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청사 앞에서 한 민원인이 분신자살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순천에서 벌어졌다. 이 민원인은 5년 전 관내 생산녹지 지역에 건축허가 신청을 했다가 반려되자 행정심판에 이어 소송을 제기하고 몇 차례 탄원서를 냈었다. 당시 시는 해당 부지가 우량농지라는 이유로 ‘불허’ 처분을 내렸고, 결국 법원도 시의 손을 들어줬다.

자기 소유의 부지에 주유소에서부터 충전소, 소매점, 농가주택까지 각종 건축허가를 신청했던 민원인은 결국 마지막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민원인이 지난 2008년부터 같은 민원을 수차례 냈지만 시는 끝까지 ‘원칙’만 강조했을 뿐 그 이면을 헤아려 보지 못한 것이 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민원인이 충분히 그러한 처분을 수긍하도록 하고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소통 행정’을 아쉬워하고 있다.

사건이 터지자 시장은 지난 21일 오전 공식업무를 취소한 채 긴급 간부회의를 열고 소통 부족 행정을 시인하면서 “어떤 경우에도 발생하지 말아야 할 일이 벌어져 안타깝다”며 유감을 표했다.

또 전 부서에 소통 부족으로 인한 유사한 민원사례가 없는지 전반적인 점검으로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도록 당부하는 한편 이번 사건의 책임을 물어 담당 국장을 대기 발령했다.

그러나 이번 문제의 핵심은 순천시만이 아니라 모든 행정기관에서 ‘법’의 잣대만으로 민원인을 대하려는, 고압적인 자세라고 할 것이다. 어려운 법 조항이나 규정을 들먹이며, ‘안 된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공무원의 모습은 서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것이다.

수 많은 민원 속에서 신속하게 이를 처리하는 것만이 높은 평가를 받는 공직사회의 분위기도 이번 사건의 배경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민원은 행정기관이 처리해야할 가장 중대한 문제다. 법적인 잣대가 아니라 민원인의 입장까지 고려해 행정력을 발휘하는 것이 곧 공직자의 자세일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공직사회가 지금까지 고집해온 잣대에 대해 고민하고, 민원인들의 가슴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행정을 펴나가길 기대한다.

/예정열 순천주재기자 yjy@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