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파리 - 한희원
2015년 05월 18일(월) 00:00 가가
예술적인 삶이 별 거 있나 … 시로, 철학으로 생을 위로하세
빈센트 반 고흐가 생의 마지막 70일을 보낸 오베르 쉬르우아즈에서 그린 ‘오베르 교회와 별’.
J에게
J, 봄이 한창인데 저는 파리로 가는 여정에 몸을 실었습니다. 내가 돌아올 즈음에는 남도 땅 오월은 하얀 찔레꽃으로 덮여 있겠지요. 광주의 거리에도 하얀 이팝나무가 피어 있어 온통 순백한 색으로 저를 맞이할 것입니다. 흰색은 깨끗하고 순결한 느낌을 주는데 언제부터인가 소복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직도 이 땅에 오월의 정신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한 결과라 생각됩니다. 누구나 아픔을 간직하고 있겠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치유하지 못하는 아픔이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이 우리 곁에 있는 역사라는 것이 더욱 상처가 됩니다.
화가생활을 한지가 수 십 년이 지났는데도 서양회화가 불꽃처럼 꽃피웠던 파리를 이제야 찾은 것은 저의 게으름 탓으로 돌리겠습니다. 그동안 히말라야나 티베트 같은 오지의 ‘순정한 고독’을 찾아 순례하였던 것은 마음속의 어찌할 수 없는 ‘빈터’를 찾아 헤매는 일이었습니다. 그러한 여행을 통해서도 깊은 안식의 평안을 찾지 못한 것은 세상을 향한 약한 인간들이 겪는 방황의 모습이 아닐런지요.
J, 이번 늦은 파리 여행에서 가장 느끼고 싶었던 것은 ‘파리’라는 도시의 예술정신이었습니다. 자유와 순백한 열정과 예술과 샹송에 물든 파리의 분위기에 취하고 싶었습니다. 파리의 오래되고 낡은 거리를 걸어가는 파리지앵 누구라도 붙잡고 와인에 취해 이야기하면 스스럼없이 시를 읊조리며 지난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은 그런 느낌말입니다. 예술적인 삶이 별거 있나요. 예술이 삶과 함께 취해 어울리며 시를 이야기하고 철학을 논하고 노래를 부르며 눈물겨운 생을 위로하고 사는 것이 아닌가요.
예향이라고 불리는 내 고향 광주는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이 좀처럼 어려운 일이에요. 어떤 때는 묘한 틀과 권위 속에 갇혀 자유로운 삶속에 누구나 쉽게 예술을 즐기는 삶을 찾기가 어려웠거든요.
J, 파리에 도착한 날부터 거리는 안개비에 싸여있었습니다. 파리 사람들은 이상하리만큼 우산을 쓰지 않고 검은 옷을 입고 비를 맞는 것을 즐겨했습니다. 수 백 년 동안 때 묻은 파리 거리의 석조건물들은 빗물에 젖어 짙은 베이지색으로 변해가고 먼 이방에서 온 나그네의 가슴까지 적시게 만들었습니다.
J, 실제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가슴 뛰는 곳은 빈센트 반 고흐가 마지막 생의 70일간을 보낸 오베르 쉬르우아즈였습니다. 고흐가 아를르를 떠난 1889년 5월부터 1890년 7월까지 1년 2개월 중 1년은 생 레미 정신병원에서 그리고 마지막 두 달 간은 오베르에서 보내게 됩니다. 생 레미 정신병원에서 고흐는 1년간 150점의 유화를 완성합니다. 이틀에 한 점씩 그림을 완성해 나간다는 것은 같은 화가로서 보면 미친 듯이 그림에 취해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고흐는 절망의 끝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자신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마지막 생이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고흐는 생 레미 정신병원을 나와 오베르로 향합니다. 고흐가 오베르역에서 내린 그날도 오늘처럼 횟빛 안개비가 내리고 먹구름이 몰려왔을까요. 오베르라는 작은 마을에서 이 괴팍한 화가를 반가이 맞아줄리 만무하였을 것입니다.
오베르에서 고흐가 그린 풍경들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들녘이나 후미진 곳이었습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길은 얼마나 처연하던지요. 고흐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오베르역 건너편의 이층집에 오르는 순간 내 영혼 속에서 불꽃이 튀는 먹먹함이 파고들었습니다. 어둡고 낡은 계단을 오르면 겨우 한 사람이나 몸을 누일만한 좁은 방에 목조의자와 침대 하나가 그림자처럼 놓여 있었습니다. 한 영혼이 한 영혼에게 찾아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창밖에는 고흐의 별이 순간 반짝거렸습니다. 고흐의 집을 나와 찾아간 늙은 오베르 교회는 짙은 갈색의 몸짓으로 언덕길에 서 있었습니다.
나는 교회로 가는 언덕길을 고흐와 걷고 싶었습니다. 오베르 교회를 지나 찾은 마을 뒤편의 끝없는 밀밭 길은 노란 유채꽃이 만발해 있었습니다. 먹구름이 바람에 못 이겨 밀밭 길을 덮쳐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말을 잊고 고흐가 되어 비에 젖은 밀밭 길을 걸었습니다. 오베르를 오기 직전에 걸었던 모네의 마을 지베르니의 꿈같은 꽃들이 이곳에서는 찾기 어려웠지만 고흐가 사랑하는 동생 테오와 함께 몸을 누인 가장 낮은 무덤가에는 누군가가 던져준 붉은 장미가 비에 젖어 떨고 있었습니다.
