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그가 없는 청정의 탐라국, 아시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도시이자 남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천혜의 특별자치 도시가 제주도다.

제주도 여행은 4번째로 제주산악연맹의 초대를 받았다. 서울 김포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우리의 영공을 힘차게 날아오른다. 상공에 상주하는 솜털 구름 사이를 뚫고 전진하는 흐름에 몸을 맡기니 1시간 만에 제주공항에 안착한다. 그 사이에 천둥과 번개도 치고 비도 내린다. 기류에 흔들리니 기장이 2차례나 방송으로 안심시킨다. 비행기를 타면 항상 어린이처럼 호기심이 생겨난다. 묵직한 비행기는 쇠로 만든 거대한 새와 같다. 과학의 발달로 시간을 단축시켜 공간이동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편리하지만 뜻하지 않은 불행도 감수해야한다.

문득 내가 태어나고 나의 모든 삶을 이어주는 고향을 생각하게 됐다. 광주를 상징할만한 것이 무엇일까? 자문자답해보면 인권도시, 문화도시, 민주주의 성지 등 다양한 단어들보다는 먼저 무등산이 떠오른다. 무등산에서 도심을 굽어보면 고층아파트로 이루어진 양봉 벌집을 연상하게 한다. 조금은 부유하게 느껴지지만 그 밀집 공간 사이로는 문화적 삶의 여러 형태들이 다양하게 이어지고 있다.

푸른길 둘레 안에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에 앞서 2015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가 개최되니 광주는 축제분위기다. 궁동 예술의 거리의 전시를 소개하는 다양한 플래카드 색상도 밝기만 하다. 외형은 그럴듯하다. 그러나 왠지 활기찬 느낌이 없다. 전반적으로 예술가들의 활동이나 문화 활동의 기류가 저기압이기 때문이다.

다만 관의 지원에 의지한 프로그램 정도만 진행되고 있다. 치열한 예술가의 창작의지를 펼칠만한 저력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의구심이 생겨나는 이유는 왜일까? 아마도 경제성장의 동력이 부진한 이유도 있겠지만 주거 환경의 변화로 인한 아파트문화와 세대 간의 문화시각 차이에서 기인하지 않았나 싶다.

광주에 있는 미술관과 대학박물관, 사설미술관은 모두 12곳이다. 사설미술관으로 특별하게 떠오르는 곳은 의재미술관과 우제길미술관, 무등현대미술관, 은암미술관 정도다. 그런데 제주에는 73개의 등록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고 미등록 박물관·미술관, 전시관까지 포함하면 1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인구 대비로 보면 제주도가 전국에서 가장 많다. 그래서 제주를 ‘박물관 천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을 비롯하여 교육박물관, 해녀박물관, 4·3평화기념관, 제주현대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 등 공립박물관이 있다. 모두 제주의 특성을 잘 드러낸 곳이다.

예전 방문했던 추사기념관, 이중섭기념관, 소암기념관, 이왈종미술관 등이 떠오른다. 이곳들은 ‘지역 대표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관광객 유치에 성공한 사례들이다. 광주시도 질적 성장을 위해 대차대조표(貸借對照表)처럼 면밀하게 비교해 보아야한다.

보잘 것 없지만 오래된 역사의 흔적인 전통문화의 보존과 그 바탕에 문·사·철의 기초학문이 담겨야 한다. 그 예로 80년대부터 문화계를 대단히 활발하게 이끌었던 금호문화재단의 활동과 광주일보 자매지, 월간 ‘예향(藝鄕)’의 발행은 예술도시로의 문예 부흥기를 주도했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최근 광주에서도 인문학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강의와 문화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수백 개로 늘어난 커피 가게의 유행에는 따라가지 못한 느낌이다.

최근 화천기공에서 주도한 서암문화재단의 전통문화 지원 사업과 각화동 시화마을에 있는 금봉미술관 개관도 괄목할 만한 좋은 사례라 할 것이다. 광주시가 제주도처럼 되길 바라지는 않는다. 향토 예술인들의 창작의지가 식지 않도록 세심한 관심과 기업의 메세나 운동이 더욱 활발해 져야한다. 다만 역사적으로 각인되는 민주성지의 강인함을 넘어서 과거 예향의 이미지를 되찾아야한다.

이틀간의 외유! 제주도 서귀포시 토평동의 추모공원에 조성된 대형 조형물 앞에서 식순에 의해 산악인 오희준 8주기 추모식이 거행된다. 그날 오희준 평전 ‘산사나이 하늘 오르다’ 출판기념회도 동시에 열렸다. 2007년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2달 동안 생활하며 필자와 인연이 되었고 희망과 꿈이 좌절되었던 고산에서 생사의 경계를 목도한 기억이 아련하다. 이제는 그의 도전과 개척정신은 제주도민과 제주도산악연맹에서 이어가고 있다. 타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민관협동으로 결집력이 돋보인다. 바로 광주의 문화예술 운동도 자타불이(自他不二) 정신으로 파벌의 경계를 넘어 아우르는 도전이 있기를 기원해본다.



*박종석

-호남대 미술학과 및 조선대 대학원 순수미술학과 졸업

-개인전 15회, 단체전 200회

-제6회 광주미술상 수상, 제2회 서암전통문화대상 수상

-논문 및 저서 ‘학포 양팽손의 예술과 사적고찰’, ‘부러진 대나무’, ‘세한을 기약하고’, ‘히말라야14좌 화보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