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얼 씨구씨구 들어간다∼∼

저∼얼 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우리들의 귀에 너무 많이 익어서 대한민국 보통사람이라면 품바타령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품바는 각설이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의 풍자극이다. 이는 춥고 배고픈 걸인들이지만 절망한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삐뚤어진 세상에 대한 질책이 담겨져 있다.

과거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피지배 계급의 심정을 담기에 충분한 타령으로 품바가 처음 기록된 문헌은 고창출신 신재효(申在孝, 1812∼1884)의 한국 판소리 전집에 수록돼 ‘입장고’라 불렸고 조선시대 말기와 일제식민지 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특히 80년대 살벌한 군사정권 이후 사회적 과도기를 겪으면서 당시에 정치 풍자극으로 자리 잡아 서민들 사이에 인기가 높아졌다.

일인극 ‘품바’는 일제식민지시대부터 자유당 말기까지 살다간 각설이패 천장근 대장의 일대기를, 전남 무안군 일로 출신인 시인이자 극작가 겸 연출가인 김시라 선생이 발굴해서 1981년 12월 무안 일로읍 공회당에서 초연무대를 올리고 이후 5000회가 넘는 공연의 전통을 유지해 왔다.



오∼ 자네 왔능가!

이 무정헌 사람아

그래!

淸風에 날려 왔나

玄鶴을 타고 왔나

자넨

墨이나 갈게

난

慈雨茶 끓임새



님의 시가 저절로 떠오르는 고인(故人)은 떠나고 없지만 그의 향토 창작극은 수많은 의미를 남기고 있다.

올 5월 초 수십 년의 기억을 더듬어 무안군 일로를 탐방했다. 의산리 밤나무골 천사촌(걸인촌) 터와 과거 그곳에서 함께 살았던 생존한 분도 수소문해 만났지만 손사래를 치시기에 과거의 아픔을 듣지 못했다. 성자(聖者)도 고향에서는 대접을 받지 못하듯…. 고 김시라 선생 생가터도 오래전 타인에게 양도되고 공회당 역시 마을회관으로 새 단장 돼 있었다. 김시라 선생의 주도로 1980년 당시 지역문화운동인 인의예술회(仁義藝術會)가 결성되고 1981년 광주에서 자취하던 김시라 선생을 ‘형’이라 부르며 자주 만났다. 그의 여동생 김향신님은 연진미술원에서 그림 공부하며 동향(同鄕)의 후배였던 박문종 화백의 증심사 아래 무량(茂良)마을 자취방 바닥에 엎드려 함께 품바 희곡 원고를 검토하며 마지막 탈고했던 기억이 아련하다. 김시라 선배와의 인연은 박문종 화백과 김판철 친구의 소개로 인연이 됐는데 긴 머리에 해박한 고문(古文), 논리적이면서 부드러운 언변,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존경의 대상이었다. 추진력이 뛰어난 김 선배님은 그해 말, 무안 일로 허름한 공회당에서 인의예술제 행사로 공연이 시연(試演)되고 서화전도 병행되어 필자나 박문종 화백도 작품을 출품했고 당시, 1대 품바 정규수 친구가 열연을 펼치면서 환호했었다. 이후 1982년 말, 동명동 금호문화재단에서 공연할 때도 일로 청년들의 적극적 동참과 추임새로 흥을 돋우며 다듬어진 각설이타령은 세파를 조롱하고도 남을 만큼 성대한 공연을 마쳤다. 이후 김선배는 척박한 중앙으로 상경해 전국적 관심을 갖기까지 수많은 고초를 겪었다. 서울생활 초기 허름한 단칸방에서 지방 연출가를 홀대하는 거만한 공룡 앞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필자도 방문해 쓴 소주로 하룻밤을 함께한 기억 또한 빛바랜 사진 같다.

그의 생전 인터뷰에서 했던 말처럼 “어찌 보면 품바는 내 인생의 넋두리인 셈이다”라는 신고(辛苦)의 과정을 거쳐 하층민들의 서러운 푸념을 대변하는 애교 넘치는 풍자로 사랑과 선행이 앞서는 품바 역사관이 자리잡기를 소원했다.

고 김시라 선생 고향에서도 일로품바보존회가 유지되고 있고 서울이나 지방에서도 공연은 상업적으로 난무하지만 진정 그의 깊은 뜻은 살아서 움직이는 생물처럼 전승되고 있다.

현재 전남 무안군 일로읍 의신리 888번지 밤나무골 천사촌 입구에는 대형비문에 품바발상지라 쓰여 있고 천사촌은 야트막한 야산둔덕에 소나무와 잡목이 무성하고 옆에는 배추밭과 주택이 한두 채가 있다. 멀리 보이는 앞 논밭은 과거에는 바닷가였지만 영산강 하구원이 생기면서 들판이 되었는데 현재는 신작로를 내기 위해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지형도, 인심도 바뀌는 것은 당연하지만 왠지 허허로웠다.

회산방죽의 백련지 옆 용산마을, 김시라 선생 생가터 또한 과거의 흔적은 기억의 창고에 저장되고 다만 품바 공연을 통해서 ‘사랑을 베푼 자만이 희망을 가진다’ 라는 메시지만 남았다. 가끔 TV에서 1대 품바 정규수 유명배우와 화려한 휴가에 출연했던 박철민 배우가 출연하면 고 김시라 선생을 뵈듯 자랑스럽게 시청한다. 김선배님이 저명인사로 성공한 후에는 뵙기가 하늘에 별처럼 어려웠지만 가끔 통화했던 기억마저도 잊고 있었는데 마지막 소식을 접하고도 문상(問喪) 하지 못했다. 일찍 타계한 본명이 김천동(金千童)이었던 시인의 총각시절, 은은하게 미소 짓던 동안(童顔)이 문득 떠오르는 이유는 왜 일까?

천장근 대장의 삶과 가치관도 비슷한 고인이 조명한 품바타령!

날개 없는 거지천사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한과 울분을 통해 서로에게 베푸는 연습을 시킨다는 것을….

나의 어린 시절에 중얼거린 한 토막 시(詩)다.



“가난이야 살림이 중하다 뿐이지? 마음조차 가난한가.”



고 김시라 선생의 안목과 수고로움은 수많은 배우들을 양성해 생존과 명성을 획득할 수 있도록 씨앗을 뿌렸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심사숙고해서 탈고한 생각의 매듭은 무등산 증심사 사하촌(寺下村), 화가의 후미진 자취방에서 완결되어져 세상의 메아리가 되었음을 상기해볼 때 ‘가난한 살림의 원초적 과정은 결코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라고 생각된다.

*박종석

-호남대 미술학과 및 조선대 대학원 순수미술학과 졸업

-개인전 15회, 단체전 200회

-제6회 광주미술상 수상, 제2회 서암전통문화대상 수상

-논문 및 저서 ‘학포 양팽손의 예술과 사적고찰’, ‘부러진 대나무’, ‘세한을 기약하고’, ‘히말라야14좌 화보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