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망월동 묘역 유영 봉안소 - 조정태
2015년 05월 11일(월) 00:00 가가
망월의 밤하늘에 별이 반짝인다 … 우리도 할 일은 해야지
사람들은 또다시 5·18 기념행사 준비로 분주하다. 벌써 35주년이다.
해마다 벌어지는 관과 민의 실랑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문제로 올해는 대통령도 총리도 없고, 당사자들도 없는 최악의 기념식이 될 것 같다. 그러나 할 일은 해야지. 보훈처 예산도 반납하고 가뜩이나 팍팍한 살림살이로 십시일반 기념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낀다. 5·18정신을 왜곡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만연한 시기,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누가 기억해주나.
30여 년 전 어둠 속에서 숨죽이며 비포장 길을 지나 논두렁, 밭두렁, 개울을 건너 찾아 갔던 망월동은 이제 광주 도심에서 승용차로 20여 분이면 도착한다. 그동안 생긴 신묘역은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다짐을 하고, 전국에서 관광 버스로 관광(?)을 오는 공식적인 5·18의 대표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구 망월묘역.
햇빛 따사로운 오월. 신묘역이 조성된 후, 한동안 세인의 관심에서 비켜있던 구 망월묘역. 해마다 만장이나 걸개그림 전시 등을 위해 찾는 망월동 구 묘역이었지만 올해는 좀 다른 느낌이다.
묘역 관리사무소 옆 슈퍼에는 한가로운 공기 아래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고, 게으른 봄 햇살은 화창한 풍경을 감싸며 정오의 그림자를 만들고 있다. 단정하게 정리된 봉분과 잔디, 소나무들 사이로 묘한 이질감을 느끼며 묘지 사이를 걷는다. 예전에는 성긴 덩굴과 제멋대로 자란 소나무들이 반겨주던 구 묘역이 주변정리와 단장을 하니 낯설기도 하지만 관리에 신경을 쓰는 것 같아 흐뭇하기도 하다.
묘역 앞 사진 속 영령들은 언제나 청춘의 모습으로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다. 이제는 교과서 속 한 줄의 글귀로 잊혀져 가는 별이 된 사람들. 그 속에 새로운 봉분들이 보인다. 언젠가부터 구 망월묘역에는 새로운 영령들이 들어오고 있다. 기혁, 조성만, 이한열, 박승희, 김철수 열사 등 80∼90년대의 민족 민주열사로부터 최근 박종태 열사까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산화한 영령들이 망월동의 품안에 깃들었다.
돌아가신 열사들의 다양한 삶의 무게만큼 추모하는 사람들도 여러 가지 상황들이 있었고 힘겨웠던 부분들이 많았다. 그러다 사람들이 모여 추모하는 모임을 만들고 날을 정해 합동으로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그동안 민족 민주열사 유가족들은 합동 추모제를 지낼 때마다 따가운 햇빛과 비를 피해 엉성한 나무그늘이나 다리 밑에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곡기를 때우고 묵은 슬픔을 견뎠다.
이제는 무상해진 세월 속에 연로한 부모님들의 마지막 소원이 하나 생겼다. 열사들을 위한 추모 공간, 민족 민주열사 유영 봉안소 건립이었다. 자식들의 사진이 유리박스 안에서 2∼30여 년 세월의 흐름에 퇴색되어 갈 때, 속으로 삼키던 울음으로 토대를 다지고 작지만 알찬 추모의 공간을 만들려 하였다. 그리고 지난 4년의 시간, 유가족들은 노쇠한 몸을 이끌고 전국 각지와 관계기관을 찾아다니며 결국 열사들의 안식처를 만들었다. 40여 평의 작은 공간, 아직은 열사들의 모습을 다 보여주는 장소는 아니지만 열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영혼의 공간은 조성되었다.
5월14일 ‘5·18 정신계승 민족 민주열사 유영 봉안소’가 문을 연다. 망월동 구 묘역, 민주화의 여정 속에서 산화해 가신 민주열사들의 영혼들이 머무는 곳, 새로운 민주화의 성지, 이곳은 이제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알리는 생생한 현장이 되려한다. 온몸을 불살랐던 영혼들의 종착지. 망월동의 밤하늘에 별들이 많아지고 있다.
