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생활을 뒤로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자 홀가분하게 떠난 휴양과 문화 유산의 도시 베트남 다낭.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걸 보고, 새로운 걸 듣고, 새로운 걸 느끼는 것은 또 하나의 설레임이며 여행의 진미가 아닌가 싶다.

도시 가까이 있는 미케해변은 드넓은 바다에 끝없이 펼쳐진 부드러운 백사장과 푸른 해변에 몸과 마음을 맏기니 이러한 것이 여행의 즐거움이며 쉬어가는 여유다.

또한 바닷가의 투엔이란 조그마한 원형배로 그물을 내리고 고기잡는 모습은 에메랄드 빛 바다와 어울려 또 하나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디서나 살아가는 모습은 항상 바쁘고 또한 복잡하겠지만 이들의 생활은 참 이채롭다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오토바이와 차가 뒤엉키고 신호를 무시하는 게 예사지만 또 조화롭게 풀어가는 ‘무질서 속의 질서’와 버스앞 번호판에 향을 피울 수 있는 조그마한 향통을 달고 다니는 모습은 종교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해 신기하고 재미가 느껴진다.

투엔에서 멀지 않은 곳에 19세기 프랑스인이 발견한 후 유네스코에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동남아 힌두교 최고의 성지 참파왕조 마손 유적지가 있다.

월남전 때 폭격을 받아 본래의 모습을 많이 잊었지만 파괴되지 않은 일부 건축 조각품의 살아있는 듯한 섬세함은 전쟁이 야기한 참상에 아쉬움을 갖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감동도 전해준다.

우리나라 판소리, 중국의 경극과 견줄만 한 압사라춤 공연도 인상적이었다. 시대적 흐름을 넘어 과거의 영화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표현하는 환상적이면서 몽상적인 몸짓이은 전통의 혼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행위예술였다.

또 하나의 유적지를 찾아 시간이 멈춰버린 과거의 문화가 살아있는 호이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난생 처음 자전거 수레 시클로를 타고 골목 골목을 누비는 재미로 한껏 여유를 느껴본다.

괜시리 힘들게 페달을 밟는 아저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짜오아잉”하고 급히 배운 인사말을 전하니 환한 미소를 전해줘 마음의 위안이 된다.

씨클로, 오토바이, 논(non)을 쓴 행상들로 가득한 호이얀은 과거에는 무역의 중심지였지만 그 역할이 다낭으로 옮겨 가면서 잊혀진 항구 마을이 됐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외진 곳에 위치해 있어 20세기에 일어난 많은 전쟁의 파괴에서 벗어나 건축물들은 거의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남을 수 있었다.

발전이 멈춰버린 도시지만 이는 오늘날 소중한 문화유산이 되어 남겨지게 됐으며 16∼17세기까지 동남아시아의 무역항으로 잘 보전된 사례라는 점이 인정돼 1997년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받게 된다.

삶의 흔적이 묻어있는 건축물의 바랜 듯한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색과 미로같은 골목의 소박한 구성이 잘 어우러져 과거의 시간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경이로우면서 가슴이 벅차오른다.

고요한 강가 마을엔 토속음식점, 찻집, 갤러리, 아기자기한 소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약간은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들어서 있다. 어느 2층집에 올라보니 복잡하게 얽혀있는 낮은 기와 지붕들이 조화로운 구성으로 정감을 더해주준다.

동서양 문화가 복합된 부드러운 무늬와 색감, 옛 모습 그대로인 좁은 골목을 누비며 아름다움에 쉴새없이 카메라를 누른다.

비를 피해 한적한 가게로 들어섰는데 어느 이름 모를 화가가 너무나 좁은 화실에서 물감이 범벅된 화구로 지역 풍경과 논을 쓴 베트남 여인을 그리고 있었다. 작업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며 열심히 사는 모습에 묘한 삶의 동질성을 느끼며 엷은 미소가 머금어진다. 지역 상인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어느 화가의 모습에 문화 공간으로 자리잡은 광주 대인예술시장의 모습이 떠올라 더욱 정감이 간다.

바로 옆에는 과거 일본거리와 중국거리를 나누는 내원교가 있다. 1590년 일본인이 세운 이 다리는 화려한 채색으로 낮보다 조명을 받는 밤이 더 아름답고 지붕이 있는 독특한 형채로 베트남 화폐에도 그려져 있는 유명한 곳이다.

다리 안에는 재미있는 조각상이 놓여 있다. 원숭이 해에 만들기 시작해 개의 해에 완성된 작품이라는 의미를 담아 두 동물을 함께 조각해 놓았는데 재치가 느껴진다.

내원교 아래 멈춰 있는 배가 보인다. 화려한 등과 꽃, 과일을 가득 싣고 누군가 기다리는 사공의 모습이 과거의 영화를 보는듯하며 그동안 살아온 삶의 무게까지 느껴져 참으로 아름다워 보인다.

비 내리는 강가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조그마한 배를 가득 채운 많은 자전거, 오토바이의 모습이 위험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바쁜 그들의 모습에서 행복함이 느껴지는 것은 이런 게 바로 그들만의 살아가는 방식이며 삶의 희로애락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베트남의 문화는 과거 어느 신세계를 여행하는 듯한 묘한 충격과 재미로 다가왔다. 내가 살지않은 다른 곳에서도 많은 삶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고, 때론 그 모습에 내가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에 야릇한 기분이 들고 여행의 여운은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과거는 미래를 보는 나침판이며 아름다운 추억은 먼 훗날 꿈과 함께 보다 나은 삶으로 남게 될 것이다.



*문명호

-조선대 미술대학 졸업

-개인전 8회, 국내외 그룹초대전 400여회

-SOAF, KIAF, 부산, 울산, 광주아트페어 참여

-대한민국미술대전 등 각 공모전 심사위원 역임

-전남도전 및 무등미술대전 초대작가, 한국미협·한국전업미술가협회·예술사회·광주사생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