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로 띄우는 그림편지] <18> 마음속으로의 여행 - 정상섭
2015년 08월 31일(월) 00:00 가가
틀린 게 아냐 … 다를 뿐이야
나무의 바다에서 꽃과 물고기, 새가 어우러지는 모습을 추상적인 형상들로 묘사한 ‘언덕에 올라보면’.
#1. 지인의 집들이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다. 상당히 넓은 평수의 아파트였다. 대리석과 고급벽지로 인테리어장식이 된 약간은 호화로운 집이었다. 평소 품위있던 지인은 집과 집안 살림살이 자랑으로 입에서 침이 튈 정도였다. 중국에서 구입한 것 같은 알 수 없는 작가의 이상한 그림 몇 점이 커다란 벽면 곳곳에 맥없이 걸려있다. 거기에 걸맞게 장단을 맞추다 보니 큼직한 오디오가 내 눈에 띈다. 한눈으로 봐도 커다란 오디오가 꽤 비싸 보였다.
나는 오디오에 이렇다 할 전문 지식이 없다 보니 거기에 놓여 있던 먼지 쌓인 CD 몇 장에 먼저 눈이 갔다. 취향이 모두 다르기는 해도 고급 오디오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음악들이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신나는 메들리 삼태기 정도의 음반이었다. 나는 비교적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 고급오디오는 잘 꾸며진 집 분위기의 빈곤함을 채워줄 다른 음악을 원하는 것 같아서 조금은 웃음이 나왔다.
#2. 거의 30년 전쯤이라 생각된다. 그때 당시 라디오의 유명한 클래식 음악프로에서 나오는 음악을 아무 생각 없이 듣다가 몽유병 환자처럼 빠져든 적이 있다. 원래 클래식음악의 장점은 무심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날은 어쩐 일인지 그 음악을 들으면서 뭔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먹먹함을 느꼈다. 서정적이면서도 너무도 아름다운 선율에 깜짝 놀랐다. 제목을 알려고 끝날 때까지 듣고 있다가 바로 음반을 사러간 적이 있다. 여느 20대처럼 팝이나 들었던 젊은 시절, 나는 클래식에 대한 음악적 소양이나 관심이 전혀 없었을 때였다.
그런데도 그 음악이 주는 순간적인 음률에 가슴이 뛰었다. 그 음악은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그 유명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었다. 지금이야 영화나 매체를 통해 워낙 많이 알려져 웬만한 사람도 ‘아! 이 곡’하고 알 수 있는 유명한 곡이지만 어쨌든 이 음악으로 말미암아 클래식음악에 처음 귀가 열렸다. 그래서 그때의 영향으로 넓고 깊은 음악세계에 빠졌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지금까지도 나의 음악적 토양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아마도 카타르시스였을까? 그렇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카타르시스는 꼭 비극적인 해석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어디서든 마음이 행복해지거나 또는 따뜻하고 풍요로워지면 즐겁고 행복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3. 언젠가 개성 있는 작품세계를 갖고 있는 작가 몇 사람의 작품전이 한 갤러리에 초대되어 같이 전시회를 한 적이 있다. 그중 A라는 한 작가는 아주 사실에 가까운 작업을 하면서 평소에 자기작업에 대해 보이지 않은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B작가는 일반인의 시각에서 본다면 그리다만 것 같은 끼적거리는 스타일의 작품을 내놨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리다만 것 같은 스타일의 작가 작품은 압축과 생략으로 미니멀적인걸 추구하는 훨씬 밀도 있고 깊이 있는 작품이라 생각했다.
