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가 ‘한국어능력시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한국정부와 ‘고용허가제 방식의 인력송출 양해각서(MOU)’를 체결함에 따라 두 달 전 한국어 시험이 치러졌지만, 응시자 모집과정에서부터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났다.
“세종대왕님이 아시면 개탄할 일입니다” 지난 1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Dacca) 시내에서 한국어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박상현(40) 원장은 지난 2월 현지에서 치러진 ‘한국어능력시험’를 한마디로 혹평했다.
한국정부가 인터넷으로만 접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3∼6시간씩 정전이 되는 최빈국에서 인터넷 시험접수를 받다보니 사이트 접속 자체가 ‘코리안 드림’의 1차 관문이 되어버린 셈이다.
한국정부가 응시인원을 적정선으로 끊는 바람에 접수는 시작된 지 1시간30분 만에 끝나버렸고, 실제 시험을 치른 응시생은 5천700여명에 불과했다. 접수 당일 해당 사이트에 접속된 IP만 10만여 개에 달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험을 치르지 못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박 원장의 학원에서도 첫 시험을 준비하는 학원생이 120여명 이었지만 막상 한국어 시험을 치른 학원생은 전체 학생의 50%도 미치지 못했다. 수개월 동안 시험을 준비했던 학원생들이 응시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런 현지 사정 때문에 접수를 대행하는 브로커가 기승을 부렸고, 수많은 학생들이 접수비 명목으로 1천 타카(한화 1만5천원·중산층 한 달 월급의 5분의 1) 이상을 지불하기도 했다.
한국 산업인력공단(이하 산인공)에서 출제한 시험문제 역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한국어로 된 50문항의 지문 밑에는 현지 언어인 뱅골어가 병행표기 돼있었지만 해석이 틀린 문제만 6개가 넘었다.
A형 문제지 8번 문제 지문은 ‘이것의 맛은 어떻습니까’라고 해석돼야하지만 ‘날씨는 어떻습니까’라고 표기돼 있었고, 23번 문제 ‘남성은 어디에 전화를 걸었습니까’는 ‘남성이 무엇을 좋아하나요’라고 엉뚱한 해석이 적혀있었다.
한국에서라면 합격자가 뒤바뀔 수도, 재시험을 치를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곳에선 그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현지에서 만난 한국어학원 관계자들도 “‘우수한 외국인 인력을 확보하고 한국문화를 널리 알리자’는 한국어 시험 본래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시험문제 난이도가 한 달만 공부하면, 합격할 수 있을 정도로 낮아 올해 하반기로 예상되는 2차 한국어 시험을 앞두고 있는 학생들 조차 “일단 접수에 성공하면 그때부터 학원에 다니자”고 말할 정도다.
앞으로 산인공이 계획 중인 예상문제집이 각 나라에 배포되면, 한국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은 점점 더 줄어들고, 오직 시험문제만을 족집게처럼 집어주는 학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박 원장은 “한국에서는 중학교 때부터 수천 만원을 들여서 영어공부를 시키면서, 동남아의 ‘토익’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한국어 시험을 요식행위로 만든 정부를 이해 할 수 없다”며 “‘한국의 우수한 문화와 언어를 보급한다’는 생각으로 시험을 준비해야만 ‘우수인력 확보’와 ‘한류열풍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다카=안현주기자 ahj@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