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과 네팔정부간의 ‘고용허가제 방식의 인력송출 양해각서(MOU)’가 체결되면서 ‘코리안 드림’의 대열에 합류하려는 네팔인들 사이에서 ‘한국행’을 미끼로 돈을 뜯어내는 사기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부패한 왕권이 몰락하면서 정치적으로 혼란해진 나라를 떠나려는 네팔 젊은이들이 늘고 있지만, 이미 통제력을 잃은 정부는 인력송출 브로커들을 방치하고 있어 피해자가 늘고 있다.
한국행 의지 강해 쉽게 속아
네팔 카트만두에서 ‘고용허가제 한국어능력시험’이 처음 열리던 지난달 28일 오후 1시. 17개 시험장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리틀엔젤스 중·고등학교를 찾아가기 위해 터멜 거리에서 택시에 올랐다. 달리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허름한 택시 내부에는 낯익은 한국산 중고 미터기가 장착돼 있었다.
“한국에서도 외국사람이 택시운전을 할 수 있습니까?” 한국말로 대화중인 기자 일행에게택시운전사 디복 시버벅띠(23)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네팔의 택시운전사는 한 달에 5천루피(한화 8만원) 정도를 버는 직장인에 비해 2∼3천루피를 더 벌 수 있는 괜찮은 직업이지만 최근 사정이 달라졌다. 휘발유 값이 1ℓ당 한화 1천200원 대까지 치솟은데다 돈이 있어도 4시간 이상 줄을 서지 않으면 기름을 넣을 수도 없었다. 집세에 아들의 교육비까지 감당해야 하는 그가 ‘한국행’을 고민했던 이유다.
그는 인력송출 브로커들에게 대해 묻는 질문에 “60만루피(한화 950만원)를 내면 한국에 갈 수 있다고 알고 있다”며 “한국어시험에 합격해도 정부 관계자에게 돈을 건네지 않으면 네팔을 떠날 수 없다는 소문을 많이 들었다”고 현지분위기를 전했다. 시험장인 리틀엔젤스 학교에 도착해 오후 4시30분이 되자 시험을 마친 응시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응시생들은 기자가 한국인임을 알아보고 ‘시험지를 풀어달라’며 주위를 에워쌌다. 몇몇 응시생들의 문제지를 함께 풀어본 뒤 “브로커의 유혹을 받은 적이 있느냐”’라고 질문하자 놀랍게도 에워싼 사람의 절반가량인 10명이 손을 들었다.
그들 중 브로커에게 건네줄 돈을 마련 중인 베다넌더 포크릴(20)씨는 “‘시험에 합격해도 돈을 건네지 않으면 한국에 갈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시골에 있는 집과 땅을 처분하기 위해 알아보고 있다”며 “대부분의 응시생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브로커 결탁 피해 키워
이들은 브로커에게 돈을 건네면 현지 인력송출을 담당하는 EPS 직원(Employment Permit System)을 거쳐 네팔 유력 정당의 관계자에게, 또다시 한국 관계자에게 돈이 흘러들어간다고 믿고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은 네팔 정부 관계자로부터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계자는 “한국사람이 끼어있는 인력송출 업체가 이 같은 방법으로 수억 루피를 챙겨 추방당한 사실이 네팔 최대 일간지 ‘칸티푸르(KANTIPUR)’와 TV에 보도되기도 했다”며 “최근에만 4명의 한국인이 적발됐지만, 불안한 국내 사정으로 인해 사법기관에 단속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네팔·카트만두=글·사진 안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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