모든 예술가들에게는 상호 작업스타일에 대해서는 보이지 않은 묵시적인 불문율 같은 게 있다. 아마도 사실적 작업을 하는 작가는 미니멀적인 조형세계의 이해부족이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래서일까. A는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너무도 진지하게 정색을 하면서 B에게 한마디 했다. “왜 그렇게 성의없이 그림을 그리느냐”는 것이었다. 순간 그 충고 아닌 충고를 듣던 그 작가는 옆에 있던 내 얼굴을 보더니 어이가 없어 말 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아연실색했다. 무례하기도 했지만 회화 본질의 다양성을 모르는 그 작가와는 서로 작업 내용 뿐만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이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사고의 균형을 잡지못하고 은근히 자기가 최고라는 의식은 질 낮은 나르시시즘에 불과하다. 이렇듯 몰이해로 인한 타인에 대한 취향이나 세계가 이해되지 못하고 존중되지 않은 세태는 발전이 없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같음을 찾아 갈 때 행복한 카타르시스와 질 높은 나르시시즘을 느끼지 않을까?
가을과 함께 오는 9월의 가을바람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음미하면서 들어보기를 권해본다.
*정상섭
-조선대 미술과·동대학원 졸
-개인전20회(서울·광주·필라델피아·휴스턴)
-백제의 바람 전(교토), 오늘의 세계미술현장 전(서울), CAPPING전(동경) 등 그룹 전 150여 회 참여
-호남예술제, 광주시·대구시미술대전심사위원 역임
-현 한국미협 및 전업미술가 회 회원, 아시아문화중심도시지원포럼위원
#2. 거의 30년 전쯤이라 생각된다. 그때 당시 라디오의 유명한 클래식 음악프로에서 나오는 음악을 아무 생각 없이 듣다가 몽유병 환자처럼 빠져든 적이 있다. 원래 클래식음악의 장점은 무심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날은 어쩐 일인지 그 음악을 들으면서 뭔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먹먹함을 느꼈다. 서정적이면서도 너무도 아름다운 선율에 깜짝 놀랐다. 제목을 알려고 끝날 때까지 듣고 있다가 바로 음반을 사러간 적이 있다. 여느 20대처럼 팝이나 들었던 젊은 시절, 나는 클래식에 대한 음악적 소양이나 관심이 전혀 없었을 때였다.
#3. 언젠가 개성 있는 작품세계를 갖고 있는 작가 몇 사람의 작품전이 한 갤러리에 초대되어 같이 전시회를 한 적이 있다. 그중 A라는 한 작가는 아주 사실에 가까운 작업을 하면서 평소에 자기작업에 대해 보이지 않은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B작가는 일반인의 시각에서 본다면 그리다만 것 같은 끼적거리는 스타일의 작품을 내놨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리다만 것 같은 스타일의 작가 작품은 압축과 생략으로 미니멀적인걸 추구하는 훨씬 밀도 있고 깊이 있는 작품이라 생각했다.
모든 예술가들에게는 상호 작업스타일에 대해서는 보이지 않은 묵시적인 불문율 같은 게 있다. 아마도 사실적 작업을 하는 작가는 미니멀적인 조형세계의 이해부족이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래서일까. A는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너무도 진지하게 정색을 하면서 B에게 한마디 했다. “왜 그렇게 성의없이 그림을 그리느냐”는 것이었다. 순간 그 충고 아닌 충고를 듣던 그 작가는 옆에 있던 내 얼굴을 보더니 어이가 없어 말 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아연실색했다. 무례하기도 했지만 회화 본질의 다양성을 모르는 그 작가와는 서로 작업 내용 뿐만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이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사고의 균형을 잡지못하고 은근히 자기가 최고라는 의식은 질 낮은 나르시시즘에 불과하다. 이렇듯 몰이해로 인한 타인에 대한 취향이나 세계가 이해되지 못하고 존중되지 않은 세태는 발전이 없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같음을 찾아 갈 때 행복한 카타르시스와 질 높은 나르시시즘을 느끼지 않을까?
가을과 함께 오는 9월의 가을바람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음미하면서 들어보기를 권해본다.
*정상섭
-조선대 미술과·동대학원 졸
-개인전20회(서울·광주·필라델피아·휴스턴)
-백제의 바람 전(교토), 오늘의 세계미술현장 전(서울), CAPPING전(동경) 등 그룹 전 150여 회 참여
-호남예술제, 광주시·대구시미술대전심사위원 역임
-현 한국미협 및 전업미술가 회 회원, 아시아문화중심도시지원포럼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