J, 파리를 떠나 비행기에 몸을 싣고 고향에 오는 날 하얀 찔레꽃도 붉게 멍들어 피어있었습니다.
먼데서 고흐의 총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탕!
*한희원 프로필
한희원
-조선대 미술학과 졸업
-개인전 33회, 뉴욕 아트 엑스포, 이스탄불 이르크 미술관 기획전, 파리 유네스코 세계본부 기획전 등 단체전 참여
-대동 미술상, 전남연극제 무대미술상, 원진미술상 등 수상
-신경림 시인(처음처럼), 곽재구 시인(낙타풀의 사랑), 임의진 목사(참꽃피는마을) 등에 그림삽화 및 영화 ‘친정엄마’ 테마그림
-광주시 남구 굿모닝 양림축제 조직위원장
J, 봄이 한창인데 저는 파리로 가는 여정에 몸을 실었습니다. 내가 돌아올 즈음에는 남도 땅 오월은 하얀 찔레꽃으로 덮여 있겠지요. 광주의 거리에도 하얀 이팝나무가 피어 있어 온통 순백한 색으로 저를 맞이할 것입니다. 흰색은 깨끗하고 순결한 느낌을 주는데 언제부터인가 소복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직도 이 땅에 오월의 정신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한 결과라 생각됩니다. 누구나 아픔을 간직하고 있겠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치유하지 못하는 아픔이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이 우리 곁에 있는 역사라는 것이 더욱 상처가 됩니다.
J, 이번 늦은 파리 여행에서 가장 느끼고 싶었던 것은 ‘파리’라는 도시의 예술정신이었습니다. 자유와 순백한 열정과 예술과 샹송에 물든 파리의 분위기에 취하고 싶었습니다. 파리의 오래되고 낡은 거리를 걸어가는 파리지앵 누구라도 붙잡고 와인에 취해 이야기하면 스스럼없이 시를 읊조리며 지난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은 그런 느낌말입니다. 예술적인 삶이 별거 있나요. 예술이 삶과 함께 취해 어울리며 시를 이야기하고 철학을 논하고 노래를 부르며 눈물겨운 생을 위로하고 사는 것이 아닌가요.
J, 실제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가슴 뛰는 곳은 빈센트 반 고흐가 마지막 생의 70일간을 보낸 오베르 쉬르우아즈였습니다. 고흐가 아를르를 떠난 1889년 5월부터 1890년 7월까지 1년 2개월 중 1년은 생 레미 정신병원에서 그리고 마지막 두 달 간은 오베르에서 보내게 됩니다. 생 레미 정신병원에서 고흐는 1년간 150점의 유화를 완성합니다. 이틀에 한 점씩 그림을 완성해 나간다는 것은 같은 화가로서 보면 미친 듯이 그림에 취해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고흐는 절망의 끝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자신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마지막 생이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고흐는 생 레미 정신병원을 나와 오베르로 향합니다. 고흐가 오베르역에서 내린 그날도 오늘처럼 횟빛 안개비가 내리고 먹구름이 몰려왔을까요. 오베르라는 작은 마을에서 이 괴팍한 화가를 반가이 맞아줄리 만무하였을 것입니다.
오베르에서 고흐가 그린 풍경들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들녘이나 후미진 곳이었습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길은 얼마나 처연하던지요. 고흐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오베르역 건너편의 이층집에 오르는 순간 내 영혼 속에서 불꽃이 튀는 먹먹함이 파고들었습니다. 어둡고 낡은 계단을 오르면 겨우 한 사람이나 몸을 누일만한 좁은 방에 목조의자와 침대 하나가 그림자처럼 놓여 있었습니다. 한 영혼이 한 영혼에게 찾아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창밖에는 고흐의 별이 순간 반짝거렸습니다. 고흐의 집을 나와 찾아간 늙은 오베르 교회는 짙은 갈색의 몸짓으로 언덕길에 서 있었습니다.
나는 교회로 가는 언덕길을 고흐와 걷고 싶었습니다. 오베르 교회를 지나 찾은 마을 뒤편의 끝없는 밀밭 길은 노란 유채꽃이 만발해 있었습니다. 먹구름이 바람에 못 이겨 밀밭 길을 덮쳐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말을 잊고 고흐가 되어 비에 젖은 밀밭 길을 걸었습니다. 오베르를 오기 직전에 걸었던 모네의 마을 지베르니의 꿈같은 꽃들이 이곳에서는 찾기 어려웠지만 고흐가 사랑하는 동생 테오와 함께 몸을 누인 가장 낮은 무덤가에는 누군가가 던져준 붉은 장미가 비에 젖어 떨고 있었습니다.
J, 파리를 떠나 비행기에 몸을 싣고 고향에 오는 날 하얀 찔레꽃도 붉게 멍들어 피어있었습니다.
먼데서 고흐의 총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탕!
*한희원 프로필
한희원
-조선대 미술학과 졸업
-개인전 33회, 뉴욕 아트 엑스포, 이스탄불 이르크 미술관 기획전, 파리 유네스코 세계본부 기획전 등 단체전 참여
-대동 미술상, 전남연극제 무대미술상, 원진미술상 등 수상
-신경림 시인(처음처럼), 곽재구 시인(낙타풀의 사랑), 임의진 목사(참꽃피는마을) 등에 그림삽화 및 영화 ‘친정엄마’ 테마그림
-광주시 남구 굿모닝 양림축제 조직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