망월동에서 돌아오는 길,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의 불빛이 화려하다. 도청 건물은 최첨단의 건물에 둘러 쌓여, 팔려온 새색시 마냥 화장을 기다리며 박제되길 기다리고 있다. 금남로에는 여전히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들의 모임은 계속되고, 문화전당의 화려한 불빛은 대답 없고 무심한 공권력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겉모습만 남은 역사의 현장. 인적 드문 도청 앞 광장에는 어떤 쓸쓸함만 가득하고, 어두워진 도심의 밤하늘은 별빛도 없고 광주는 비어있다.
나는 예술의 거리 막걸리 집에서 한 잔의 술을 핑계로, 세상을 한탄하는 가벼운 분개를 하고 한낮의 망월동을 벌써 잊어버린다.
그렇게 살고 있다.
* 조정태프로필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개인전 5회 및 단체전 다수
-2004∼2013년 5·18민중항쟁 특별전 기획(5·18기념관 및 옛 전남 도청일원)
-전 광주민미협 회장, 현 광주민예총회원, 광주민미협 회원, 광주시립미술관 전시 자문위원
해마다 벌어지는 관과 민의 실랑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문제로 올해는 대통령도 총리도 없고, 당사자들도 없는 최악의 기념식이 될 것 같다. 그러나 할 일은 해야지. 보훈처 예산도 반납하고 가뜩이나 팍팍한 살림살이로 십시일반 기념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낀다. 5·18정신을 왜곡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만연한 시기,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누가 기억해주나.
햇빛 따사로운 오월. 신묘역이 조성된 후, 한동안 세인의 관심에서 비켜있던 구 망월묘역. 해마다 만장이나 걸개그림 전시 등을 위해 찾는 망월동 구 묘역이었지만 올해는 좀 다른 느낌이다.
묘역 관리사무소 옆 슈퍼에는 한가로운 공기 아래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고, 게으른 봄 햇살은 화창한 풍경을 감싸며 정오의 그림자를 만들고 있다. 단정하게 정리된 봉분과 잔디, 소나무들 사이로 묘한 이질감을 느끼며 묘지 사이를 걷는다. 예전에는 성긴 덩굴과 제멋대로 자란 소나무들이 반겨주던 구 묘역이 주변정리와 단장을 하니 낯설기도 하지만 관리에 신경을 쓰는 것 같아 흐뭇하기도 하다.
이제는 무상해진 세월 속에 연로한 부모님들의 마지막 소원이 하나 생겼다. 열사들을 위한 추모 공간, 민족 민주열사 유영 봉안소 건립이었다. 자식들의 사진이 유리박스 안에서 2∼30여 년 세월의 흐름에 퇴색되어 갈 때, 속으로 삼키던 울음으로 토대를 다지고 작지만 알찬 추모의 공간을 만들려 하였다. 그리고 지난 4년의 시간, 유가족들은 노쇠한 몸을 이끌고 전국 각지와 관계기관을 찾아다니며 결국 열사들의 안식처를 만들었다. 40여 평의 작은 공간, 아직은 열사들의 모습을 다 보여주는 장소는 아니지만 열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영혼의 공간은 조성되었다.
5월14일 ‘5·18 정신계승 민족 민주열사 유영 봉안소’가 문을 연다. 망월동 구 묘역, 민주화의 여정 속에서 산화해 가신 민주열사들의 영혼들이 머무는 곳, 새로운 민주화의 성지, 이곳은 이제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알리는 생생한 현장이 되려한다. 온몸을 불살랐던 영혼들의 종착지. 망월동의 밤하늘에 별들이 많아지고 있다.
망월동에서 돌아오는 길,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의 불빛이 화려하다. 도청 건물은 최첨단의 건물에 둘러 쌓여, 팔려온 새색시 마냥 화장을 기다리며 박제되길 기다리고 있다. 금남로에는 여전히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들의 모임은 계속되고, 문화전당의 화려한 불빛은 대답 없고 무심한 공권력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겉모습만 남은 역사의 현장. 인적 드문 도청 앞 광장에는 어떤 쓸쓸함만 가득하고, 어두워진 도심의 밤하늘은 별빛도 없고 광주는 비어있다.
나는 예술의 거리 막걸리 집에서 한 잔의 술을 핑계로, 세상을 한탄하는 가벼운 분개를 하고 한낮의 망월동을 벌써 잊어버린다.
그렇게 살고 있다.
* 조정태프로필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개인전 5회 및 단체전 다수
-2004∼2013년 5·18민중항쟁 특별전 기획(5·18기념관 및 옛 전남 도청일원)
-전 광주민미협 회장, 현 광주민예총회원, 광주민미협 회원, 광주시립미술관 전시 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