평선을 물들이면 친구집은 어느새 어두운 단색조 드로잉 작품이 되어버린곤 한다. 평온한 마음이 저절로 생겨나는 멋진 풍경이고 행복한 시간이다.
친구 집은 서귀포 시청에서 남쪽으로 2.5km 떨어진, 범섬이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다. 관광지가 아니여서 인적이 드물고 조용하다. 30년 전 제주도에 처음 간 후 일, 또는 관광 목적으로 여러차례 제주도를 방문했었다. 그때마다 넘쳐나는 중국인 관광객과 도로와 테마파크등의 개발로 제주가 예전과 다를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멋진 여행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사뭇 다른 특별함으로 다가왔다. 아직도 많은 곳이 변하지 않고 여전히 예전의 모습을 간직한 듯 해 좋았다. 특히 제주도 해안가를 수놓은 검은돌들의 모습은 제주를 찾을 때 마다 느끼는 특별한 인상이다.
어제는 가까운 구릉(오름)에 올랐다. 오름은 태초 제주에 크고 작은 화산이 터지며 분화구와 잔재가 만들어낸 흔적이라 들었다. 제주에만 300개가 넘는다고 한다. 내가 찾은 오름은 활오름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다. 등산 초입부터 억새밭이다. 오르는 길은 다소 가파르지만 쉬엄 쉬엄 아래를 내려다 보며 겹쳐진 능선과 멀리 보이는 또다른 오름,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을 즐겼다. 오름의 정상까지 30여 분쯤 걸었다. 오르는 것이 힘겨울수록 보상처럼 주어지는 감동은 크다. 뻥 뚫린 거대한 굼부리다. 한라산 등정은 물론이고 오름 조차 처음 올라본 나에게 굼부리와 능선을 따라 비단처럼 펼쳐진 억새밭, 가을 바람에 하얀 파도처럼 일렁이는 억새의 군무는 장관이다.
일주일 전 영산강 상류의 광주공항 주변과 승촌보까지 펼쳐진 억새밭을 나들이 했던터라 또 다른 억새의 향연은 두 배의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한참을 쉼터에 앉아 좋은 풍경을 가슴에 담으면서 화실에서의 고독한 싸움, 그리고 지쳐있는 나를 위로했다.
또 다른 날이 밝고 친구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해안가를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넓은 바다, 부딪치는 파도, 정겹게 느껴지는 마을과 돌길을 하루 내내 함께 걸으며 항상 무엇에 쫓기듯 분주한 생활과는 다른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소모적인 경쟁의 삶, 치열하게 하루 하루를 싸우는 서글픔, 창작의 고통도 이 넉넉함과 편안함 그리고 여유로운 풍경 앞에서 잠시 사라진다. 그리고 나의 신념이 흔들리고 있었는지 반성과 함께 되돌아 본다.
바다의 수평선이 아득해 보인다. 바다의 끝, 그 끝 너머 새로움에 대한 열망과 삶의 여백같은, 그리고 여유가 해질녁 이 순간 느껴지는 마음이다.
* 오광섭 프로필
-전남대 예술대학 졸업
-개인전 3회, 한국현대미술 신기회전 등 단체전 200회
-한국미술협회, KSOPA, 신형회, KAMA, 한국현대인물화가회, 신기회, 불휘기픈회 회원
상념 속에 여전히 붙들고 있는 신념 하나로 가던 길을 계속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작년 후반부터 욕심도 조금 버리고 부끄러움도 내려놓으며 용기내서 어제보다 차츰 변화된 오늘의 그림을 이제는 사람들 앞에 보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약속되어진 전시로 올 한 해는 쉴 틈 없이 작품 제작에 몰두했다. 예전보다 많아진 작업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몸과 마음이 피곤하고 귀찮아졌다. 누적된 긴장의 시간들로 화실은 감옥처럼 답답한 공간으로 변했다.
며칠간 제주도에서 죽마고우 신세를 졌다. 크고 작은 검은돌, 제 멋대로 만들어진 돌담, 돌담 사이 하얗게 색칠한 작은집. 이곳이 친구가 살고 있는 집이다. 여느 시골 풍경과는 다른 이국 정취와 소담한 길, 밭이 어우러졌다. 석양이 뉘엿 뉘엿 붉으스레 수평선을 물들이면 친구집은 어느새 어두운 단색조 드로잉 작품이 되어버린곤 한다. 평온한 마음이 저절로 생겨나는 멋진 풍경이고 행복한 시간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사뭇 다른 특별함으로 다가왔다. 아직도 많은 곳이 변하지 않고 여전히 예전의 모습을 간직한 듯 해 좋았다. 특히 제주도 해안가를 수놓은 검은돌들의 모습은 제주를 찾을 때 마다 느끼는 특별한 인상이다.
어제는 가까운 구릉(오름)에 올랐다. 오름은 태초 제주에 크고 작은 화산이 터지며 분화구와 잔재가 만들어낸 흔적이라 들었다. 제주에만 300개가 넘는다고 한다. 내가 찾은 오름은 활오름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다. 등산 초입부터 억새밭이다. 오르는 길은 다소 가파르지만 쉬엄 쉬엄 아래를 내려다 보며 겹쳐진 능선과 멀리 보이는 또다른 오름,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을 즐겼다. 오름의 정상까지 30여 분쯤 걸었다. 오르는 것이 힘겨울수록 보상처럼 주어지는 감동은 크다. 뻥 뚫린 거대한 굼부리다. 한라산 등정은 물론이고 오름 조차 처음 올라본 나에게 굼부리와 능선을 따라 비단처럼 펼쳐진 억새밭, 가을 바람에 하얀 파도처럼 일렁이는 억새의 군무는 장관이다.
일주일 전 영산강 상류의 광주공항 주변과 승촌보까지 펼쳐진 억새밭을 나들이 했던터라 또 다른 억새의 향연은 두 배의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한참을 쉼터에 앉아 좋은 풍경을 가슴에 담으면서 화실에서의 고독한 싸움, 그리고 지쳐있는 나를 위로했다.
또 다른 날이 밝고 친구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해안가를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넓은 바다, 부딪치는 파도, 정겹게 느껴지는 마을과 돌길을 하루 내내 함께 걸으며 항상 무엇에 쫓기듯 분주한 생활과는 다른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소모적인 경쟁의 삶, 치열하게 하루 하루를 싸우는 서글픔, 창작의 고통도 이 넉넉함과 편안함 그리고 여유로운 풍경 앞에서 잠시 사라진다. 그리고 나의 신념이 흔들리고 있었는지 반성과 함께 되돌아 본다.
바다의 수평선이 아득해 보인다. 바다의 끝, 그 끝 너머 새로움에 대한 열망과 삶의 여백같은, 그리고 여유가 해질녁 이 순간 느껴지는 마음이다.
* 오광섭 프로필
-전남대 예술대학 졸업
-개인전 3회, 한국현대미술 신기회전 등 단체전 200회
-한국미술협회, KSOPA, 신형회, KAMA, 한국현대인물화가회, 신기회, 불휘기픈회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