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공식적으로 7천여명의 방글라데시 노동자가 체류하고 있지만, 불법체류자 수는 그보다 많은 1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구가 1억5천만여명인 방글라데시에서는 인구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앞질러 취업이 어려운데다 주민등록 제도가 없어 출입국 관리가 허술한 것이 불법체류자를 양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수도 다카(Dacca)에는 ‘한국행’을 미끼로 젊은이들의 돈을 가로채는 전문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행’ 1,200만원 요구
대학생인 리흐만(23)씨는 지난 2월 초 한국어능력시험 접수를 끝낸 직후 인력송출업체 브로커에게 한국행을 대가로 20만 다카(한화 300만원)를 건넸다. 그는 시험을 통해 합법적으로 한국으로 갈 수도 있지만 ‘혹시나’하는 불안감과 ‘한국에 못 가면 돈을 돌려주겠다’는 브로커의 유혹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심지어 리흐만씨는 시험 당일 ‘답안지에 답을 표기하지 않으면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는 브로커 말을 믿고 그대로 실행했다가 두 달간 준비했던 시험마저도 떨어졌다.
취재진은 불법적인 인력송출 시스템을 알아보기 위해 어렵게 리흐만씨를 설득, 브로커의 연락처를 확보했다.
지난달 1일 오후 통역을 거쳐 인력송출업체의 가장 하부조직인 모집책 로비(45)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자는 “한국기업체에서 온 직원이고, B(32·통역)씨를 한국으로 데려가고 싶다”고 그에게 말했다. 로비는 “내일 10시쯤 만나자. 장소를 다시 알려주겠다”며 다른 휴대전화 번호를 가르쳐줬다. 다음날 오전 다카 외곽 오주켓 시장에서 쌀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모집책 로비를 만났다.
기자는 “한국에서 B씨와 같은 공장에서 일했고, 다시 데려가려고 하는데 절차가 너무 복잡하니 도와 달라”고 짐짓 부탁했다. 로비는 “지금까지 200여명을 한국에 보내봤다. 예전보다는 인력송출이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문제없다”고 장담했다. 로비는 “한국에서 오신 손님이니 특별히 자신의 윗선을 만나게 해주겠다”며 어디론가 전화를 해줬다. 취재진은 오토릭샤(3륜차)를 잡아타고 그가 안내해준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은 다카에서도 번화가에 속하는 굴샨시장 상가건물 내부였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피루스란 남자가 컴퓨터 소프트웨어업체 대표라며 명함을 건넸다. 인력송출은 부업이라고 했지만 사무실 컴퓨터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엔 너무 낡은 기종이었다.
피루스는 ‘한국행’의 총 경비가 80만 다카(한화 1천200만원)라고 밝혔다. 엄청난 액수다. ‘B인터내셔널’이라는 유령업체가 한국에 지사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한국으로 직원을 보내는 것처럼 위장하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최대 5년까지 근무를 할 수 있고, 한국어시험도 필요 없다”며 “착수금 25만 다카와 여권, 사진 8장을 준비하라”고 말했다. 또 “원래는 의뢰인을 직접 만나지 않지만 한국사람이 와서 직접 만나줬다”며 “만약 3개월 이내에 한국에 가지 못하면 돈도 돌려주고, 영수증도 써 주겠다”고 안심시켰다.
현지 정부 단속 엄두도 못내
속칭 ‘맨파워 비즈니스’라고 불리는 이곳의 인력송출업체들은 이런 식으로 자금을 끌어 모아 빌딩을 올리고, 사세를 확장시켰다. 돈을 챙긴 뒤 연락을 끊고 잠적하는 것은 기본이고, 오히려 돈을 되돌려달라는 피해자들에게 큰소리를 치며 시간을 끌다가 건물 임대료를 받아 조금씩 돈을 내주기도 한다.
방글라데시에 거주하는 한 교민은 “인력송출업체들의 힘이 워낙 막강해 정부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상황”이라며 “결국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방글라데시 젊은이들은 실낱같은 희망으로 브로커에게 돈을 건네고 있다”고 현지사정을 설명했다.

/방글라데시 다카=안현주기자 ahj@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