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벌어 고국으로 돌아갔던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오는 모습을 보면서 현지에서의 정착이 한국생활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한국문화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석봉(45·사진) 원장은 “한국생활에 익숙해진 외국인 노동자들이 고국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웠다”며 “그들이 고국에서 잘 적응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외교관 수십 명을 보내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평소 빈민구제에 관심이 많았던 이 원장이 방글라데시를 찾은 것은 지난 1992년. 경기도 포천 송우리 문화센터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한국정착을 돕던 그는 방글라데시에 살던 지인으로부터 현지 사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혈기 왕성한 30세 청년이었던 이 원장은 방글라데시 빈민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펼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본격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관심은 갖게 된 것은 2년여가 흐른 뒤였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방글라데시 청년들이 한국에서 비인간적이 대우는 물론, 산업재해까지 당하고 고국으로 돌아오는 일이 점차 많아졌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현지에선 한국인에 대한 반감이 점점 커져갔고, 신변위협을 당하는 경우도 생겼다.
한국에서 산업재해를 입고도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던 방글라데시 친구 한 명에게 보상금을 받도록 도움을 줬는데, 그 친구는 고국에 돌아와서 그 돈으로 매춘사업을 하고 있는 경우도 봤다. 가끔 좋은 사장을 만나서 돈을 벌어오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높아진 눈으론 더 이상 고국에서 어려운 일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한국에서 외국인들의 정착을 도왔던 그는 큰 회의를 느꼈다. 이때 이 원장이 생각한 것이 한국문화원이다.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으로 떠날 청년들에게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또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노동자들의 정착을 돕겠다는 다짐에서였다.
이 원장은 2004년 12월에 문화원을 열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방글라데시에 사업을 하는 교포들이 일할 사람을 구하면 이들을 연결시켜 줬다. 문화원 내에 한국어학원을 차려놓고 한국어는 물론 한국의 문화를 가르치는 일도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으로 떠났던 청년들이 좀처럼 고국으로 돌아오려고 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고향으로 돌아온 노동자들도 자발적이기보다는 대부분 강제출국을 당해서 오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내 방글라데시 불법체류자들은 계속 늘어만 갔다. 방글라데시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가 최근 추진하고 있는 일이 이 희망을 찾아주는 일이다.
먼저 한국에 다녀온 친구들을 한데 묶어내는 것이 중요했다. 가칭 ‘귀국 노동자 협의회’라는 것을 만들어 교포들과 교류 폭을 넓혀나가는 일을 추진 중이다. 또 이들에게 한국과 무역을 할 수 있는 아이템을 제공하고, 직접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전통 수공예품을 현지에서 생산해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단체나 도매상인에게 연결시켜 주는 무역 방법이다.
이 때문에 그의 도움을 받은 친구들은 한국에 있을 때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게 됐다. 이젠 그들이 한국행을 꿈꾸고 있는 자국민들을 돕고 있을 정도다.
이 원장은 “외국인 노동자가 고국으로 돌아가서 잘 적응할 수 있게, 재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한국 정부의 중요한 과제”라며 “한국을 다녀온 노동자들이 고국에서 성공하고, 그들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민간외교관 수백 명이 생기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다카=안현주기자 ahj@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