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몇 가족이 모여 라오스로 여행을 떠났다.

방비엥(Vang Vieng)에 있는 푸딘댕유스센터라는 공동체에서 라오스 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그 친구들이 사는 동네에서 머무는 프로그램이었다.

푸딘댕유스센터는 10여 년 전 아시아볼룬티어네트워크라는 민간단체에서 개인들이 마음과 정성을 모아 건립한 마을 공동체이자 교육공간이다. 마을 카페를 운영하고 수공예품을 팔아 자립을 돕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가기 전에 푸딘댕유스센터에 무엇이 필요한지,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의미 있게 함께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종이 죽으로 만든 하회탈과 각시탈 70개와 오방색 등 원색 아크릴 물감을 준비해서 라오스 어린이들과 탈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리고 즉석카메라로 한 명 한 명 사진을 찍어줬고, 우리 아이들은 벼룩시장을 열었다. 우리는 라오스 아이들이 가르쳐주는 민속춤을 배우며 신나는 하루를 보냈다. 하루 만에 친구가 되었다. 친구가 된 우리들은 라오스 아이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방문했다. 자연에 파묻혀 있는 마을은 아름다웠다. 그렇게 ‘배움 여행’ 프로그램은 끝이 나고, 자유여행이 시작되었다.

우기에 찾은 라오스에서 과연 제대로 여행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은 온몸이 비에 젖어버린 순간 사라졌다. 우기라서 모든 강물이 흙탕물이 되어 흐르고 있었고 신비롭게 솟은 라오스의 산들은 구름에 가려져 그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방비엥에서 우리가 묵은 호텔은 쏭강이 흐르는 풍경을 바로 내려다 볼 수 있는 호텔이었다. 이 모든 조건이 우리 일행에게 ‘비일상성’을 제공했다. 순간 ‘여행이란 비일상성을 경험하러 떠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비일상성을 경험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무더위를 식혀주는 비가 하염없이 내렸고, 그 비를 맞으며 논길을 걸었다. 아이들은 미끈거리는 논 두렁의 흙이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오는 그 느낌이 재밌던지 가다가 흙물 웅덩이라도 발견하면 여지없이 발을 담그며 장난을 했다. 배가 고팠고 삼겹살과 마늘이 구워지는 냄새가 났다. 인가가 없을 것만 같았던 곳에 캠프장이 나타났다.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삼겹살 파티. 비를 맞고 걸어온 보람이 있었다. 우리는 정글을 배경으로 물소리를 들으며 지상에서 가장 멋진 점심식사를 했다. 아이들과 그렇게 자연 속을, 빗속을 걸었다.

이마에 등불을 켜고 튜브를 타고 줄을 당겨가며 낮은 동굴을 지나갔던 탐남 동굴에서의 그 울림, 블루라군에서 다이빙하던 젊은 연인들, 아이들과 한 조가 되어 비를 맞으며 노를 저었던 카약킹, 8시간 버스를 타고 달리다가 만난 신선이 사는 듯한 구름 속의 비엥파 휴게소, 화려한 색상의 물건들이 펼쳐진 루앙프라방의 야시장, 라오스의 아침을 여는 승려들의 탁발, 꽝시폭포에서 느낀 자연이 주는 향연, 메콩강변 야시장에서 흘러나오는 흥정하는 소리와 가요들, 황금칠을 한 왓 마이(Wat Mai)사원의 불상. 모든 게 꿈만 같다.

예술에서는 비일상성이 중요하다. 초현실주의 미술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반복되는 일상을 어떻게 표현하면 낯설고 비일상적인 것이 되고 새로운 소통의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갑자기 일상에서 비일상적인 상황 들이 펼쳐진다. 여행이란 공간을 이동하며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경험이다. 게다가 비까지 내렸으니, 더욱 꿈속 같은 상황들이 전개되었다. 우리 일행은 같은 꿈을 꾸고 온 것이다. 분명히 계속 비만 온 것은 아닌데, 빗속을 여행하고 돌아온 것만 같다. 느낌이란 이렇게 강렬한 것인가? 우기의 라오스 여행이 주는 비일상성이 마치 무의식을 여행한 듯한 경험을 선물했다.

예술과 여행의 공통점은 이러한 비일상적 것들을 경험하는 것이 아닐까? 광주에 돌아오니 무더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비에 젖어서 지낸 라오스의 기억이 흑백사진처럼 오래된 앨범 속 장면 같다. 이 무더운 여름을 피하지 않고 라오스에서 비를 맞듯 땀에 젖어서 지내다 보니 이 일상도 마치 오래된 기억을 되살리는 것만 같다.

*주홍

-중앙대 대학원 미술학 석사, 원광대 대학원 보건학(예술치료 전공) 박사

-개인전 16회

-2012년 5·18전야제 샌드애니메이션 공연, 2010 광주세계光엑스포 시민파빌리온 전시 커미셔너, 2008 광주시 문화예술상(허백련 특별상)·광주비엔날레 공훈상·제3회 광주미술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