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수없이 많은 젊은 날들을 허비하고 삶이 무너져 내리던 순간에도 내 삶을 이끌었던 것이 바로 독서였기 때문에 나는 누구보다 아이들에게 독서를 강조하는 교사였다. 모범생도 아니었고 공부도 못했던 내가 국어교사가 되어 있는 지금의 결과도 결국은 중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읽었던 책들 때문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억지를 부려서라도 아이들에게 독서를 시키려고 하는 것은 내게 있어 거의 사명과 같은 것이었다.

몇 년간을 쉴 새 없이 독서토론수업에 대한 열의로 뛰어다녔고, 그 인연으로 독서토론열차학교라는 장대한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 이 프로젝트에 대해 들었을 때의 느낌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시베리아 벌판을 가로지르는 열차와 그 열차 안에서 며칠이고 앉아서 책을 읽고, 그것을 바탕으로 열띤 토론을 이어가는 학생들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이었다.

열차 내에서는 토론과 I-Brand글쓰기가 주된 활동이었다. 우리 반 학생들의 글쓰기 주제는 ‘공감과 치유’였다. 자신들이 17살이 될 때까지 물리적, 정신적으로 상처받은 경험과 이것을 다른 이들과의 공감과 소통을 통해 치유한 것을 쓰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쓰는 것이긴 했지만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어떤 아이는 독서토론열차학교를 ‘이야기 장터’였다고 표현할 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휴대전화도 되지 않고 씻고 자는 것마저도 자유로울 수 없는 좁은 열차 안에서 마음으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자기 것에 집착을 보이고 네것 내것을 따지던 아이가 경계를 허물기 시작했고, 프로그램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던 또 다른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동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인정하고 공감해주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났고, 친절과 배려,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밝은 모습만 보이던 아이의 상처와 현재 진행형인 아픔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나는 다만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는 것밖에는 하지 못했지만 아이는 그것만으로도 고마워했고 심지어는 열차학교가 끝나갈 즈음에는 한 번도 손톱깎이를 써본 적이 없다던 아이의 손톱이 온전하게 자라는 모양까지 볼 수 있었다.

열차학교의 유라시아 대장정은 8월15일에 끝났다. 집에 돌아온 뒤에도 한 동안 잠에서 깰 때면 몸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열차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간걸까하는 엉뚱한 질문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리고 거의 모든 부분에서 일상으로 돌아온 요즘에야 독서토론열차학교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독서토론열차학교를 탔던 아이들의 독서토론 능력이 월등하게 신장되었을까? 아니면 인생의 목적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을까? 대부분의 아이들은 나처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달마다 치러야하는 모의고사 준비에 온 신경을 쓰고 있을 것이며 경쟁과 결과 중심적인 학교와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다시 제 모습을 잃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변화는 보이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시선도 많이 달라져있다. 교사가 되어 10년 남짓, 나는 너무나 빨리 아이들을 판단하고 평가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 좁은 열차 안에서 보여줬던 아이들의 모습이 우리가 학교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아이들의 진짜 모습은 아니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진작 열차에서 내렸지만 나는 그 안에서 느꼈던 공감과 소통의 시간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믿는다. 우리 아이들이 그 아름다운 기억들과 행복감을 잊지 않고 산다면, 그리고 언젠가 괴롭고 힘든 현실 앞에 좌절감을 느낄 때 그 날들을 떠올릴 수 있다면, 독서토론열차학교는 공감과 소통, 치유라는 가치 앞에 완벽하게 성공한 것이 아닐까?

▲박종현 〈독서토론열차학교 드바(2)반 담임·장성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