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고단한 인생을 바꿔줄 유일한 희망이다. 악착같이 참고 견뎌서 반드시 ‘코리안 드림’의 주인공이 되겠다.”
지난 달 18일 오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외곽인 데폭(Depok)의 ‘공무원교육원’에서는 일대 진풍경이 벌어졌다. 한국어 수업을 마친 현지 교육생 100여명이 일제히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이들은 마치 군사훈련소를 방불케 하는 운동장에서 교관의 지시에 따라 PT체조와 팔굽혀펴기, 런닝 등을 하느라 1시간이 넘도록 굵은 땀을 흘렸다. 한결같이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이들의 표정엔 ‘이 정도 고통쯤은 참을 수 있다’는 비장감이 느껴졌다. 이들은 한국어시험의 ‘관문’을 통과한 젊은이들로, 꿈에 그리던 한국행을 앞두고 강도높은 사전교육을 받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이들의 헤어스타일. 교육생 전원이 박박 깎은 머리다. 한국기업 사장님들이 장발을 싫어한다는 것을 감안해 교육원 측이 취한 조치다. 반발하는 교육생은 단 한명도 있을 수 없다.
오후 6시. 교관의 훈련 종료 호각소리가 울리자 전 교육생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교정에 울려 퍼지는 이들의 우렁찬 목소리에는 ‘코리안 드림’을 향한 간절한 희망이 짙게 배어 있었다.
인도네시아인들의 ‘한국행’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지난해 한국어시험 합격생 1만3천517명이 한국 입국만을 손꼽아 기다릴 만큼 코리안 드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모두 한국으로 들어가면 국내 인도네시아 노동자는 4만명을 훌쩍 넘게 된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중인 인도네시아 젊은이들이 2만6천522명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히 폭발적인 증가세다.
하지만 한국행 비자를 손에 쥐기란 쉽지 않다. 시험에 합격하고도 아직까지 한국으로 들어가지 못한 노동자가 1만1천명이 넘는다. 대부분 비자발급이 지연되거나 국내 업주들로부터 선택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다.
이처럼 한국행이 ‘바늘 구멍’인 탓에 각종 비리가 송출과정 전반에 걸쳐 만연돼 있다. 한국의 고용허가제 실시 이후에도 인도네시아 정부의 묵인하에 현지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이들 브로커는 비자발급이나 구직 명부작성 등을 빌미로 노동자들에게 7천∼8천루피아(한화 700∼800만원)의 ‘뒷돈’을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달에는 한국행을 꿈꾸는 인도네시아 노동자 320명이 현지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해 무려 50억루피아(한화 5억원)의 피해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렇다할 개선책을 내놓치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인력 송출을 담당하고 있는 일부 관리들까지 브로커들과 유착 관계를 형성하면서 노동자들의 인권이 ‘사각 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자카르타=최경호 기자choic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